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에서 역대급 인기를 기록한 게임 <팰월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게임일까? 일본의 블로그 사이트 '노트'에는 개발사 '포켓페어 게임즈'의 대표 '미조베 타쿠로'가 게임 출시 직전에 작성한 회고록이 있다.
제목은 "3일 뒤 운명이 정해지는, <팰월드>라는 우연한 이야기"다. 미조베 타쿠로는 여섯 가지 기적이 있었기에 <팰월드>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2년 동안 만든 첫 게임, 출시조차 되지 못하다.
포켓페어 게임즈는 2015년 설립됐지만, 전문적인 개발자가 모인 거대한 개발사는 아니었다. 대표 미조베 타쿠로는 'JP 모건'에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자신의 대학 후배와 개발사를 설립했다. 이것이 포켓페어 게임즈의 시작이다.
대표는 업계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개발사기에 항상 "이거, 어떻게 만들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아마추어였기에 업계의 관행에 묶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우리가 현금이 풍부한 상태였다면 <팰월드>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미조베 타쿠로는 게임 개발과는 본래 거리가 멀었다
2010년의 커리어는 번역기 오류로 '닌텐도 주최 게임 개발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닌텐도 개발자가 아니다. (출처: 포켓페어)
그러나 포켓 페어가 처음 개발한 게임은 2년 간 개발했음에도 출시조차 되지 못했다. 퍼블리셔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만든 프로토타입을 들고 퍼블리셔를 찾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게임 업계 경험이 없었고, 상업적으로 게임을 성공시킨 경험도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에는 유명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 개발이 유행하고 있었다는 점도 컸다.
대표는 게임 개발이 "근본적으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대박이 나면 큰 이익이 나지만, 아니라면 개발비조차 회수하기 어렵다.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란 것인데, 게임이 히트할지 말지 여부는 사전에 거의 알 수 없다. 대형 타이틀일수록 알 수 없는 것은 더욱 많아진다.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 즉 실적이 중요했다고 전했다. 실적이 있는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실적이 있는 IP를 통해 실적이 있는 게임 장르를 만드는 것이 "성공할 지 말지 알기 쉬운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 확률은 높지 않기에 자신들과 같은 '실적 없는 개발사'가 '실적 없는 디자인을 가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자금을 지원받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조베 타쿠로는 "체급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 운은 스스로 잡는다.
거절에도 불구하고 미조베 타쿠로는 과감한 판단을 했다.
게임 내용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유통하기로 결정했다. 감당 가능한 크기의 게임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유통하면 된다는 것이다. 스팀을 통해 여러 게임이 출시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을 느기기도 했다. 그렇기에 당시 유행했던 <슬레이 더 스파이어>와 <크래시 로얄>을 조합한 <오버 더 던전>을 출시해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에는 <크래프트토피아>, <AI 아트 임포스터>를 순차 출시했다.
다만, 반드시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크래프팅 게임인 <크래프토피아>는 본래 배틀로얄 게임을 만들려 했으나 기획이 틀어지며 개발됐다.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버그가 많아 하루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크래프토피아>는 괜찮은 판매량을 올렸다.
# <팰월드>를 만든 여섯 가지 우연
"팰월드는 '올바른 게임 개발 방식'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미조베 타쿠로는 <팰월드>에 대해 "출시할 수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게임 디렉터를 맡게 된 인물부터 우연히 트위터에 있는 공고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왔었기 때문이다. 미조베 타쿠로는 <팰월드>가 나올 수 있었던 운이 좋았던 일을 여섯 가지 기적이라고 칭했다.
1. 20세 편의점 알바가 '에이스'가 되다.
"우연히 채용한 멤버가 우연히 우수했다."
<팰월드>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총을 쏘는 것'을 핵심 중 하나에 두기로 결정했다. 당시 일본에서 배틀로얄의 유행과 함께 FPS와 TPS 장르 게임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총을 사용하는 액션 게임을 만들어 본 경험자를 채용하기 어려웠다. 일본 개발자는 FPS 장르를 잘 안 만들며, 능력 있는 개발자가 이런 작은 회사에 찾아온다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조베 타쿠로는 어쩔 수 없이 트위터에서 총을 키워드로 검색을 차근차근 해 나갔다고 언급했다. 그런 와중 이상한 계정을 하나 찾았다.
"이 사람, 총기 재장전 애니메이션만 투고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모든 트윗을 영어로 하며 미소녀가 총을 재장전하는 동영상만 투고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미조베 타쿠로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꼭 개발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연락했다. 놀랍게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의 평범한 프리터였다. 게임 개발 경험은 없었다. 프로토타입 동영상을 보내고 개선점을 묻자 25분 만에 장문의 답변이 왔다.
미조베 타쿠로는 즉시 같이 일하자고 요청했다. 원격으로 1달 정도 업무를 진행하자 언리얼 엔진 4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했다. 성격도 정중했다. <팰월드> 개발자 모두가 같이 일하기를 원할 정도였다. 해당 인물은 즉시 채용됐다. 그리고 2년 간의 개발 기간을 거치며 <팰월드>의 개발 에이스가 됐다.
