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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C

‘스파이더맨’과 ‘갓 오브 워’의 스토리, 뭐가 문제일까?

‘사회학적 내러티브’와 ‘심리학적 내러티브’의 차이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3-30 18:57:37
“저는 트리플A 게임 내러티브가 인물의 심리에만 집중하는 게 이제 지겹습니다.”

모노리스 스튜디오의 차기작 <원더우먼>의 각본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 제니퍼 앨러웨이의 말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10년 경력의 게임작가 앨러웨이는 이번 GDC 2023에서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강연하며 최근의 트리플A 내러티브 대부분이 지닌 공통의 문제를 지적했다.

앨러웨이에 따르면 요즘 트리플A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웅적’ 서사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인게임 세계 전반을 주인공 사정에 맞춰 왜곡해버리는 문제를 안는다. 어느 정도냐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 상식조차 유저를 ‘대접’하기 위해 다 무마될 지경이다.

<마블 스파이더맨>의 예를 들어보자. 물론 훌륭한 <스파이더맨> 스토리 게임지만, 경찰 병력 가득한 뉴욕시를 배경으로 여러 사건을 벌이는 데도, 이것이 도시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란 전부 마법처럼 사라지고 만다.

제니퍼 앨러웨이 (출처: 트위터)


# 주인공과 세계가 분리되는 스토리텔링

또 다른 인기작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도 다르지 않다. <갓 오브 워>에서는 범세계적 대사건인 라그나로크가 벌어지는데도, 그 영향력은 마을 하나가 파괴되는 모습으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심지어 이 마을은 더 중요한 이야기를 위해 금세 곁으로 치워진다.

이 게임에서 라그나로크의 파급력은 아주 먼 곳의 풍문처럼 느껴진다. 유저들은 그 가운데 위치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크레토스의 ‘개인 사정’에만 맞춰 진행되는 이야기는, 라그나로크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차원의 후폭풍으로부터 유저를 박리시켜 버린다.

작중의 거의 모든 요소가 이렇듯 주인공에게만 영향을 주고, 그 외에는 전부 부차적 요소로 취급받는 이런 이야기 구조는 사실 유서가 깊다.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전 세계 신화에 공통적으로 도출되는 하나의 이야기 원형(태어남-부름-모험-역경-귀환)을 ‘영웅의 여정’ 개념으로 정리해 소개한 바 있는데, 요즘의 싱글게임 내러티브가 여기에 부합한다.

이런 심리학적 내러티브는 심지어 플레이어마저 주변부로 밀어내며, 결과적으로 스토리가 지닌 독자적 장점과 매력도 와중에 소실된다고 앨러웨이는 주장한다. 또한 심리학적 작법이 오래 득세함에 따라, 또 다른 내러티브 창작 방식인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이 외면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 장점을 두루 인정받아온 창작 기법으로, 현재 도처에 팽배한 심리학적 스토리텔링 사이에서 유저들이 잊고 있던 신선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인터랙티브 매체인 게임에 특히나 더 어울리는 여러 장점을 가진다.

1년 전 공개된 <원더우먼> 티저 트레일러 중


# 사회학이란?

사회학적 내러티브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아보기에 앞서, 사회학 자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이란 대규모의 사회력(social forces·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실제 세계 안에서 어떻게 ‘체계’를 통해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때 체계란 가족처럼 소규모이고 국지적인 것에서부터 미국의 건강보험 시스템처럼 거대한 것까지 다양하다.

보통 큰 체계는 저마다의 목적을 지닌 여러 작은 체계들로 구성된다. 이들 작은 체계는 서로 반목하기도, 연대하기도 한다. 사회학적 스토리란 결국 체계에 관한 이야기다. 심리학적 내러티브가 나무를 다룬다면, 사회학적 내러티브는 숲을 다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주로 주인공과 주변 인물에 집중하는 심리학적 내러티브에 비해, 사회학적 내러티브는 크고 작은 ‘체계’ 간의 상호작용을 주로 다룬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그렇다면 이에 기반해 게임을 만들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

게임 전반에 깊이와 풍성함을 더해주고, 창작 과정을 수월하게 해줄 수 있다고 앨러웨이는 설명한다. 우선 사회학적 세계관은 레벨 디자인, 아트 등 모든 스토리 연계 요소에 있어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수 있고, 다시 여기에서 모든 대사와 플롯이 파생하기에도 좋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싶다면 세계관, 인물, 플롯의 순서로 구체화하는 방법이 좋다. 복잡한 사회 체계를 지닌 세계관을 먼저 구축한 뒤, 여기에 어울리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면, 그다음에는 해당 캐릭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깊이 있고 날카로운 이야기가 창출된다는 설명이다.



