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NDC

[NDC 2021] 커뮤니케이션이란 함정에 빠진 기획자

‘직장 내 평판’에만 신경 쓰는 기획자가 되지 말자

방승언(톤톤) 2021-06-11 15:04:18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심리 용어가 있다. ‘착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타인의 욕구에 맞춰 내면의 욕구를 억압하는 현상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타인에 의탁하면 주체적 자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휘둘려 게임을 기획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NDC 2021에 참여한 넥슨코리아 이민우 기획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함정에 빠진 기획자’라는 제목으로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어 콘텐츠 퀄리티를 희생시켰던 자신의 경험담과 후회, 교훈을 전했다.

 

이민우 기획자는 넷마블에서 커리어를 시작, 웹젠을 거쳐 현재는 넥슨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다. 강연에서 그는 자신이 신입·주니어 기획자였던 당시를 회고했다.

 

 

강연자: 이민우

소속: 넥슨코리아

이력: 

▲넥슨 <메이플스토리 M> 기획
▲넥슨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기획
▲웹젠 기획자

▲넷마블 기획자

 

첫 근무지에서 맡았던 게임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작품이었다. 이로 인해 유저 피드백 없이 동료들의 피드백만 받으며 업무를 익혀 나갔다. ▲콘셉트 수립 ▲콘텐츠 기획 ▲사후관리·개선 등 게임 플레이 측면에 대한 인식이 점차 흐려졌다. 반대로 구조 설계나 일정 조율 등 사내 동료들의 평가와 직결된 측면만 의식해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났다.

 

결국 ‘효율’이라는 명목 아래 ‘현상 유지’ 스타일의 기획이 많아졌고, 작업자의 희망과 취향을 반영하는 개발이 이뤄졌다. 이는 협업자들 간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동료 집단 안에서 좋은 평가를 얻는 ‘달콤한’ 결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이런 내부 평판을 기반으로 결국 넥슨으로 이직,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기획 업무를 맡을 수 있었다.

 

 

옮겨간 팀에서도 그는 이전 동료들이 말하던 자신의 ‘좋은 점’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업무 스타일이 가진 맹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혹평받았던 자신의 두 가지 프로젝트를 예시로 들었다.

 

첫 번째 기획에서 그는 동료들의 여러 ‘좋은 의견’을 전부 곧이곧대로 실현하려 드는 실수를 저질렀다. 개발팀은  회의를 통해 여러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놓았다. 조직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의견이 충분한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모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무극 모드’ 콘텐츠를 내놓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민우 기획자는 “유저들에게 많이 혼났다”고 회상한다. 난도가 높았고, 플레이 동기는 부족한 데 반해 콘텐츠 반복성은 높았다. 유저들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난 콘텐츠였다.

 

이는 기획의 초점이 어느새 ‘콘텐츠 생산’이 아닌 ‘내부 의견 반영’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이민우 기획자는 “같이 일하기 좋은 기획자, 말 잘 듣는 기획자가 어떤 결과를 만들게 되는지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오더’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상급자로부터 ‘재미있는 걸 만들자’는 러프한 오더가 떨어졌다. 창의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였지만 그는 상급자가 제시한 ‘의견’들을 그대로 구현해야만 ‘좋은 기획자’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상급자로부터 무리한 스펙 변경 오더가 떨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콘텐츠의 원래 방향성과 달라 어색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괜찮다’는 말에 바로 자기 견해를 포기했다.

 

출시 후 당연하게도 부정적 피드백이 나왔다. 사실 기획자 본인은 사전에 모두 염려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를 상급자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다. 상급자가 자신보다 무조건 더 넓게 보고, 더 자세히 파악하고 있으리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오더에 입각한 공정, 오더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자는 생각으로 임했을 때, 그는 ‘기획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서 작성자’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기획자’라면 스스로 결과를 명확히 그릴 수 있어야 했고, ‘문서 작성자’라면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야 했다. 그러나 둘 다 하지 못했다.

 

‘좋은 기획자’가 되면, 주도적 생각도, 책임감도 없어진다. ‘상급자에게 내가 모르는 무슨 생각이 있겠지’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고 발을 뺀다. 공정은 내 것인데, 결과물은 내 것이 아닌 상황이 된다. 이는 인사평가로까지 이어졌다.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시키는 일만 한다.”, “콘텐츠가 아니라 게임 전체를 봐야 한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이후로 이민우 기획자는 ‘버릇’을 고쳐나갔다. 한두 줄만 적고 말던 기획의도를 자세하게 적기 시작했다. 긴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꿋꿋이 기획의 목표를 상세히 얘기한다. 그래야만 협업자 모두가 기획의도 구현을 위한 실제적 방안을 함께 고민하며 ‘같은 곳’을 볼 수 있다.

 

이민우 기획자는 “선을 넘어보자는 얘기다. 선을 넘어 봐야  선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다. 갈등을 피하는 기획자라면 어려운 얘기겠지만, 갈등 없는 기획은 어렵다. 조직과 동료에 잘 맞추는 기획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소중하고 좋은 동료로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에 맞추는 주니어 기획자도 좋지만, 자신에게 맞는 조직을 찾는 주니어 기획자도 무척 소중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며 강연을 마쳤다.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