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게임’ 장르로 많은 인기를 누려왔지만 돌연 새로운 시도를 선언한 개발사가 있다. 스팀에 얼리억세스 신작 <다이 크리쳐>를 출시한 자라나는 씨앗이다.
자라나는 씨앗 MazM 팀의 이수호 디렉터는 NDC 22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1일 차에 ‘스토리 게임의 한계점을 돌파하라’라는 주제로 자사 게임 <다이 크리쳐>의 개발 포스트모템을 진행했다.
<다이 크리쳐>는 MazM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액션 어드벤처 요소가 가미된 PC 게임이다. 어째서 이들은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였을까? 이수호 디렉터의 말을 통해 직접 알아보자.
강연자: 이수호 디렉터
소속: 자라나는 씨앗
발표자 소개
현재 (주)자라나는씨앗에서 <다이 크리쳐> 프로젝트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다. 이전에는 <MazM : 옐로브릭스>, <MazM : 하트리스>, <MazM : 지킬 앤 하이드> 프로젝트에서 메인 기획자 역할로 참여했다. NDC 2017에서도 발표에 나섰던 바 있다.
<다이 크리쳐>는 메리 셸리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다크 판타지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지난 2월 19일 스팀에 얼리억세스로 출시했으며, 올해 하반기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MazM은 원래 고전 명작 소설을 각색한 모바일 스토리게임을 만들어왔다. <MazM: 지킬 앤 하이드>, <MazM: 오페라의 유령>, 역사 기반 게임 <페치카> 등을 개발해왔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가해 스토리 게임을 만드는 것이 그간의 모토였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수익성 이슈다. <MazM: 지킬 앤 하이드>, <MazM: 오페라의 유령>은 각각 400만,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유저 만족도와 긍정 평가 비율도 높다. 그런데 수익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MazM이 파악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모바일 시장은 무료게임 기반으로 반복적 과금 BM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반면 MazM의 게임들은 에피소드 단위 스토리 콘텐츠여서, 유료 게임에 더 어울린다.
두 번째, MazM의 게임들은 특성상 대부분 대화로 진행된다. 캐릭터를 만나 대화하고, 힌트를 얻고, 다음 장소/인물을 방문하는 식이다. 특별히 더 재미있는 ‘게임플레이’ 장면이 연출되기 힘들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MazM은 스토리 콘텐츠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정 내리게 됐다. 그렇게 ‘스토리게임을 더 재미있게, 흥미롭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MazM이 집중한 첫 번째 미션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게임플레이’를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목표에 어긋난 미션 같지만,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다.
MazM은 기존 팬들의 피드백을 통해, 사람들이 큰 스토리 적 맥락을 파악하고 기억할 확률 보다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주변의 사건들을 기억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캐릭터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면, 해당 캐릭터의 서사를 궁금해하게 되고, 그 서사는 자연스럽게 스토리와 이어진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스토리 이해로 연결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게임을 상징할 마스코트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해당 마스코트가 게임을 연상하거나, 게임을 궁금해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다이 크리쳐>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보스 창작’에서도 같은 접근을 했다. 이수호 디렉터는 “보스도 결국엔 NPC 아닌가? (중략) 서사도 있고 매력도 있고 기억에도 남는 캐릭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게임성 구현’이라는 두 번째 미션은 더 큰 숙제였다. MazM은 이전까지 스토리텔링만 있는 게임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MazM의 강점이기는 하다. 하지만 게임이 재미없다면 스토리도 즐기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임 외에도 각종 OTT 등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요즘의 상황에서는 특히 ‘게임’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스토리만 추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MazM의 기존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도 텍스트만 즐기며 게임을 즐기다가 결국 하차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도 목격됐다. 그래서 이런 이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여기서 MazM은 스토리게임 개발사다운 선택을 했다.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을 먼저 결정하는 대신, 전달하고자 하는 내러티브에 어울리는 게임 메커니즘을 찾아 나가기로 한 것. 이를 위해 ▲세계관 설정 ▲전달하고 싶은 내용 결정 ▲잘 표현될 수 있는 방법 물색이라는 3단계를 거치게 됐다.
먼저 세계관 설정을 보면, 주인공 ‘괴물’이 자신의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기 위해 탑을 오르는 이야기다. 이때 탑의 각 층에서 자신의 기억과 내면의 상처(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다. 괴물이 탑을 오르는 여정은 결국 괴물이 자기 기억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괴물의 내면적 상처는 ‘보스 몬스터’로 형상화하여 표현된다.
MazM 개발진은 이런 설정 안에서 괴물이 내면의 상처(보스)를 물리치기 위해 기억으로 들어가 ‘기억의 본질’을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보스들은 미로와 같이 복잡한 자신의 기억 속으로 ‘침투’한 괴물을 방해하게 된다. 그리고 괴물이 그 안에서 기억의 본질을 찾아갈수록 보스는 약화한다.
기억의 조각을 모두 찾아 보스를 무력화하면 보스가 빼앗았던 다른 인물들의 기억을 회수해 돌려줄 수 있게 된다. 괴물은 이렇게 다른 인물의 기억을 돌려주는 과정을 통해 감정과 세상을 배우고 내/외적 성장을 한다. 주인공은 보스들에게 미사일을 마주 날리는 대신, 그저 공격을 피하면서 기억 조각을 회수하는 행위로 공격을 대신하도록 설정했다.
여기까지 결정을 내린 MazM 개발진은 개발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지켜야 할 3가지 포인트를 추가로 설정했다.
첫째, 탄막 메커니즘에 치중해 스토리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한다. 둘째. 탄막 슈팅 구간에서도 스토리와 감정이 느껴지도록 한다. 셋째, 게임 맥락에 맞는 콘셉트와 난이도, 호흡을 제공해 유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끝까지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중 두 번째 포인트는 지금까지의 개발 내용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외로움’을 테마로 한 전투에서는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막 느낌의 아트가 사용됐다. ‘억울함’이 테마인 스테이지에서는 적의 탄막이 점점 활로를 좁혀오도록 구성해 옥죄는 느낌을 연출했고, 답답함을 강조하기 위해 감옥이 연상되는 아트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