# 1단계: 세계관 만들기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의 첫 파트인 세계관 구축은 제일 어려운 부분이지만, 캐릭터와 플롯 등 모든 것이 여기서 비롯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일반적인 세계관 구축 방식에는 여러 좋은 예시들이 있지만, 사회학적 내러티브를 쓰기 위해서는 역시 실제 사회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사회학’은 그런데 다시 거시사회학(macrosociology) 미시사회학(microsociology)의 두 분류로 나뉜다. 어려워 보이지만 단순하게 얘기하면 거시사회학은 사회 전반을 분석한다. 사회의 존재 의의, 변화, 발전 과정 등을 논한다. 내러티브 디자인에서는 세계관의 전체 윤곽을 결정하는 ‘큰 그림’이자 주제 의식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디스코 엘리시움>의 경우 분명하게 ‘갈등이론’을 주제로 삼는다. 갈등이론이란 인류의 모든 역사가 개인 및 집단 간의 갈등으로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표면상으로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의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도시와 사회제도의 문제를 발견하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과 세상이 주고받는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반면 미시사회학은 사회의 매우 구체적인 측면을 깊게 연구하는 이론이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관련 이론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미시사회학 연구가 이뤄져 온 바 있다.

예를 들어 <포탈>의 이야기에 적용해볼 만한 미시사회학 이론으로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 이론이 있다. 파놉티콘 이론은 권력에 의한 사생활 침해, 억압, 감시를 논한다. <포탈>에서 매 스테이지 유저를 관찰하며 환경을 통제하는 글라도스의 모습은 이 이론에 잘 어울린다. “감시를 게임의 핵심 메카닉이자 중심 테마로 삼고 있는 게임인 만큼 파놉티콘 이론을 접목해 사회학적 이야기로 심화해볼 수 있다”고 앨러웨이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거시·미시사회학 이론까지 동원해 세계관을 만들었을 때의 궁극적 장점이란 과연 무얼까? 바로 유저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층위의 사회이론이 중첩되었을 때, 세계관을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이 연출되며 이는 유저에게 큰 임팩트를 남기게 된다.

앨러웨이가 예시로 든 것은 디즈니의 <스타워즈> IP 기반 시리즈 <안도르>에 등장한 ‘벽돌’ 장면이다. 해당 스토리에서는 한 전설적 혁명가가 진압에 의해 사망한 뒤 행성의 장례 전통에 따라 화장되어 한 장의 벽돌로 빚어지게 된다.

이후 펼쳐진 장례식에서 시민과 제국군이 물리적으로 충돌하고, 이는 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그리고 이 충돌에서 벽돌이 제국 병사를 직접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혁명 전사가 죽어서도 저항의 선봉에 서는 인상적 장면이 연출된 것. 이런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세계관의 사회적 구조에 대해 스스로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앨러웨이는 말한다.



# 사회학 지식이 없다면?

하지만 모든 작가가 실존 사회학 이론에 통달한 것은 아니며, 자기 창작물에 이를 접목하는 것 또한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스스로 적당한 거시·미시적 사회학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먼저 거시사회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동시에 세계를 비판하는 관점이라는 점을 알아두자. 예를 들어 ‘기능주의’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각자 수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인데, 이는 반대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체계를 거스르는 사람이나 요소를 비판하는 관점이 되기도 하는 식이다.

이처럼, 창작물에 쓰이는 거시사회학 이론은 해당 세계관을 설명하는 관점인 동시에 비판하는 관점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 관점은 작품 전반의 주제로도 기능한다.

