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게임즈가 개발하고 넥슨이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하는 <블루 아카이브>는 '서브컬처 지향'의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그런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특히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블루 아카이브>의 이야기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을까요?
넥슨게임즈 MX 스튜디오에서 <블루 아카이브>의 시나리오를 총괄하는 양주영 디렉터는 9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NDC22 "미소녀 게임의 히로인이 어째서 복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거죠?" 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이 게임의 시나리오가 탄생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의 관점에서 게임 IP를 제로에서부터 만들고, 시장에 안착시키기까지의 개발 과정을 공유하고, 또 이를 통해 얻은 성취와 실패담을 공유했습니다.
강연자: 양주영
소속: 넥슨게임즈 MX 스튜디오 시나리오 디렉터
발표자 소개
현재 넥슨게임즈 MX스튜디오에서 블루 아카이브의 시나리오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큐라레 마법도서관>의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였으며 NDC2015에서 <큐라레 시나리오 포스트모템>발표를 진행했었습니다.
서브컬처 전문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로서의 그 동안의 경험과, 블루 아카이브의 4년에 걸친 개발과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얻은 경험을 공유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블루 아카이브>는 초기 프로젝트 세팅 단계에서부터 "일본에 팔 수 있는 게임", "미소녀들이 은/엄폐하는 총싸움 게임", "교복과 미소녀" 3가지 키워드를 대전제로 깔고 있었다. 이 디렉팅에 따라 '아트'를 담당하는 AD(아트 디렉터)는 밝고, 청량하고,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세계관 구축 작업을 시작했고, 양주영 시나리오 디렉터는 '개그, 학원물, 청춘' 에 집중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한국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일본 시장 선출시'가 목표였기 때문에 일본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문화와 캐릭터들로 세계관을 구축했다. 캐릭터명이 죄다 일본어고 일본 지향의 여러 문화 키워드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양주영 디렉터가 무엇보다 세계관 구축에서 신경 쓴 것은 바로 '다른 게임과 차별화되는 유니크한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된 세계관을 성립시키면서도 매력적으로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 번 보기만 해도 잊혀지지 않는 임팩트를 게이머들에게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양주영 디렉터가 내린 답은 바로 "낯설게 하기" 였다.
여기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란 익숙한 것을 관습에서 벗어나 다르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즉 누구나 흔히 알고 있는 익숙한 것들인데 무언가 낯설다. 여기에서 핵심은 '익숙한 것과 익숙한 것을 조합했는데 낯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걸 추구하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령 애니메이션 <걸즈 앤 판처>는 '학원물'과 '탱크'라는 (개별로 보면) 익숙한 요소를 하나로 합쳐서 "여고생이 전차를 타고 승부를 겨룬다" 라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유니크한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 시리즈 또한 '수렵'과 '기계' 라는 익숙한 요소를 섞어서 "수렵시대 인데 기계 짐승을 사냥한다" 라는 유니크한 세계관을 만들었다. <블루 아카이브> 또한 이런 방향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유니크한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로 하여금 "짧은 이미지 만으로도 강렬한 흥미와 관심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 세계관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 유저들은 이후 마음 속에 새겨진 물음표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세계 탐색에 대해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몰입하며' 즐기게 된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기존에 없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무언가 세계관을 구성하는 논리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단점이 극대화되면 세계관 자체가 굉장히 얕고 가볍게, 혹은 거짓처럼 느껴질 수 있다. 개발 차원에서 봐도 당장 '다른 부서 사람들' 조차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비용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양주영 디렉터는 어떻게 보면 <블루 아카이브>에 있어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 기준점을 잡았다. 바로 "이 이야기는 학원물이며, 모든 캐릭터들은 학생이다". 그러니까 여고생이 탱크를 타고 전투를 치르고, 전쟁을 하고 온갖 음모와 암투가 벌어져도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학생' 이며, '학원물' 이라는 기본 전제를 깐 것이다.
보통 많은 게임들이나 애니메이션, 소설 같은 문화 콘텐츠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이 진실되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개연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블루 아카이브> 같이 과장과 비약이 큰 소재들로 이루어진 세계관은 하나 하나 개연성을 부여하면 오히려 세계관 자체가 거짓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큰 그림에서 기준점을 잡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학원물' 이라는 전제를 깔면 세계와 캐릭터들은 진실성을 얻고, 유저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블루 아카이브>는 학생들이 총을 쏘고 전투를 벌이는 '학원물' 이라는 세계관으로 정립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바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을 초대해서 이 세계관과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플레이어를 게임속 주인공인 "선생님"과 일체화 시켜서 이야기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블루 아카이브>에서 특히 중요하게 잡은 것이 바로 이 '선생님'에 대한 묘사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선생님'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외형 및 성별은 게임 내에서 일절 묘사하지 않고, 선생님의 모든 대사는 '플레이어가 고르는' 선택지로 구성했다. 또 중요 시나리오는 선생님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고, 이에 필요한 스토리 컷씬 또한 선생님 1인칭 시점을 전제로 작업했다. 심지어 '결제 행위' 조차도 게임 속 맥락으로 넣어서 유저들이 이 세계관에서 여러 캐릭터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을 살렸다.
다행히 <블루 아카이브>는 게임 출시 이후 시나리오에 대한 호평이 상당히 많다. 일본 시장에서 또한 다양한 2차 창작이 이례적일 정도로 많이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양주영 디렉터는 '어떻게 하면 유저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까. 그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앞으로도 글을 쓸 예정이다.
"시나리오가 재미있는 게임"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이곳이 어디인지도 아직 알 수 없지만.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