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전쟁에 반대한다는 신념이 있다며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남성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1, 2심에 이어 대법원도 이 남성 A씨가 주장한 신념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11월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직접 수령하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재판에서 "폭력 및 전쟁에 반대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에서는 A씨는 '군법은 인권적이지 않고 군 생활에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다', 부조리에 의해 부당한 명령이 만연한 곳인 군대를 거부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인권침해 및 부조리 등은 집총 등 군사훈련과 본질적인 관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무하는 부대 및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어 양심적 병역거부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아울러 A씨가 비폭력·반전·평화주의 등과 관련된 시민단체 활동을 하거나 그와 같은 신념을 외부에 드러낸 적이 없으며 평소 총기로 상대방을 살상하는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즐겨한 점을 근거로 "피고인의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확인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히며, A씨가 입영 거부 전까지 대학 입시 및 진학·재학, 자격시험 응시, 국가고시, 공공기관 채용시험 응시 등 각종 이유로 입영을 연기한 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앞서 2018년 '집총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다만 무분별한 병역거부가 이뤄지지 않도록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함을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간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 있어 피고인의 게임 접속 유무를 참작해 재판을 진행해 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 교리 상 '폭력적 게임'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신념이 깊고, 확고하고, 진실하다면 그 신념에 따라 폭력을 수행하는 게임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다.
반면 대체역 복무 제도가 없었던 당시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폭력이 수반되는 게임을 이용한 적이 있음에도 무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다. <서든어택> 접속 이력이 있으나, 전체 접속 시간이 1시간 미만으로 짧고 청소년기였던 만큼 신념에 차이가 생겼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한편 개인의 양심과 신념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것에 '게임 이용 여부'를 참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전쟁을 주제로 할 수 있음에도 유독 게임만 참고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제작: Bing 이미지 크리에이터)
한편 국회는 2019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역 신설을 둔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한민국은 2020년 시행된 병역법 개정안 및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하 대체역법)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대체역으로 편입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체역법 제3조에선 대체역으로 복무하려는 사람은 입영일 또는 소집일의 5일 전까지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편입을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체역 편입을 신청하면 병무청장 소속 심사위원회의 심사 과정을 거쳐 대체역 복무 여부가 결정되나, 이번에 징역형을 선고받은 A씨는 그러한 과정 없이 예정된 입영일 3일 이내에 입영하지 않아 병역 기피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