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는 강아지를 불안하게 해요"
방송에서 일명 개통령으로 불리는 훈련사 강형욱이 했던 말이다. 불안(不安)은 문자 그대로 편안하지 않음을 뜻한다. 개가 아니라 사람의 경우는 어떠한가. 무엇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가령, 정해진 시간까지 직장의 임원들에게 중요한 업무에 대해 보고해야 하는데, 남은 시간은 촉박하고 보고서는 모두 엉망이 되어 있다면 어떨까. 이쯤 되면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까운 상황이다.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는 15분의 루프 안에 갇힌 주인공이 3개의 보고서를 찾아 업무 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퍼즐 게임이다. 눈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연출과 설정, 매력적인 도트 그래픽, 게임 밖의 요소까지 적극 활용하는 ARG(대체 현실 게임) 요소 또한 포함되어 있으니, 꼭 한 번 플레이해보시라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심지어 무료다.
또한, <웬 더 패스트 워즈 어라운드>,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로 유명한 인디 개발사 모지켄이 개발했고, <커피토크> 시리즈로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토게 프로덕션이 퍼블리싱하는 작품이니, 믿고 보는 조합이다. 과연 당신은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의 주인공을 죽음의 타임루프 안에서 구출할 수 있을까?
게임명: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
장르: 미스터리, 퍼즐, ARG
개발사: 모지켄
퍼블리셔: 토게 프로덕션
플랫폼: 잇치 아이오(2023년 8월 출시), 스팀(2024년 1월 18일 출시)
가격: 무료
한국어 지원: X
11시 45분. 어질러진 방 한 가운데에서 잠들어 있던 주인공은 시끄러운 전화기 때문에 눈을 뜬다. 직장의 임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에 대한 업무 평가가 안 좋았던 상황. 왜 이렇게 중요한 때에도 늦잠을 잤던 것일까.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보고서를 챙겨서 임원실로 찾아가야 한다. 그나저나 방 열쇠를 어디다 뒀더라.
11시 50분. 집에서 회사까지 이동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지하철을 타면 5분이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지하철에서 5분이나 날려야 한다니. 역세권이라 다행이라고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11시 52분. 회사 로비에 도착했다. 무려 60층 높이의 건물. 31층 서버실처럼 접근 제한 구역도 있지만, 지금 가야 하는 곳은 임원실이 있는 꼭대기 60층이다. 아무리 고속 엘리베이터라도 이 안에서 1~2분이 또 지체된다.
11시 55분. 임원실 앞 사무실. 분홍색 파일은 3개 모두 있는데, 문서는 [D1] 한 장만 남아 있다. [D2]와 [D3]는 어디로 간 거지. 젠장,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불안하다.
12시 00분. 이사를 비롯한 임원 3명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D1] 문서를 확인했다. 만족스러운 눈치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한다. 임원은 이어진 테스트도 잘 통과했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하며 [D2], [D3] 파일을 열었다. 애석하게도 문서는 없다. 크게 실망했다는 이사는 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낸다. 주인공을 보며 말한다. "자네는 해고야."
"탕!!!" 총성 이후 바닥에 쓰러진 주인공. 고통 속에 잠시 정신을 잃는다. 눈을 떠보니 휴대폰이 울리고 있다. 시계는 11시 45분. 잠시 생각을 되짚어보던 주인공은 사라진 보고서를 찾기 위해 방에서 몸을 일으켜 회사로 향한다.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는 주인공이 처한 막막한 상황을 플레이어 또한 실감하게 만들기 위해 꽤 어려운 퍼즐을 준비했다. 상호작용할 수 있는 물체는 분홍색으로 표시하면서, 모든 대상을 다 클릭하는 수고로움을 없앤 친절함이 돋보였지만, 일단 언어부터가 문제다. 단순한 한국어 미지원을 넘어,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플레이해도 철자의 순서를 뒤바꿔 표기하는 애너그램의 장벽부터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쿠아리움을 'QRIAUUMA'로, 문서가 파기됐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Destroyed를 'rydDeesto'로 표기하는 식이다. 사실 여기까진 괜찮다. 맥락이나 주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면, 애너그램 트릭은 게임 진행에 있어 발목을 잡는 수준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이후 기술할 ARG 요소에서 시작된다.
11시 53분 전까지 사무실에 도착하면 문서 파쇄기에 [D2] 보고서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보고서 안에는 https://로 시작하는 주소가 있고, 이를 실제 웹 브라우저에 입력하면 웹페이지가 뜬다. 사이트에서는 지금의 주소 뒤에 /(리포트 넘버 아이디)의 형태로 슬래시와 함께 아이디를 입력하라고 한다. [D2] 문서에 대해 정보를 얻으려면 앞서 메모에서 얻는 힌트와 조합해 '/782'를 붙이는 형태다.
이렇듯 게임 밖의 요소를 인게임 요소와 함께 활용하는 게임을 대체 현실 게임(ARG)이라고 부른다. 초기에 주어진 힌트에 비해서 불친절한 진행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한 번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고 나면, 오히려 일반적인 퍼즐 게임 이상의 재미에 푹 빠져 이런 게임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
힌트가 부족하다고? 11시 53분이라는 정보를 다르게 활용해보면 어떨까? 11시 53분에 회사 로비에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 '스트레인저'라 표시되는 이름 모를 인물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다. 다소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타임루프를 뚫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며, 힌트를 제시한다. 요약하면 '글리치'를 파훼하라는 것이다.
게임 안에는 화면이 깨진 듯한 표면이 회사 로비, 보고서 등 몇 곳에 있다. 스트레인저가 알려준 아이디를 웹사이트 주소 뒤에 입력하면, 특정 페이지가 뜬다. 그곳에선 인게임의 깨진 화면에서 게임 설정을 조작해 '화면 밝기'를 0으로 내리면 가려진 정보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 등장한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입사 초기에 상사로부터 "모르겠으면 꼭 물어보고 움직이세요"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회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게임도 마찬가지다. ARG 요소를 포함해 이후 이어지는 퍼즐들은 더 높은 난이도를 과시하는데, 개인적으로 다른 플레이어의 워크쓰루나 공략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르면 물어보라, 그것이 신입의 자세 아니겠는가.
앞서 퍼즐의 난이도가 높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해법을 알고 보면 무지막지한 난이도는 아니다. 오히려 난이도보다는, 15분 루프가 반복되는 구조다 보니 특정 동선 및 동작을 반복하게 되어, 빨리 감기 기능이 있음에도 다소 루즈한 구간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그 외에는 분위기, 연출, 퍼즐, 주제 의식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누군가에게 직장 생활은 무한히 반복되는 15분처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것이고, 윗사람이나 외부의 평가 한 마디가 목숨을 위협하는 총알일 것이다.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는, ARG 플레이를 통해 '밖'으로의 환기를 연상시킨 것처럼, 게임의 주제를 통해 일과 노동 그리고 사회에서의 평가가 인생의 전부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삶에 힌트가 부족하다면 가끔은 밖으로 눈을 돌려보시라.
만약 당신이 <12분>이라는 타임루프 인터랙티브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했다면, 그리고 모지켄의 <웬 더 패스트 워즈 어라운드>,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를 즐겼던 게이머라면, 이 무료 퍼즐 게임을 꼭 한 번 플레이해보시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