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라고 하면 프로게이머들이 상금과 팀,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경기를 치르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로게이머, 즉 게임을 직업으로 삼아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전문 게이머가 주인공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2>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는 말 그대로 프로게이머가 활동하고 있지만, 그 외의 게임에서는 프로게이머를 찾아보기 힘들다. 길드 중심의 일반 유저들이 e스포츠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겨루는, 말 그대로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가 더 많다.
<월드 오브 탱크> 리그도 지금은 후자에 해당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풀어 나가야 할 숙제도 많다. 지금의 상황과 계획은 무엇인지 게임스컴 현장에서 워게이밍 유럽 e스포츠 매니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쾰른(독일)=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맥심 츄발로프 PR마케팅 프로덕트 매니저와 사이몬 베넷 e스포츠 유럽 매니저.
e스포츠, 특히 유럽 리그가 다른 지역의 e스포츠와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있다면?
사이몬 베넷: 한국과 비교해 본다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한국 리그는 서울에서 같은 언어로 서로 의사소통하면서 진행한다. 또한 e스포츠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반면 유럽 리그는 20개 국가, 서로 다른 언어로 진행되다 보니 방송 해설 및 스트리밍 중계 등 운영이 힘든 부분이 많다. 특히 e스포츠에 대한 인지도가 아직 높은 편이 아니다 보니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에서만 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서 <월드 오브 탱크> 리그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사이몬: 시즌마다 경기를 하는데 짧은 기간 시즌을 진행한다. 앞서 말한 이유로 모든 유저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할 수 없어 온라인에서 리그를 진행하고,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유저들이 시청하고 있다.
유럽의 반응은 한국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시청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도 러시아와 유럽이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면서 관심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방송은 3가지 모드로 중계하는데 영어 버전, 러시아 버전, 오디오가 없는 버전이다.
오디오가 없는 버전은 나라마다 각기 다른 언어로 커뮤니티 해설진이 중계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약 20~30만 명의 시청자가 <월드 오브 탱크> 리그를 시청하고 있다.
유럽 리그와 러시아 리그가 나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팀이 유럽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는 것인가?
맥심 츄발로프: 유럽 서버에 러시아 팀이 있는 이유는 유럽 서버가 글로벌 마케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서버는 경쟁이 매우 치열해 다수의 팀이 리그에 출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스폰서들도 러시아보다 유럽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요청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리그에 참여하는, 말 그대로의 프로팀은 얼마나
있고 또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이몬: 유럽에는 많은 프로팀이 존재한다. 사실 프로팀과 리그를 연결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일부 유명 프로팀이 <월드 오브 탱크> 리그에 참여하면서 다른 프로팀의 탄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리그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워게이밍은 e스포츠에 대한 목표가 있는데, 유저가 팀을 꾸리고 프로가 되어 스폰서를 찾고, 이와 연계해서 팀이 유명해지고 더 많은 후원을 받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워게이밍은 비즈니스 수익을 목표로 e스포츠에 접근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진행한
<월드 오브 탱크>에서 가장 큰 상금 규모는 얼마였나?
사이몬: 우승팀에게 5만 유로, 준우승 팀에 2만9,000 유로가 상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두세 곳의 대형 스폰서가 필요한데, 항공사 혹은 이에 버금가는 대형업체를 원하고 있다. 워게이밍은 직접 나서서 상금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스폰서가 선수를 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e스포츠 리그가 성장하도록 돕는 서포터의 입장이다.
우승한 팀은 상금보다 스폰서 혹은 방송 등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즉 많이 우승하면서 인기를 얻고, ‘전설’에 다가갈수록 상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워게이밍 리그는 자연스럽게 e스포츠를 키워 가는 발판이 되는 셈이다.
조만간 <월드
오브 워플레인>이 론칭되고, 또 <월드 오브 워쉽>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들 게임도 e스포츠 리그를 진행하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맥심: 지금은 <월드 오브 탱크>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월드 오브 워플레인>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면 e스포츠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다. 유럽에서는 <콜오브듀티> <배틀필드> 등의 FPS가 강세인데, <월드 오브 워플레인>이 이런 성향을 가진 게임이다.
