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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게임 사도 되나?… '너무 싼' 스팀 키의 함정

'충격적 가격' 나오기 힘든 근본적 이유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4-01-10 10:38:24
파나티컬, 그린맨게이밍, 험블번들…

스팀 플랫폼의 게임 제품 키(이른바 ‘스팀 키’)를 구매할 수 있는 유명 사이트들입니다. 종종 스팀에서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게임을 구할 수 있어 유용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너무 싸게’ 게임이 팔리는 사이트도 눈에 띕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문제는 없을까요?

오래된 스팀 유저라면 그러한 사례 대부분이 함정이란 것을 잘 알고 있겠지만, 새로운 피해자를 막기 위해 다시금 짚어볼 때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안전한 스팀 키 사이트는 어떻게 구분할까요? ‘위험 사이트’는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일까요? 밸브와 이러한 사이트들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스팀 키의 생성 및 판매에 관련된 밸브의 관련 약관, 그리고 스팀 입점 개발자용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 ‘너무 저렴한’ 판매 사이트의 문제

밸브가 ‘안전한 스팀 키 사이트’ 목록을 직접 발표한다면 유저들은 안심하고 이들 사이트만 이용하면 될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밸브는 그런 리스트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팀 키의 외부 판매는 밸브가 아닌 개별 게임의 개발사 혹은 퍼블리셔 소관입니다. 스팀에 입점한 게임사는 밸브에게 자사 제품의 스팀 키 생성을 요청한 뒤, 이를 외부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즉, 스팀 밖에서 팔리는 모든 스팀 키는 밸브가 아닌 관련 기업이 직접 공급한 것입니다.

게임사 중에는 자신들이 키를 공급하는 공식 판매처를 직접 공지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모든 개발사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직접 개별 구매의 신뢰성을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그 방법은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스팀 키를 너무 싸게 판매하는 사이트라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싸게’라니 모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바로 해당 게임의 스팀 내 최저가 기록입니다. 악명 높은 스팀 키 리셀러 사이트 G2A를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1월 9일 기준으로 이 사이트에서는 트리플A 인기작 <발더스 게이트 3>를 무려 60% 할인된 가격에 판매 중입니다. 현재까지 스팀에서 <발더스 게이트 3>의 최대 할인율은 10%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극심한 가격 차이라면 사이트의 신뢰도를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발더스 게이트 3> 개발사 라리안 스튜디오나 G2A가 단순하게 ‘떨이’를 결심한 걸 수도 있지 않냐고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유혹당하기 쉬운 가격 (출처: G2A.com)


# 밸브의 ‘키 판매 규칙’

개발사 및 퍼블리셔들은 자사의 게임에 대해 스팀 키를 무료로 수량 제한 없이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첫 5,000개는 특별한 조건 없이 발급되며, 그다음부터는 신청자의 상황을 검토한 뒤 개별적으로 발급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러한 키 발급 및 판매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엄격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위에 언급된 수준의 이례적인 할인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스팀 입점 개발자들이 참고하는 ‘스팀웍스 문서’의 ‘스팀 키 관련 규칙 및 가이드라인’ 섹션 아래 다음 항목들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스팀 키는 스팀 내에서 게임을 판매할 때와 비슷한 형태로 외부 스토어에서 게임을 판매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때 외부 구매자들보다 스팀 내 구매자들의 거래 조건이 더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외부의 각기 다른 판매처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스팀 내 구매자들에게도 비슷한 수준(comparable)의 할인을 합리적 기간 동안 제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한한다.

▲ 만약 개발사가 극단적으로 많은 키 생성을 요구하는 반면 스팀 내 구매자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판매가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혹은 개발사가 스팀 키 판매에만 집중하고 스팀 내 구매자들에게는 제품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키 생성 요청은 거부될 수 있으며, 요청 권한이 아예 박탈될 수도 있다.

스팀웍스의 개발자용 가이드라인 中 (출처: 밸브)

이렇듯, 개발사가 외부의 스팀 키 구매자에게만 크게 유리한 가격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밸브는 해당 개발사에 대한 스팀키 발급을 완전히 중단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PC 게임을 판매하는 절대 다수의 게임사는 그 무시무시한 ‘선’을 넘고 싶지 않겠죠. 따라서 외부 판매처에 스팀 키를 공급하더라도, 기본가와 할인율 모두 스팀에서와 비슷한 수준에 맞추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개발사 및 퍼블리셔에게 정품 게임 키를 공급받는 일반적 판매 사이트라면, 현시점 <발더스 게이트 3>의 스팀 키를 60%나 할인해 판매하기란 아주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믿기 힘든 할인율을 보면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말 그대로 그것들은 믿어서는 안 되는 가격인 겁니다.

