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와의 긴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에픽게임즈.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구글이 아닌 에픽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명 '애플세'(Apple Tax), '구글세'(Google Tax)로부터 시작된 세기의 법정 싸움에서, 현지 시각으로 11일 캘리포니아 배심원단은 구글플레이 독점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렸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는 지난 4주 동안 법정 증언 끝에 거둔 승리 소식을 전하며 "오는 1월부터 법원의 구제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 언급했다.
3년 전, '<포트나이트> 스토어 퇴출 사태'를 거치며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이 부과하는 30%의 마켓 수수료는 과분하며, 이런 수수료 비율을 가진 인앱 결제 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독점 행위"라 주장했다. 긴 힘겨루기는 이번 판결로 하나의 온점이 찍힌 상태다.
앞서 애플과의 반독점 소송에서는 사실상 패배했던 에픽게임즈가 이번에는 어떻게 구글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이번 승소가 가진 의미를 짚어보며, 지난 3년간 에픽게임즈가 애플, 구글과 이어온 공방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2023년 11월, 에픽게임즈와 구글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 1심이 시작됐고, 12월 12일 드디어 그 결과가 나왔다. 에픽게임즈는 자사 블로그에서 "오늘의 판결은 전 세계 모든 앱 개발자와 소비자의 승리다. 이는 구글 앱 스토어 관행이 불법이며 독점권을 남용해, 엄청난 수수료를 받아 경쟁을 억제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안드로이드 환경에서 95% 이상의 앱이 구글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배포된다"며 "더 나은 경쟁자의 등장을 막았다는 이유만으로 구글은 30%의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제임스 도나토 판사는 구글이 수수료를 얼마나 부과해야 하는지 (법적으로) 결정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구글의 공공 정책 부문 부사장 윌슨 화이트는 "우리는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다. 안드로이드와 구글플레이는 다른 주요 모바일 플랫폼보다 더 많은 선택권과 개방성을 제공한다. 이번 재판을 통해 우리가 애플 앱스토어는 물론 안드로이드 기기 및 게임 콘솔 앱스토어와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안드로이드 비즈니스 모델을 지키고, 우리의 사용자, 파트너 및 광범위한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전념할 것"이라 밝혔다.
에픽게임즈와 구글은 1월 둘째 주에 제임스 도나토 판사와 만나 잠재적인 구제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 공방이 시작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2020년 8월,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의 앱스토어 15~30% 인앱 결제 수수료가 과도하다 비판하며, 모바일 <포트나이트>에 20% 할인된 가격으로 인게임 재화 'V벅스'를 구매할 수 있는 '에픽 직접 결제' 옵션을 신설했다. 당시 1,000 V벅스를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구매하면 9.99달러(약 12,000원)였던 반면, '에픽 직접 결제'에서는 7.99달러(약 9,600원)로 구매할 수 있었다.
애플은 "에픽게임즈가 유저 보호를 위해 모든 개발사에 동등하게 적용되던 앱스토어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우려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에픽게임즈는 앱스토어를 수년간 이용해왔고, 앱스토어가 제공하는 툴, 테스팅, 앱 배포 등의 혜택을 누려왔다. 애플은 에픽게임즈의 직접 결제 방식을 검토하거나 허가한 적이 없다"며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에서 퇴출시켰다.
구글 또한 "<포트나이트>는 우리 정책을 위반했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안에서 실행은 가능하겠지만,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는 없게 할 것"이라 밝히며 <포트나이트>를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퇴출시켰다.
얼마 후, 에픽게임즈는 애플을 상대로 65장 분량의 고소장을 제출했고 "30%의 수수료는 너무 과하다. 이러한 '과세'가 이어질 경우, 애플 기기에 의존하는 이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구글을 상대로도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 시작된 '반독점' 소송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2020년 8월, 에픽게임즈는 애플 앱스토어의 독점을 비판하며 '1980-포-트나이트(Nineteen Eighty-Fortnite)'라는 영상을 업로드했다. 해당 영상은 <포트나이트> 캐릭터가 연설을 펼치는 사과 캐릭터를 부수는 장면을 담고 있고, "에픽게임즈는 앱스토어의 독점에 반기를 든다. 부디 2020년이 1984년으로 회귀하지 않도록 싸움에 동참해달라"는 문구와 "Free Fortnite" 태그로 마무리된다.
에픽게임즈가 올린 영상은, 애플이 1984년 슈퍼볼에서 공개한 '맥킨토시'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두 영상 모두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모티프로 활용한 것이며, 에픽게임즈는 혁명의 주체였던 애플이 혁명의 대상이 됐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인터넷에 액세스하는 방법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경쟁의 장을 평준화하고 소비자에게 통제권을 부여하려면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홈페이지에 명시하며 "이런 노력이 있다면 애플과 구글의 유해한 관행을 종식시킬 것"이라 밝혔다.
▲ 소비자는 대체 스토어, 개발자로부터 직접 통하는 경로 등을 포함해,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앱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구글과 애플이 독점세를 부과해 안드로이드 및 iOS 앱 배포에 통제권을 활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개발자가 인앱 구매에 대한 대체 옵션을 제공하도록 허용하면 소비자 가격이 낮아질 것이다.