작업 속도가 빨랐고, 동영상을 투고한 경험이 있어 캐릭터 모션과 효과음 조정 전반에 대해 능숙했다. 언리얼 엔진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블루프린트'의 구축 전반도 스스로 담당했다. 단순히 총기를 넘어 모션, 카메라, 사운드 등 전반적인 부분을 홀로 담당했다.
2. 유니티에서 언리얼 엔진 4로의 기적적인 전환
본래 <팰월드>는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됐다. 에셋 역시 유니티의 것들을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10년 차 베테랑 프리랜서 엔지니어로부터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크래프트토피아>와 같은 게임을 너무나 재미있게 즐겼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언리얼 엔진 개발 경험만 있지 유니티 엔진 개발 경험이 없었다는 것. 여기서 미조베 타쿠로는 경력 있는 엔지니어를 믿고 <팰월드>를 다시 언리얼로 만든다는 결정을 했다. 베테랑 엔지니어에게 아예 엔진을 맞춰준 것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개발 이후 합류한 5명의 새로운 엔지니어도 언리얼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제로 베이스부터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유니티의 에셋을 언리얼로 포팅할 수는 없기에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10년 차 엔지니어는 팀을 어떻게 운영하고 교육할지에 대해 알고 있었고, 언리얼 엔진으로의 전환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3. 몬스터를 100명 이상 만들어야 하는데, 애니메이션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팰월드>의 몬스터는 '팰'(팔)이라고 불린다. 문제는, 팔 하나를 만드는 데만 1개월 이상이 걸렸다.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미조베 타쿠로 대표는 '리깅'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른 부분은 에셋을 사면되지만 펄은 직접 만들어야 했다. 애니메이션 역시 인간이라면 에셋을 사면되지만, 펄은 전부 개별로 만들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게임 개발 반 년 이후였다.
그런 와중 채용 사이트를 통해 <크래프트토피아>를 재미있게 즐겼다는 베테랑 애니메이터가 합류했다. 애니메이터는 "100개나 만든다고요? 이 인원으로?"라며 놀라면서도 "새로운 제작 방식을 보고 싶어서 이 회사에 왔다"며 홀로 체계를 정리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미조베 타쿠로는 "우연히 이 분이 합류해 줬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라며 "이후에도 계속 채용을 받았지만, 이런 베테랑은 한 명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4. 예산 관리를 아예 안 했다. 개발비는 10억 엔(약 90억 원)이 들어갔다.
<팰월드>는 본래 가볍게 만들어질 게임이었다. 1년 정도의 개발 기간을 상정했다. 당시 총 직원은 10명 정도였고, <팰월드>에 붙은 개발자는 4명 정도였기에 오랜 개발 기간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본 토대 시스템 구축에만 오랜 기간이 걸렸다. 1년 정도 개발했지만 뼈대 정도만 완성된 상태였다. 미조베 타쿠로는 "예산 상한선은 우선 은행 계좌 잔고가 0이 될 때까지"라고 생각했기에 예산 관리를 하지 않았다. 어떤 게임으로 만들어질지 알 수 없다면, 그냥 회사 예산이 허용하는 한까지 개발해 보자는 것이다.
2021년의 <팰월드>
이렇게 계획이 점점 커지며 <팰월드>는 3년 동안 개발됐고, 40명 이상의 개발자를 추가로 채용했다. 게임 출시일이 결정되자 회사 잔고는 정확하게 바닥 근처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미조베 타쿠로는 "아무래도 기적"이라며 "<크래프트피어>가 10억 엔(약 90억 원) 정도의 매출을 냈는데, 이것이 전부 바닥났다"고 했다.
5. 서류 탈락시킨 신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다.
<팰월드>의 몬스터 디자이너는 본래 포켓 페어의 채용에서 서류 탈락했다. 그림체가 지나치게 개성적이었단 것이 이유였다. 탈락했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몇 달 후 꼭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다시 왔다.
처음에는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이었지만 결국 채용이 결정됐고, <팰월드>의 캐릭터 대다수는 이 신입 사원이 그리게 됐다. 미조베 타쿠로는 "무서운 재능이 있었다"라며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피드백도 1분 만에 반영하며, 영어에 능숙하고 해외의 밈도 잘 알고 있어 "정말 딱 맞는 인재"라고 회고했다.
6. 이런 우연이 모여 만들어낸 <팰월드>
미조베 타쿠로는 이처럼 많은 우연이 겹쳐 <팰월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서류 탈락한 디자이너가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트위터에서 찾은 20대 편의점 알바생이 일을 같이 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언리얼 4 엔진으로 과감하게 전환하지 않았다면, 베테랑 애니메이터가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팰월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포켓피아의 전작인 <크래토피아>나 <AI 아트 임포스터>와 같은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들이 채용에 지원한 사례가 많았고, <오버 던전>이나 출시되지 못한 첫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앞선 게임들은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경험이 낭비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미조베 타쿠로가 글을 작성한 시점은 <팰월드> 출시 3일 전이다. 글 말미에 그는 "아무쪼록 3일 후에 도산하지 않는다면, 신작도 생각해 보겠다(아이디어는 없음)"라며 농담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