개별 게임의 스팀 내 최저가 기록을 확인하고 싶다면 스팀 API 활용 사이트인 스팀DB이즈데어애니딜이 유용합니다. 두 사이트에서 특정 게임의 타이틀을 검색하면 스팀 내 할인 이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즈데어애니딜은 스팀뿐만 아니라 유명 게임 판매점의 세일 기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어서 더욱 활용도가 높습니다. 더 나아가 해당 판매점들은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다수의 유저가 이용하고 있어서 '안전 사이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다만 제품마다 지역제한, 자체 DRM 사용 등 부가 조건이 달려있을 때가 많아 구매 전 충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즈데어애니딜의 할인 정보 화면 예시 (출처: isthereanydeal.com)


# ‘독점’ 주장 나오기도

일각에서는 밸브의 스팀 키 정책이 독점 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험블번들’을 처음 만든 기업 울파이어 게임즈는 밸브가 해당 규정을 통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며 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울파이어 게임즈에 따르면 밸브가 이토록 강력하면서도 광범위한 규정을 개발사들에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스팀이라는 시장 지배적 플랫폼을 지닌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밸브가 만약 일반적인 게임 판매점에 불과했다면, 게임사가 다른 판매점에서 진행하는 할인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해당 판매점과 담합을 하는 게 아니라면요). 하지만 밸브는 다릅니다. 현재 PC 시장에 있는 거의 모든 게임사는 규모에 상관없이 스팀 플랫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밸브가 제시하는 규정과 조건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밸브가 이렇듯 '디지털 게임 플랫폼'과 '디지털 게임 판매'라는 두 개 시장에서 지닌 파워를 이용해 독점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울파이어 게임즈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주장을 검토한 시애틀 연방 지법 재판부는 울파이어 게임즈의 혐의 제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필요성을 인정한 상황입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문제적 사이트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그러면 이들 사이트는 어떻게 그토록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게임을 판매하고 있을까요? 키를 공급하는 개발사/퍼블리셔가 그런 충격적 가격에 동의할 리 없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사이트 대부분이 공식 키 공급자가 아닌 그 외의 기업 혹은 개인으로부터 스팀 키를 입수한 뒤 재판매하는 이른바 리셀러 업체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스팀 키와 같은 ‘소프트웨어 활성화 키’의 재판매가 언제나 불법은 아닙니다.​ 또한, 스팀의 유저 약관에도 특정 조건 하에 재판매 제품 구매를 허용하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밸브가 ‘공식 인증’한 재판매 사업자에게 구매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런 공인 리셀러는 현재로서 약관에만 존재할 뿐, 실제로 알려진 사례는 없습니다.

현존 스팀 키 재판매 업체들의 문제점은 그런데 이런 공식 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입수되는 스팀 키의 출처를 엄격히 따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G2A의 ‘판매자가 되어보세요’ 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G2A의 사업 규모에 관한 자랑은 늘어놓았지만 키 공급자의 자격 요건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분 이내에 게임을 판매할 수 있다'는 유혹적인 문구도 보입니다. 이는 ‘게임사로부터 정품 키를 공급받는 안전한 사이트’라고 강조하는 그린맨게이밍 등의 예시와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700개 이상 퍼블리셔의 공식 판매점'이라고 홍보하는 그린맨게이밍 (출처: greenmangaming.com)

이처럼 헐렁한 기준을 내세운 결과 스팀 키 재판매 사이트에는 온갖 종류의 수상한 스팀 키가 쏟아지고는 합니다. 그리고 이 중에는 불법적 경로로 얻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타인의 신용카드를 훔쳐 구매한 스팀 키, 재판매 금지 조항이 걸려 있는 증정품용 스팀 키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제품 키를 구매한다면, 그 피해는 구매자에게도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도둑맞은 신용카드 주인, 혹은 증정품을 나눠준 업체 등에서 사실을 인지한 뒤 밸브에 해당 키의 환불이나 비활성화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돈 주고 산 게임 키가 갑자기 계정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크래프톤 산하 ‘언노운 월즈’는 과거 도난 신용 카드로 구매된 <내추럴 셀렉션 2> 스팀 키 1,341개를 환불 조치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발생한 카드 수수료 3만 달러가량을 카드 소유주에게 물어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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