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유럽 연합(EU) 지역에서 자사 제품 내 ‘서드파티 앱 마켓'을 허용하면서, 개발사들에 새로운 요금 정책을 적용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 구체적 내용에서 지난해 논란을 일으킨 유니티의 ‘런타임 요금제’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5일(현지 시각) 애플은 자사 단말기들에서 EU 지역 한정으로 사이드로딩, 즉 ‘애플 앱스토어’ 외 앱 마켓을 통해 앱을 설치하는 기능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EU의 디지털시장법(DMA)에 대한 반응으로 관측된다. 독점 방지법인 DMA는 애플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사 앱 마켓을 통해서만 앱을 배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에 따라 개발자들은 EU 지역에 한정해 아이폰, 아이패드 등 기기에서 애플 앱스토어 외 경로로 앱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 경우 애플은 앱 스토어에서 부과하던 30%의 판매 수수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애플 앱스토어 자체 수수료도 기존 30%에서 17%로 인하 예정이다. 소규모 사업자들의 경우 기존 15%가 아닌 10% 수수료를 적용받게 된다.
그러나 애플은 이런 ‘외부 판매’에 대해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해당 앱이 100만 다운로드를 넘길 경우, 개발사로부터 ‘설치 1회당 50유로센트’의 고정 요금을 받겠다고 발표한 것.
다운로드 횟수는 유저 1명당 1회씩만 집계되지만, 1년이 지나면 집계가 새로 이뤄진다. 더 나아가 앱 업데이트 역시 ‘다운로드’로 집계된다. 대다수 인기 앱은 최소한 1년에 1회 이상 업데이트를 한다는 점에서, 상당수 개발사는 ‘매년’ 애플에 일정 요금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정확히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앱을 가정하면, 애플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50만 유로(약 7억 2,000만 원)다. 문제는 기존처럼 ‘수익 중 일부’를 납부하는 대신 다운로드 횟수에 비례해 요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료로 앱을 배포한 뒤 인앱 결제로 수익을 올리는 대다수의 앱 개발사에 영향이 갈 만하다.
이용자 수가 많은 대형 개발사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외신 더 버지는 페이스북의 예시를 통해 이 점을 지적했다. 더 버지에 따르면 EU 지역 내 월간 페이스북 이용자는 총 4억 800만 명이고, EU에서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은 3분의 1 정도다.
페이스북 이용자 중 아이폰 유저가 3분의 1을 차지하며, 이들이 모두 외부 스토어를 이용한다고 가정한다면, 매년 페이스북이 애플에 넘겨야 하는 돈은 6,750만 유로(약 972억 원)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 가정이지만, 대기업들에 부과될 잠재적 요금 규모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짐작할 근거는 된다.
마지막으로 애플에 진입하는 서드파티 앱 마켓 운영사들 역시 영향을 받을 예정이다. 이들은 100만의 횟수 기준 없이 매해 연간 설치 유저마다 50유로센트를 지급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규정은 유사한 정책으로 큰 반발을 얻었던 유니티 ‘런타임 요금제’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9월 유니티는 유니티 엔진을 이용해 게임을 만든 모든 개발사에 게임 누적 설치 횟수를 기준으로 설치 1회마다 고정 요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특정 설치 횟수를 넘긴 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제도가 소급 적용된다는 점 등 세부 사항도 비슷하다. 제도를 안내하며 ‘실제로 제도를 적용 받는 개발사는 1% 미만’이라고 언급한 점도 마찬가지다. 유니티의 경우 ‘90% 이상의 고객은 가격 정책 변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런타임 요금제’ 발표 직후 유니티는 전 세계 개발자들로부터 동시다발적 비판과 반발에 노출됐고, 결국 수일 만에 요금제를 대폭 축소해야만 했다.
애플이 이번 정책을 유지한다면 적지 않은 개발사가 외부 앱 마켓을 통한 판매에 소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외부 앱 마켓을 직접 운영하는 기업들이 애플 진출을 꺼리게 하는 장애물로도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규제 우회로 해석될 수 있는 이번 행보에 향후 EU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