거시사회학이 이야기의 주제라면, 미시사회학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다. 미시사회학은 사회구조 안에서의 특정 패러다임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앞서 나온 ‘갈등이론’을 바탕 삼아 이야기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미시사회학 측면에서 이를 심화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 조직들이 왜 서로 맞서는 지를 구체화해볼 수 있다.

이때 만약 자체적인 사회학 이론을 창작해내기 힘들다면, 실존 이론을 검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앨러웨이는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는 이론이라면 아마 누군가는 이미 연구를 마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 ‘조직’ 만들기

가상이든 실제든 사회이론 결정이 끝났다면, 이제는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볼 차례다. 방법은 간단하다. 세계관에 어울리는 몇 종류의 사회적 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스토리상 가장 크고 중요한 중심 조직을 먼저 만든 뒤, 그 외에 다양한 조직을 만들고 이들이 서로 연루되는 방식을 결정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조직간의 상호작용이 앞서 주제로 삼은 사회이론에 잘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직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앨러웨이는 사회학자 밀스가 제안한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 개념을 권장한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일상적, 개인적 문제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파악하는 접근법이다. 이를테면 특정 인물의 해고나 파산 등의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대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자신이 만든 가상 세계 전반의 사회 구조가 어떠한지 상상해본다. 그 뒤에 해당 사회가 세계관 속 역사 흐름상 어떤 변화의 기점에 놓여 있는지 자문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구조하에서 특히 이익을 얻는 자들은 누구이며, 고통받는 자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어떤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는지 등을 상상해보면, 다양한 사회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상상은 더 나아가 세계관 고유의 문화, 가치관, 문제점까지 설정하게 해준다. 이에 기반하여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계속 던지면 결국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세계관이 완성된다. 인과관계가 살아있는, 사회학적으로 견고한 가상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2단계: 인물 구성

세계관 구축이 끝났으면 이것을 어떻게 게임에 적용할까? 이때부터는 인물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사회학적 내러티브에서 각 인물은 ‘각자의 삶을 살면서 각자의 결정을 내리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한다. 하나의 조직 혹은 체계를 대변하는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은 작가가 세계관 속 여러 조직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배치되고 활용된다. 인물의 행동이 다른 조직과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메시지 전달할 수 있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메시지 전달에 쓰이는 주된 방법은 체계를 상징하는 인물끼리 영향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가 폭압적인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여기 맞서는 저항군 캐릭터를 내세워 대립시킴으로써, 양쪽의 행위가 인게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유저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이런 대립은 심지어 두 캐릭터가 물리적으로 마주치는 일이 전혀 없어도 발생할 수 있으며, 스토리 전반에 걸쳐 그 임팩트를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캐릭터 구축/상호작용 예시는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드래곤 에이지> 속 캐릭터들은 각각 특정한 조직이나 집단을 대표한다. 플레이어는 이들 주역 캐릭터를 통해 다른 파벌의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고, 그 상호작용이 각각의 파벌에 미치는 영향, 여기서 발생하는 세계 전체의 변화까지 관찰할 수 있다.


# 개인 이상의 이야기

캐릭터가 스토리 안에서 어떤 체계를 상징하고 있는지, 그리고 각각의 체계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작가가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다면, 여기에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먼저, 이 경우 캐릭터 간 대화가 단순한 인물 간 대화 이상의 깊은 효과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각자가 대표하는 제도 및 집단의 상호작용이기도 해서다. 그 결과 개인 간 문제뿐만 아니라 더 큰 단위에서의 문제를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대사 작성 자체도 더 쉬워진다. 캐릭터의 정체성이 이미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과 개인적 갈망은 사회적 입지에 의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인물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아는 것은 그가 누구인지 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앨러웨이는 “자신의 위치를 아는 데에서부터 개인의 욕구(wants)와 필요(needs)가 발생한다. 그리고 오늘 강연을 들으러 온 작가 여러분은 욕구와 필요가 캐릭터 구축에 있어 얼마나 필수적인 재료인지를 잘 알고 계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 3단계: 플롯

마지막 단계인 플롯 구축에 있어 기억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학적 내러티브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들 자신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 속 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즉, 개별 인물이 취하는 행동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 이러한 영향력에서 비롯한 결과들을 중심으로 플롯이 펼쳐지게끔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매우 중요한 범세계적 회담(콘클라베)이 무산되는 상황에 연루되는데, 우리는 그 파급력을 게임 내내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인해 ‘인퀴지션’이라는 새로운 사회 체계가 만들어지고, 플롯은 계속해서 인퀴지션과 다른 집단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플롯을 이런 방식으로 설계했을 때의 긍정적 효과는 게임 스토리라인 전반에서 계속 확인된다. 다양한 캐릭터로 가득찬 풍성한 세계관 속에서 메인 퀘스트라인의 스토리가 훨씬 큰 임팩트를 지니게 되며, 동시에 사이드 퀘스트들 역시 무게감을 지닐 수 있다.

