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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매력적인 영화의 게임화 메커니즘 – 인디아나 존스의 사례

이정엽 2016-02-09 14:46:38

전 글에서 살펴 본 게임 <E.T.>의 역사적인 실패는 큰 교훈을 남겨 주었다.

 

이후 게임들은 <E.T.>의 사례를 거울 삼아 무작정 블록버스터 영화를 게임화하기보다 해당 영화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변용할 수 있는 장르화를 시도했다. 하드웨어와 기술적인 제약이 점점 사라지기는 했지만, 실제에 가까운 영화적 재현을 섣불리 시도하기보다는 역학적 요소의 개선을 통해 플레이어의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루카스아츠(LucasArts, 당시는 LucasFilm)에서 제작한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1989)(이하 <최후의 성전>)는 CD-Rom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래픽 어드벤처의 특징이 훌륭하게 살아있는 수작이다. 동명의 영화를 게임화했지만 영화의 전체 서사를 크게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영화에는 없는 게임만의 매커니즘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매니악 맨션>(Manic Mansion, 1987)

 

루카스아츠는 1980년대 중반부터 캐릭터에게 언어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SCUMM(Script Creation Utility for Maniac Mansion)이라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이를 자사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에 적용해왔다. 

 

SCUMM은 그 본딧말에서도 알 수 있듯 <최후의 성전> 이전에 제작된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 <매니악 맨션>(LucasArts, 1987)에서 최초로 시도된 시스템이다. SCUMM은 하드웨어적인 제약이 여전히 존재했던 1980년대 후반 서사적 재현을 그래픽과 텍스트 어느 한 쪽에만 의존하지 않고 양자를 조화시키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SCUMM이 등장하기 전까지 어드벤처 게임은 텍스트만으로 진행하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과 문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이 주를 이루었다. 

 

루카스 아츠는 <매니악 맨션>을 제작하면서 인터페이스를 3개로 분할했다. 등장인물의 대사는 화면 위쪽에 표시되며, 가운데에는 캐릭터와 장면이 묘사되는 GUI 화면, 그리고 아래에 텍스트로 구성된 명령어들의 모여 있는 화면 등 3분할 된 인터페이스의 조합을 통해 서사가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이 명령어와 그래픽으로 재현된 아이템이나 대상을 연결시켜 캐릭터가 행하려고 하는 행동을 짧은 단문으로 만들어낸다. <매니악 맨션>은 루카스 아츠(Lucas Arts)가 제작한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은 아니지만, SCUMM을 사용한 최초의 게임에 해당된다. 

 

첫 번째 어드벤처 게임이었던 <미로>(Labyrinth, 1986)의 경우 원시적인 형태의 초기 파서(parser)를 그대로 탑재하고 있는 그래픽 어드벤처에 불과했다. 

 

‘파서’는 시각적인 재현이 거의 없이 텍스트만으로 게임 내의 상황을 묘사하고 명령을 내리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의 명령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서 어드벤처 게임 장르의 기본적인 관습과 역학적 요소들이 대부분 고안됐다. 이후 어드벤처 게임 장르는 텍스트가 거의 삭제된 채 시각적인 재현만을 위주로 게임을 진행한 시에라(Sierra) 사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과 SCUMM 같은 독자적인 엔진을 선보인 루카스아츠 사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으로 양분된다.

 

SCUMM은 그 자체로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게임 엔진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어드벤처 게임에 명시적인 언어의 형식성을 부여하여, 그래픽으로 재현된 환경과 단문 단위로 구사되는 명령어가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명령어의 목록이 명시적으로 그래픽으로 재현되는 환경과 결부된 것은 이때가 최초이다. CD-ROM의 도입으로 대량의 데이터가 포함된 그래픽의 재현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전까지 SCUMM에서 제시한 언어/그래픽의 이분법적인 재현방식은 1990년대 초까지 장르를 선도했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결국 SCUMM은 그래픽적인 재현이 완벽해지기 이전까지 게임 캐릭터의 행동을 규정지었던 엔진(혹은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서사를 추동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기능했다.