▲ 애플과 구글이 반경쟁적 관행과 세금을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제3자 제공업체가 처리하는 등)로 전환하는 것을 정책 입안자와 규제 기관은 금지해야 한다.
2021년,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반독점법 소송을 벌였다. 당시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은 애플의 앱스토어 사업이 미국 내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고, 2023년 4월에는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이 원심을 유지하며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서 곤잘레스 로저스 판사는 애플이 시장에서 가진 힘과 이익 마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소만으로 독점 금지 행위가 되진 않는다. 성공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법원은 당시 쟁점 중 9개 사안에서 애플의 손을 들어줬지만, 단 하나 "애플은 더 이상 개발자에게 애플 구매 메커니즘을 강제할 수 없다"는 명령을 통해 에픽게임즈의 취지를 일부 인정했다.
에픽게임즈와 애플은 모두 3심 재판을 준비 중이다.
팀 스위니는 2017년 데브컴 컨퍼런스에서도 "마스터카드나 비자 같은 다른 결제 회사들은 수익의 2~3%를 가져가는데, 앱 스토어는 게임 배급의 대가로 수익의 30%를 가져간다"고 비판했다. 참고로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수수료율은 12%로 다른 플랫폼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또한 조건에 맞는 신규 입점 게임에 6개월간 수수료를 면제,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은 스토어 결제 솔루션 사용시 엔진 로열티 면제, 서드 파티 결제 솔루션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스토어 수수료가 0%인 "개발자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편, 구글 측 변호사 글렌 포머런츠는 30% 수수료에 대해 "독점 수수료가 아닌 시장 수수료"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글플레이 프로텍트가 보안을 위해 매일 1,000억 개 이상의 앱을 검사하고, 30억 명이 넘는 190개 국가 안드로이드 유저에게 앱을 배포할 수 있는 등 페이팔과 같은 결제 처리 서비스보다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시장의 범위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었다. 에픽게임즈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앱 배포, 인앱 결제 처리 시장에서 불법 독점을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바일게임 시장이라는 넓은 범위로 보면 iOS 및 애플 앱스토어라는 경쟁자가 있다고 구글이 방어 논리를 펼칠 수 있던 상황이다.
외신을 통해 공개된 배심원 평결 양식의 2번, 4번, 8번 문항에는 관련 시장을 명시해달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배심원이 '안드로이드' 앱 마켓이라 기입한 답변을 볼 수 있었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에픽게임즈와 애플 사이의 공방에서는 <포트나이트>가 게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었다. 비디오 게임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특정 콘텐츠 수수료 부과와 같은 주제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증인들의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팀 스위니는 "일종의 승패 또는 점수 획득과 관련이 있다"고 했고, 애플 앱 리뷰 수장 트리스탄 코스민카는 "게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최종적인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은 "비디오 게임에는 플레이어와 매체 사이의 상호작용 및 참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게임에서는 일정 수준의 명령이나 선택 사항을 입력할 수 있다. 영화, 텔레비전, 음악과는 대조적"이라 밝혔지만 "비디오 게임의 정의에 무엇이 포함되고 제외되는지 더 까다로운 추가 질문은 학계와 평론가에게 맡긴다"고 언급했다.
이번에 에픽게임즈가 구글을 상대로 법정에서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프로젝트 허그'의 존재가 있다. 구글이 플레이 스토어 이외의 플랫폼 이용을 막기 위해 앱 개발자와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행위를 한 대책은 '프로젝트 아가베', '프로젝트 바니안', '프로젝트 허그' 등으로 불렸으며, 이번 재판을 통해 반경쟁적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또한 애플과의 공방은 판사에 의해 결정되는 벤치 코트였던 반면, 이번 구글 소송은 배심원단 평결에 의해 결정된 승리라는 차이가 있다. 에픽게임즈가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아닌, 앱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에 자체 스토어 및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한 것도 승소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구글, 애플을 포함한 빅테크 기업이 플랫폼 수수료 및 지불 방식을 통제하던 기존 관념에 균열이 생길까? 구글은 항소를 예고했고, 애플과의 3심도 남아있으니, 앞으로의 공방 또한 중요하다.
▶ 구글이 이긴다면
구글플레이 프로텍트의 보안 등 여러 가치를 내세워 구글은 스토어 수수료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일부 MMORPG가 PC 버전 결제에 혜택을 준 것처럼, 모바일 플랫폼 수수료를 우회하는 게임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결제가 절차적으로 편리하다는 이점과 대체 플랫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수수료 가치를 증명하는 부가 서비스 및 혜택이 늘어나는 선에서 현상 유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에픽게임즈가 이긴다면
애플과의 법정 공방에도 반전의 물살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공방의 시작이 된 '직접 결제' 옵션처럼 저렴한 결제 대안이 소비자에게 주어질 수 있다. 30%라는 수수료의 벽도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이 서드파티 앱스토어를 인정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셋앱'은 아이폰용 서드파티 앱스토어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으며 조건부 10% 수수료를 내세우고 있다. 에픽게임즈의 승소가 다른 개발사들의 결제 방식에도 자유를 부여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공방을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