심리학적 내러티브와 비교했을 때 이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심리학적 내러티브에서는 사이드 퀘스트 설계에 있어 ‘퀘스트 보상’ 이상의 동기를 유저에 부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반면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이 세계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에, 유저들이 본질적 차원의 동기를 부여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 아직 늦지 않았다

물론 모든 게임 작가가 처음부터 이러한 스토리 작법을 따를 수 있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미 스토리 작업이 상당히 완성된 상황이라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 경우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을 완전히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앨러웨이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을 권하고 있다. 첫째는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의외로 다양한 사회학적 요소들이 이미 내재되어 있을 수 있다. 이를 심화하고 관련된 콘텐츠를 더하면 임팩트 강화를 노릴 수 있다.

둘째로는 플롯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영역에서 사회학적 ‘치장’을 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 등장 분량이 적어서 잘 묘사되지 않은 파벌이 있다면, 이들의 사회학적 상황을 사이드퀘스트에서 심층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식이다. 아니면 배경 NPC 대사에서 세계관을 기존보다 깊이 있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는데, <길드워 2>가 좋은 예시가 된다.

한편, 세 번째 방법에서 앨러웨이는 다소 거친 표현을 섞어 기존의 스토리텔링 관행에서 벗어나자고 권했다. 그는 “자유도는 *먹으라 하고, 후폭풍(consequences)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대체 무슨 뜻일까? 선택지를 통해 자유도를 구현하는 스토리 분기 시스템은 물론 좋은 내러티브 장치다. 문제는 최근 업계가 선택지에 따르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회적 영향력을 이야기에 구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리학적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최근의 트리플A는 유저에게 선택지를 주고, 그 선택이 주인공과 주변인물 몇몇에 미치는 영향만을 다루는 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쉬운 접근이라고 앨러웨이는 말한다. 무엇보다 유저 만족감이 감소한다. 유저들은 자신의 행동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놓는 지를 보고 싶어하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택지가 빈약해도 ‘후폭풍’만 잘 구현되면 유저가 오히려 선택에서 임팩트와 몰입감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앨러웨이의 주장이다.

지금의 게임들은 대부분 유저의 선택에 심리적 보상을 주기 위해 그 선택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콘텐츠를 부여하는 한다. 하지만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은 이 지점에서 훨씬 근본적 몰입감을 유도할 수 있다. 유저의 행동이 세계 자체를 변화시킨다면 그 만족감은 더 강력할 뿐만 아니라 더 오래가기 마련이다.



# ‘심리학 내러티브’ 트렌드의 함정은?

긴 강연을 통해 앨러웨이는 사회학적 스토리와 심리학적 스토리의 차이. 사회학적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구체적인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런 내러티브가 지니는 궁극적 의의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유저의 게임경험 강화와 만족감 증대다.

앞서 들었던 여러 예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잘 짜여진 사회구조 위에 설득력 있는 캐릭터와  플롯을 구축한다면, 유저들은 더 감흥있는 스토리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몇몇 인물에만 맞춰 인게임 세계를 편의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뒤트는 스토리 작법이 인기를 끌면서, 사회학적 내러티브의 심화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트리플A 씬에서 점차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앨러웨이는 “좋은 스토리텔링에 있어 현실의 사회구조를 밀접히 활용하는 대신, 되려 방해물로 생각하는 현재의 접근법이 게임이라는 매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순수히 심리학적인 내러티브만을 추구하고 이를 잘 구축된 사회학적 스토리와 접목시키지 않는다면, 세계를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에 끼워 맞춰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풍성한 유저 경험을 막는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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