 

'Walk to', 'Push', 'Open', 'Pick up' 등의 명령어는 특정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사건을 진행해 나가기 위해 그 이전까지 서사가 진행된 맥락을 바탕으로 현재 캐릭터가 취해야 할 가장 적합한 행동을 언어적으로 조합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오브젝트와 힌트를 언어적으로 제시해야만 했고, 따라서 모든 오브젝트들은 해당 장면에서 일단 언어적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는 것이 용의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아이템이나 사건의 실마리 등이 시각적으로 재현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공을 들여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서 퍼즐적인 차원에서 더욱 효과적이었다.

 

 

<최후의 성전>은 이러한 SCUMM의 사용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면서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이 가진 퍼즐적인 요소를 극대화시켰다. <최후의 성전>는 <매니악 맨션>에 비해 GUI 화면의 해상도가 더 높아졌는데, 이러한 요소를 활용하여 시각적인 트릭이나 숨겨진 아이템의 배치를 자주 시도했다. 영화의 전체 서사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게임적인 변형 또한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원작 영화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아버지 헨리 박사가 남긴 성배의 일기를 바탕으로 성배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베니스로 향한다. 이곳에서 그는 고고학자인 엘자 슈나이더를 만나 지하 하수구와 연결된 오래된 수로에서 성배의 위치가 기록된 기사의 무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베니스의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하는 추격 장면이나 지하 수로에서의 액션 장면이 흥미 요소로 등장한다.  

 

 

[새 창에서 영상보기]


게임에서는 하드웨어의 한계로 이런 장면이 모두 삭제되고 퍼즐적인 요소로 대체된다. 지하 수로에서 무덤을 발견하는 결론은 영화와 게임 모두 일치하지만, 게임에서는 액션 장면 대신 오래된 도서관에서 아버지가 남긴 성배의 일기와 그림이 일치하는 석판에 구멍을 뚫어 통로를 찾아나간다.

 

영화에서는 지하 수로에서 슈나이더와 같이 이동하지만 게임의 인디아나 존스는 혼자 이동하며, 지하 수로에서는 음표를 이용한 수수께끼나 아이템의 조합을 이용한 다양한 퍼즐이 등장한다. 이러한 퍼즐들은 모두 SCUMM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플레이어와 시스템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미스터리 하우스>(1980) 같은 시에라 사의 초기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들은 현재 묘사하고자 하는 장면의 공간적인 배경만을 그래픽으로 재현할 뿐, 이 공간에 에이전트(게임 캐릭터)를 넣어 상호작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재현된 공간은 그저 컷신처럼 비상호작용적인 부분에 불과했으며, 이러한 방식은 알고리즘 차원에서는 텍스트 어드벤처와 큰 차이를 낳지 못했다.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 1980)

 

그러나 <매니악 맨션>을 비롯한 <최후의 성전>, <원숭이 섬의 비밀>과 같은 루카스 아츠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들은 SCUMM을 통해 지시어와 시각적 재현, 그리고 서사를 추동하기 위해 문자 텍스트가 할 수 있는 대사와 배경적 설명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었다.

 

SCUMM을 사용한 루카스 아츠의 초기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들은 하나의 오브젝트와 관련해 다양한 명령어들을 조합해서 실험해 볼 수 있어 이 오브젝트를 둘러싼 플롯의 갈래가 여러 개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러한 방식은 게임과 퍼즐의 난이도를 높여 플레이어가 보다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려준다. 

 

물론 SCUMM을 사용한 게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명령어의 입력을 통해 캐릭터에게 행동을 지시하는 방식은 보다 덜 직관적이며, 액션이 많거나 급박한 행동을 요하는 장면을 처리하게 힘들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성전>을 비롯한 영화 기반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은 영화 서사를 게임 내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하드웨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퍼즐적인 다른 장면으로 효과적으로 대체하거나 텍스트가 풍성한 서사적 설명으로 치환하면서 게임만의 독자적인 서사 체계를 효과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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