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브시스터즈가 위기에 빠져 있다. 6분기 연속 적자로 적신호가 이어지자, 지난 11월 본사 대상 '희망 퇴직'을 접수했고, 경영 안정화가 될 때까지 이지훈, 김종흔 공동 대표는 무보수로 책임 경영에 나선다고 밝혔다.
2023년에 출시된 신작들도 강세를 드러내지 못했다. 8월에 출시된 샌드박스 게임 <브릭시티>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고, 배틀로얄 게임 <사이드 불릿>은 PS5로 10월 초 글로벌 출시됐지만,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1월 말 서비스 종료 소식이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내 여론 또한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최근 1년 사이 올라온 전·현직자들의 게시글에서는 데브시스터즈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찾기 어려웠다.
기자는 데브시스터즈가 위기를 타개할 방책이 다가올 신작들에 있다고 판단, 3주 이상의 기간에 걸쳐 취재를 진행했다. 경영난에 따른 인사(HR)에 대한 불만과 <쿠키런: 오븐스매시>의 개발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 대해서도 현직자들의 답변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블라인드에서 다수의 현직자들은 데브시스터즈에 대해 수위 높은 비판을 했다. "침몰하는 회사", "가망이 있을까?", "더 이상 성장 가능성이 안 보인다", "한때는 좋았던 회사"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 회사의 사업적 선택이 변할 때 공감하기 어려움 ▲ 위기 상황에서 인사(HR) 판단이 아쉬움 ▲ 회의나 미팅 같은 자리는 많지만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음을 지적을 했다.
2023년 초 마이쿠키런 직원들에 대한 '당일 해고' 논란이 일었을 때, 데브시스터즈는 "해고 통보가 아닌 프로젝트 정리 및 인사 조정"이라 해명했고, 의사소통 오류가 일어난 것이라 표현했다. 한편, 블라인드에서 현직자 중 한 명은 "2023년 말 '희망 퇴직'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도, 소통과 대응을 잘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욕을 덜 먹었을 것"이라 언급했다.
소수 의견으로는 사업 방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다. <쿠키런> IP로 오프라인 TCG에 도전한 <쿠키런: 브레이버스>나 서비스를 종료한 <사이드 불릿>(<데드 사이드 클럽>)에 대한 투자를 현직자 중 일부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데브시스터즈의 적자가 매출 규모가 줄어든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데브시스터즈는 IR 등을 통해 경영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신작 라인업 강화를 언급해왔다. 협동 액션 게임 <쿠키런: 모험의 탑>, 난투형 액션 게임 <쿠키런: 오븐스매시>, 퍼즐 게임 <쿠키런: 마녀의 성>이 대표적인 예시다.
동시에 해외 시장을 공략할 방법을 늘렸다. 메타 퀘스트 3 공식 발매 이후, 국내 개발 VR 게임 중 처음으로 퀘스트 스토어에 올라간 <쿠키런: 더 다키스트 나이트: 챕터 1>을 지난 12월 1일 정식 출시했고, 이 게임의 주요 타깃은 북미 시장의 VR 게이머들이다. 지난 9월 출시된 오프라인 TCG <쿠키런: 브레이버스> 또한 글로벌 출시를 앞두고 있다.
참고로 데브시스터즈는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 비중(전체 매출의 57%)이 더 큰 회사다. 이런 맥락에서, 12월 28일 중국 시장에 진출한 <쿠키런: 킹덤>이 해줘야 할 역할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쿠키런: 킹덤> 중국 출시 직전인 12월 22일 중국 내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에 대한 매우 강력한 규제 초안이 공개되며, 발표 당일 데브시스터즈 주가 또한 전일 대비 15% 급락했다. 규제 초안에는 ▲ 강제 전투 금지 ▲ 게임 과사용 및 과소비에 대한 제한 ▲ 미성년자에 대한 게임 지도 강화 등이 포함됐다.
해당 규제 초안에 타격을 입은 건 거대 게임 기업 텐센트, 넷이즈도 마찬가지였다. 22일 당일 각각 16%, 28% 가량 주가가 하락했다. 중국 게임 기업의 시장 가치가 800억 달러(약 104조 원) 가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자, 국가언론출판국은 "의견을 계속 수렴하고, 정직하게 연구하며 개선하겠다"고 다소 완화된 입장을 내보였다. 국가언론출판국을 감독하는 중앙선전부 판권국 국장을 해임하기도 했다.
일부 외신들은 "중국 당국이 해당 조치의 일부안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지만, 차후 규제가 어떤 식으로 구체화되고 적용될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른 상황이다.
<쿠키런: 킹덤>의 초반 성적은 고무적인 편이다. 사전 예약자 1,000만 명을 돌파했고, 12월 28일 중국 출시 직후 애플 앱스토어, 탭탭, 빌리빌리 등 주요 앱마켓에서 인기 1위를 기록했다. 출시 당일 애플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는 8위였다. 일주일이 지난 현재 앱스토어 매출 순위는 14~16위로, 인기 순위는 10위로 내려왔다. 중국 내 영상 플랫폼에서는 신규 영상이 다양하게 업로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초기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쿠키런: 킹덤>이 데브시스터즈의 경영난을 해소할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려면 '롱런'을 위한 현지화 및 서비스 전략이 필수적이다.
