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 뇌의 기능 저하, 사실로 밝혀졌다.’ 2024년 1월 5일 일간지와 경제지, 그리고 일부 의학 매체가 잇달아 보도한 내용이다.
해당 보도는 최정석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행위중독저널’(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s)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인터넷 게임 중독 치료 이력이 있는 18~39세 환자 26명과 대조군 25명을 대상으로 게임 중독이 뇌에 실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연구팀은 대상자들의 휴지기(깨어 있지만 특정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기능적 MRI(functional MRI)와 사건관련전위 뇌파검사(event-related potential EEG)를 실시했다. 그 결과 실험군(게임 중독자)의 뇌는 검사에 따라 특정 부위가 양의 상관관계로 과민 반응하거나 다른 부위가 음의 상관관계로 둔하게 반응하는 등 뇌 구조 간 정보 처리 불균형이 나타났다.
또한 여러 뇌 영역 피질에서 뇌 활성 변화가 관찰되고 두 검사의 반응이 상호작용을 보이는 데에서 뇌의 처리 능력이 비효율적으로 발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뇌의 기능이 저하됐음을 알 수 있다고 연구진은 정리했다.
전문적 뇌과학 및 정신의학 지식 없이 관련 논문의 의의를 판단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보도 내용에서는 보편 상식 차원에서 묵인하기 힘든 근본적 의문 두 가지가 분명하게 제시된다.
첫째는 ‘게임 중독자의 뇌’라는 용어 사용이다. 산학정(産學政)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게임 중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질병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단일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 연구의 실험군으로 설정되었다는 ‘게임 중독 환자’ 25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질환을 치료받은 사람들일까?
논문에 의하면 이들은 서울대학교병원 운영 보라매병원에서 ‘과잉적이고 문제적인 인터넷 게임 행동’을 치료받은 인터넷 게임 장애(IGD)환자들이다.
의료진은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발행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5차 개정판(DSM-5)을 기준으로, 숙련된 정신과 전문의들이 인터넷 게임 장애(IGD)및 공존 정신과 장애를 진단했다”고 적었다.
실험에 참여한 것은 이들 환자 중 게임을 하루에 4시간 이상, 1주에 30시간 이상 플레이하는 사람들로서,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며 공존 정신과 진단을 받지 않은 이들이었다. 반면 대조군은 게임을 하루 2시간 미만 플레이하는, 중독 증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실험 대상자 선정 기준을 설명한 논문 일부 (출처: 행위중독저널)
실제로 ‘인터넷 게이밍 중독’은 DSM-5에 명시된 여러 중독 질환 중 유일한 ‘행동형 중독’이다. 제시된 관련 증상은 다음과 같다. 1년 동안 5개 이상 증상을 겪었다면 게임 중독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APA의 권고다.
▲게임에 몰두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울, 불안 등 금단 증상 발생
▲게임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게임을 즐기는 현상, 즉 내성 발생
▲게임플레이 시간을 줄일 수 없으며, 게임을 중단하는 시도에 실패
▲게임 때문에 다른 활동을 포기하거나 이전에 흥미를 느끼던 활동에 흥미를 잃음
▲여러 문제가 발생해도 게임을 계속
▲게임에 소요한 시간을 가족들에게 거짓으로 이야기함
▲죄책감, 무력감 등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활용
▲직업 혹은 인간관계를 게임 때문에 위험하게 만들거나 타협
다만 유의할 것은 APA 역시 인터넷 게임 장애를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로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APA는 환자들을 위한 DMS-5 안내 페이지의 ‘인터넷 게이밍’ 항목에서 전체의 절반가량을 할애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
해당 페이지에서 APA는 “인터넷 게임을 중독 혹은 정신 질환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아직 논의가 매우 활발한 주제로서, 점점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적었다.
APA에 따르면 예를 들어 비디오 게임으로 인한 뇌 변화와 중독물질로 인한 뇌 변화에 유사점이 있다는 뇌신경학 연구 결과가 제시된 바 있다. 반면, IGD 진단 기준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검토한 2017년 미국 연구에서는 게임 유저 중 실제로 IGD에 해당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논의는 진행 중이다 (출처: APA)
더 나아가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등지의 기타 관련 연구에서는 진단 기준상 IGD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실제로 감정적,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이상을 겪는지를 두고도 상호 엇갈리는 결론이 나왔다고 APA는 적었다.
미국이 아닌 국제적 현황으로 눈을 옮겨도 게임 중독의 기준과 실체를 둘러싼 논의는 분명히 ‘진행형’인 상태다.
우선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식 질병코드로 등재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현행 국내 통계법에 따르면 2026년부터 적용될 9차 한국표준질병분류(KCD-9)에는 이것이 그대로 반영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WHO의 질병 등록 코드 등록이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비판은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 의뢰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 연구 용역을 맡은 안우영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연구 결과에서 ‘WHO가 참고한 논문 다수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23년 5월 GDC에서 ‘게임 중독의 세계 속 비디오 게임과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선 앤드류 프지빌스키 옥스퍼드대학교 심리학 교수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프지빌스키 교수는 “지난 수년간 게임 중독 관련 연구의 양은 많았지만 이들 연구 대다수에 활용된 과학적 근거의 품질(quality)은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2023 GDC에서 앤드류 프지빌스키 옥스퍼드대 교수는 게임중독에 관한 학계 연구가 '양은 많지만 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출처: GDC)
이번 연구의 관련 보도에서 두 번째로 의문을 느끼게 되는 지점은 ‘사실로 밝혀졌다’는 단정적 헤드라인이다.
단일한 의학 연구 결과가 곧장 ‘사실’로 간주되는 일은 거의 없다. 연구방법론에는 늘 한계가 존재하며, 뒤따르는 연구에 의해 기존 연구 결과가 반박되거나 보완되는 것도 일상적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 논문에는 현행 연구의 한계나 후속 연구의 필요성이 언급되고는 한다.
이번 논문에도 몇몇 한계가 분명히 지적되어 있다. 첫째로 연구진은 “단면연구(cross-sectional)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인과관계나 전후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 후속 장기 연구가 인과관계 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의학연구에서 단면연구는 특정 시점에 어떠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인과 실제 질병 발현을 동시에 측정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게임 중독’이 의심 요인이며 ‘뇌 기능 저하’가 질병인 셈이다.
기후 위기를 혜성 충돌에 비유한 영화 <돈 룩 업>에서 민디 교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충돌 확률을 100%가 아닌 99.78%로 설명한다. (출처: 넷플릭스)
이러한 단면연구의 대표적 단점으로는 측정된 두 가지 요소 중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이 결과인지 분명하게 규명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꼽힌다. 즉 연구진은 ‘뇌 기능 저하’가 ‘게임 중독’의 원인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아직 분명하게 알아내지 못했다고 기술한 것.
따라서 다른 연구에 의한 반박 가능성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번 연구 결과만을 두고 ‘게임에 중독되면 뇌 기능이 실제로 저하된다’고 단정적으로 축약한 헤드라인은 이미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적지 않은 매체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보수적 헤드라인을 사용했으나,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은 매체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연구를 이끈 최정석 교수의 언급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게임에 중독되면 실제 뇌 인지 기능과 감정 처리 능력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임 중독이 실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게임에 과도하게 빠져들지 말고 건강한 취미생활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논문에 언급된 연구의 한계는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이번 연구는 대상자들을 젊은 남성들로 한정했기 때문에 결론이 다른 인구 유형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실험군 환자들은 행동으로 드러날 만큼의 인지적, 감각적 문제를 겪은 것은 아니기에 연구 결과의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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