<월드 오브 워쉽>은 아직 e스포츠를 논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게임마다 e스포츠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마케팅 등 어떤 이점이 있는지 먼저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월드 오브 워플레인>의 e스포츠 리그는 정식 서비스 이후 추진될 전망이다.
원래 <월드 오브 탱크>는 e스포츠를 고려하지 않고 개발됐다. 그래서 리그를 진행하면서 옵저버 모드 등 다양한 문제점이 노출됐고, 이를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타이틀도 e스포츠를 고려한다면 개발 단계에서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사이몬: 맞는 말이다. <월드 오브 탱크>의 옵저버 모드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또 계속 개선하고 있다. 다행히도 <월드 오브 워플레인>과 <월드 오브 워쉽>은 같은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돼 <월드 오브 탱크>의 옵저버 모드를 적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최신 옵저버 모드. 모든 팀원을 미니맵에 표시하고 양쪽 팀을 고유의 색으로 구분한다.
<월드
오브 탱크> 유럽 리그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롤모델로 삼았던 리그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이몬: 사실 유럽 리그를 준비하면서 e스포츠 외에 진짜 스포츠 리그를 보며 서로의 장점을 어떻게 가져올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월드 오브 탱크>는 경쟁작이 없는 독보적인 게임이다. 그래서 e스포츠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벤치마킹할 리그는 없었다.
이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도 마찬가지다. 서로 독특한 게임으로 리그를 진행하다 보니 정보를 공유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유럽에서 e스포츠를 키워 나갈지 고민하고 논의하고 있다.
<월드 오브 탱크>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각 국가의 스타일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사이몬: 각 국가의 팀들은 서로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은 한국팀이다. 플레이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공격적이면서 팬들이 싫어하는 플레이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캠핑을 하는 등 지루한 경기보다는 빠르고 공격적인 모습이다.
반면 유럽팀은 공격적인 팀, 짜임새 있는 플레이를 하는 팀 등이 다양하고, 러시아는 미리 준비된 전략과 전술로 모든 과정을 준비한 대로 따라간다. 특히 러시아팀은 팀 리더가 명령하면 복종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미국팀은 상위에 오른 팀이 부족해 스타일을 구분하기 힘들다.
지난 6월 말, ‘월드 오브 탱크 코리안 리그’ 오픈시즌에서 우승한 ‘DRAKI 헤츨링의 반란’ 팀.
현재 가장 강한 팀은 어느 나라인가? 역시 러시아인가?
사이몬: 실제로 러시아팀이 가장 잘한다. 러시아팀이 가장 경계하는 팀은 한국과 중국이다. 중국팀은 많은 연습을 통해 실력을 쌓아 가고 있고, 한국은 짧은 서비스 기간에도 불구하고 유리한 맵을 선별하고, 이에 맞는 전차와 전술을 사용하는 데 탁월하다. 시간이 지나면 러시아팀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 유저들이 게임을 잘한다는 것은 유명하다.
WCG에 참여했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리그를 만들 생각인가?
맥심: WCG에 참여한 것은 지금까지는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WCG가 우리 리그를 방해한다고 생각되면 고려해 봐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WCG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하향세이기 때문이다.
WCG의 매력은 올림픽처럼 국가 대항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레드 러시아’라는 팀은 거의 모든 리그에서 우승을 독차지하면서 각 팀들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WCG에서 우승하면서 러시아를 대표해 승리했다는 이미지가 생겼고, 현지에서 그들을 대하는 반응도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월드
오브 탱크> 리그를 운영하는 데 있어 최종 목표가 있다면?
사이몬: 사실 e스포츠 리그의 시작은 ‘국가별로 누가 더 잘할까?’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e스포츠 시장을 키우고, 자유롭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다. 더 많은 유저가 e스포츠에 참여하고 즐겼으면 한다. 한마디로 e스포츠 자체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