핵심을 요약하면 2023년 3월 판호 발급 이후 중국 퍼블리셔 텐센트, 창유와 함께 ▲ 기존 글로벌 빌드를 개선 ▲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중국 문화를 반영한 중국풍 콘텐츠를 기획 ▲ 오리지널 콘텐츠(신규 쿠키, 스토리 ,세계관, 스킨, 특별 이벤트)를 포함한 업데이트 전략 구성 ▲ 호평을 들었던 국내 성우 보이스처럼 중국에서도 인기 성우들을 적극 섭외했다는 것이었다.
데브시스터즈의 경영난과 체감하는 위기에 대해 현직자들의 말을 직접 들어봤다. 기자는 인사(HR)에 대해 먼저 물어봤다.
자회사에 재직 중인 현직자는 "본사와 달리 자회사는 희망 퇴직이 아니라서, 너 나가라는 식의 통보였고, 이에 대해 항의하자 그제서야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반응"이었다고 언급했다. "인사권이 본사에 있어서 연봉을 올릴 때도 본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동결 수준으로 올렸고, 주말 출근 및 철야 작업을 한 사람들이 휴직을 언급했다가 그럴 거면 나가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현직자는 "출시한 게임(<데드 사이드 클럽>)을 몇 달 만에 스팀에서 접고, 플레이스테이션(<사이드 불릿>)으로 냈는데 그마저도 한 달 만에 접고, 결국 매출이 안 나오는 상황이 되니 '본사 지침'이라며 나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언급했다.
기자는 적자가 지속된 상황에서도 포괄임금제 폐지가 잘 적용됐는지에 물어봤다. 과거 2022년 4월, 데브시스터즈는 본사 및 자회사의 포괄임금제 폐지로 긍정적인 기업 문화 조성에 나서겠다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회사에 재직 중인 한 현직자는 "본사는 모르겠는데, 자회사는 시행한다는 말만 있었지 결국 시행 안 했다"는 답변을 줬다.
현직자 중 한 사람은 데브시스터즈가 IR에서 강조했던 신작 라인업 중 하나인 "<쿠키런: 오븐스매시>는 '무한 홀딩'됐다"고 말했다. "현재는 개발진 중 다수가 나갔고, 통보식으로 홀드 됐다"는 것이다. 기존 스팀에서 모바일로 플랫폼 표기가 바뀐 것에 대해서는 "아예 다른 게임을 만든다고 보시면 된다. 그마저도 계속 엎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 반면, 이에 대한 데브시스터즈의 공식 입장은 "<쿠키런: 오븐스매시>는 작년 하반기에 서비스 전략을 수정하고,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된 캐주얼 난투 액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조작성과 플레이 경험, 비즈니스 모델 등의 개선 작업에 몰입하며, 2024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작 라인업이 많았는데 철야 연장 근무 등 크런치에 대한 강요가 있었는지, 신작 부진에 의한 내부 분위기 악화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이에 대해 "일정이 타이트해서 야근을 했던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강요까진 아니었다", "<브릭시티>의 경우 수익이 (기대보다) 크게 나오지 않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부서, 팀마다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아쉬움은 있지만 블랙 기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등의 반응도 존재했다.
블라인드에서 터져 나온 불만과 현직자 인터뷰의 여러 답변을 종합해보면, 적자 행진에 의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사적인 '쇄신'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 협동 액션 <쿠키런: 모험의 탑>의 글로벌 CBT가 1월 19일부터 2주 동안 진행된다. 일명 '종토방'으로 불리는 주식 종목토론방에서는 <모험의 탑> CBT에 대한 평가가 주가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었다.
▶ VR 게임 <쿠키런: 더 다키스트 나이트> 챕터 2, 챕터 3이 2024년 내외로 출시될 예정이다. 메타 퀘스트 스토어 리뷰 78개 중 5점 만점에 4.3점의 평점으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유저들 타깃으로 해서 그런지 아직 반응의 모수가 많지 않다.
▶ 오프라인 TCG <쿠키런: 브레이버스>는 상반기 초 미국, 일본, 대만 등에 글로벌 출시를 준비 중이다. 카드 대회 또한 월드 챔피언십 규모까지 계획하고 있다.
▶ 퍼즐 어드벤처 <쿠키런: 마녀의 성>은 2024년 연내 출시된다고 알려져 있다. <쿠키런> 기반 퍼즐 게임이었던 <쿠키런: 문질문질>은 서비스 종료, <쿠키런: 퍼즐 월드>는 업데이트 중지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마녀의 성>의 포지션이 중요한 편이다.
▶ <쿠키런> IP를 게임 밖으로 확장하는 방향에도 적극 투자 중이다. <쿠키런: 킹덤> 빵이 1,800만 개 이상 팔렸고, 배스킨라빈스와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기도 했다. 출판사와 도서 협업도 했고, <쿠키런> 3D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제작 중이다. 인천공항에서는 스마트 체크인 서비스 협업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건물 외벽에 미디어 파사드 전시를, 신세계백화점 등에서는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 지난 10월 데브시스터즈는 10주년을 맞은 <쿠키런> IP로 글로벌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출시작들을 포함해 앞으로 나올 작품들은 흑자 전환의 주역이 되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