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인 GDC(게임 개발자 콘퍼런스)가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GDC는 매년 GDC 행사에 앞서 글로벌 게임 개발자들에게 업계 현안을 질문하는 ‘게임 산업 현황’ (State of the Game Industry) 설문조사(링크)를 발표한다.
올해 설문은 2,300명의 개발자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신뢰수준은 99%, 오차범위는 ±3%다. 지난해에 이어 VR, AR,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기술의 업계 내 전망에 대한 개발자들의 생각을 조사했다. 외부에서도 주목하는 이들 기술을 향한 일선 전문가들의 시선을 조금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참고자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었던 2020년~2022년 동안 VR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폭했다. 하지만 엔데믹 국면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추세도 조금 주춤하는 모양새다.
설문에 따르면 지난 한 해 VR/AR 게임 개발에 참여한 개발자의 비율은 38%로 나타났다. 이것은 42%였던 지난해 응답자 비율에서 이전 연도인 2021년 수준으로 다시 떨어진 수치다.
"차기작은 어떤 VR/AR 플랫폼에 출시할 예정인가?"라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답변은 ‘메타 퀘스트’ 시리즈로, 약 36%를 차지했다. 메타 퀘스트는 가격 대비 높은 성능으로 세계 VR 시장에서 최고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소니가 곧 출시할 PSVR 2는 18%로 2위를 차지했다.
한편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PSVR 2에 주목하는 개발자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개발자로서 가장 관심이 있는 VR/AR 플랫폼’(복수 응답 가능)을 물었을 때 PSVR 2라고 응답한 개발자 비율은 35%에 달했다.
이것은 39%인 메타 퀘스트 시리즈에 바짝 따라붙은 수치다. 현재 메타 퀘스트 게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개발자 중 적지 않은 수가 PSVR 2를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를 비롯 물류, 의류, 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는 메타버스지만 아직 시장 지배적 입지를 지닌 플랫폼은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다.
GDC는 개발자들에게 ‘메타버스 개념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기업/플랫폼’을 꼽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 질문에서 에픽의 <포트나이트>는 14%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7%로 3위를 차지한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인크래프트>에 비교해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네이버의 <제페토>는 1% 미만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포트나이트>의 경우 인게임 상에서의 콘텐츠 제작, 유저간 거래, 업무협업 등 메타버스의 주요 기능으로 꼽히는 여러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폭넓은 유저층을 확보하면서 여러 기업과 아티스트가 고객 대상 이벤트/홍보를 벌이는 공간이 되고 있어 비즈니스적 활용도는 비교적 높다.
다만 이 질문의 하이라이트는 1위를 차지한 ‘없음’ 항목이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달하는 45%는 ‘없음 - 메타버스 콘셉트는 절대로 구현되지 않을 것’ 항목을 응답으로 선택했다.
GDC는 ‘없음’을 선택한 개발자들의 주요 의견도 함께 공개했다. 한 개발자는 “(메타버스는) 사람들의 삶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져야 하고,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다른 데서도 할 수 있는 것의 VR 버전’이어서는 안 된다. 메타버스 개념은 뉴럴 인터페이싱 등 대대적 기술 발전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하지, VR 채팅 같은 기술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게임 산업 내 암호화폐, NFT, 웹 3.0 접목을 향한 개발자들의 시선은 어떠할까? GDC는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요약한다. 먼저 자신이 속한 스튜디오가 해당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묻는 말에 75%의 응답자는 ‘관심 없다’고 답변했다. ‘조금 관심 있다’는 16%, ‘매우 관심 있다’는 7%, ‘이미 사용 중이다’는 2%를 기록했다.
전체 응답자의 4분의 1가량(23%)이 관심을 표명한 셈이다. 이는 지난해 유사한 설문에서 ‘암호화폐에 관심 있다’, ‘NFT에 관심 있다’ 항목에 각각 27%, 28%가 응답한 것에 비해 줄어든 수치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의 게임 내 활용에 대한 개발자 개인의 관점은 지난해와 비교해 얼마나 변했을까? 12%의 응답자는 ‘지난해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에 호의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답했고, 56%는 ‘지난해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에 반대했으면 지금도 그렇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에는 호의적이었으나 올해에는 반대한다’고 답변한 사람은 전체 5%, 반대로 ‘지난해에는 반대했으나 올해는 호의적이다’라고 답한 사람은 2%를 차지했다.
GDC에 따르면 개발자 상당수는 ‘블록체인 기술이 미래에는 게임에 유용하게 쓰일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지속 불가능하거나 착취적인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는 취지로 추가 의견을 밝혔다. 또한 블록체인의 위험성이 유용성을 넘어서고 있으며, 현존 기술들이 이미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필요성이 상쇄된다는 관점을 드러냈다.
한 응답자는 “이제 블록체인의 거품이 꺼졌고 사기꾼(scammer)들이 다른 분야로 옮겨간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블록체인 기술을 긍정적 유저 경험에 활용할 방안을 연구해볼 시기가 된 것 같다. 블록체인처럼 거대한 기술에 전혀 쓰임이 없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른 응답자는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게임을 디자인해봤다. 오로지 블록체인의 인게임 사용 사례를 연구하는 데에만 3개월을 보냈다. 그 결과 추구할 가치가 없다는 확고한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