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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솥뚜껑, 내 심장!" 갑툭튀 없어도 무서운 백룸 '풀스'

이렇게 복잡한데 길을 안 잃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04-30 16:37:08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오늘 소개할 공포 게임 <풀스>에 딱 어울리는 문장이다. '공포'라는 단어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스팀 페이지에서부터 "당신을 쫓거나 화면을 향해 뛰어드는 몬스터가 없다"고 명시했으니 말이다. 일명 갑툭튀, 깜놀 요소가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2~3시간 내외의 플레이타임 동안 심장이 아주 쫄깃해지는 경험을 했다. 도시 괴담에서 파생된 장르 중 하나인 백룸(backrooms, 반복되는 무한의 공간) 콘셉트를 차용한 게임으로, 기묘한 공간이 주는 긴장감이 압권이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다가 마주치는 '고무 오리'에도 화들짝 놀랄 만큼, 몰입감이 굉장했다. 


4월 26일에 출시된 <풀스>는 이런 매력으로, 며칠 만에 629개 스팀 리뷰 중 95%가 긍정적인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백룸 스타일의 공포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직접 플레이하면서 놀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길을 헤맨다는 감각을 주면서도 결과적으로 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고, 알 수 없는 공간은 두려운 동시에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런 이질적인 감각이 동시에 전달됐을까?




게임명: <풀스>
장르: 공포, 어드벤처, 방탈출
출시일 및 플랫폼: 2024년 4월 26일/ 스팀
개발사/배급사: 텐서리
가격: 11,500원
한국어 지원: O

# 기묘한 공간에서의 탈출 그리고 솥뚜껑

<풀스>는 제목처럼 '수영장', '목욕탕' 또는 '물이 차오른 공간'을 지나 출구를 찾아가는 게임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는 굉장히 명확하다.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서의 리얼한 공포다. 플레이어의 숨소리, 걸음 소리, 물이 찰랑거리고 첨벙첨벙 튀는 소리, 공간의 백색 소음과 울림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순간에는 배경음악도 없으며, 시야를 가리는 인터페이스도 없다. 말 그대로 공간과 탐색에만 집중하면 된다. 


심지어 스토리, 대사, 캐릭터, 메모 등 흔히 있을 법한 설정을 담아내는 요소도 없다. 대신 게임은 조명과 길의 배치, 공간의 구조과 크기, 기묘한 조형물 등으로 계속해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매우 영리하게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느 길로 가볼래?", "이 조각과 그림은 여기에 왜 있을까?", "여기선 뛰어내려야 하는 걸까?"


정신을 잃었던 주인공은 눈을 떠 보니 수영장 같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얕은 물을 가로지르거나
미끄럼틀, 사다리, 계단을 타는 등 경로도 많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게임에는 갑툭튀가 없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에 놀랐다면, 그 대상이 당신을 놀래킨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대상을 보고 당신이 놀란 것 뿐이다. 이 게임의 두려움은 '자라'가 아닌 '솥뚜껑' 같은 공포다. 


<풀스>는 총 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뒤로 갈수록 미술관, 마을, 공장 등 다양한 콘셉트가 혼재되기 시작하며 초현실적인 조형물이 당신을 맞이하기도 한다. 온갖 것들이 뒤섞인 세계에서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질문은 무색해진다. 처음엔 두려웠던 대상들을, 가까이 다가가 감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낯선 세계를 알아간다는 측면에서 '어드벤처' 게임의 본질을 잘 꿰고 있는 게임이다.


오리는 죄가 없다. 놀란 내 심장이 문제지.

거대한 전시관을 보는 느낌도 든다. 나가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풀스>는 말 그대로 '솥뚜껑' 같은 게임이다.


#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백룸 스타일의 게임에서는 보통 갈림길이 끊임없이 제시되곤 한다. 양갈래, 세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고르고, 시야를 가리는 기둥이 많은 공간에서 어디에 다음 길이 숨겨져 있을지 찾는 과정은 설레는 동시에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로 찾기에 지쳐 우수법, 좌수법처럼 한쪽 벽을 따라 가는 단순 반복을 선택하는 유저도 종종 있다.


하지만 <풀스>는 조금 달랐다. 갈림길, 가려진 경로가 수없이 등장하는 것은 동일했으나, 그 안에서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방식이 친절한 편이었다. 길찾기가 쉬운 게 아닌, 길을 잃어도 짜증이 덜 나게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가령,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빠르게 막다른길을 만나 되돌아가게 했고, 여러 흩어진 경로가 결국은 출구로 귀결되는 맵도 있었다.  


게임 플레이의 90% 이상은 "여기 길이 있지 않을까" 싶은 곳에 정답이 계속 이어져 길찾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었던 게임이다. 또한 눈에 띄는 특징(특이한 조형물 또는 원색의 미끄럼틀 등)을 종종 남겨둬 같은 곳으로 되돌아왔을 때 빠르게 이를 인지할 수 있었다. 계단이 많아 여러 층의 공간을 파악해야 했던 4챕터와 어두운 지하를 넘나드는 5챕터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길을 헤맨 경험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길을 잘 찾아 왔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는 점이 독특했다. 공포 게임 초심자도, 길치도 즐길 수 있는 백룸 스타일 게임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어디로 가는 게 정답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당신은 출구를 찾게 될 테니까.

공간을 참 잘 활용한 게임이다.

# 조금씩 더 기묘한 세계로

<풀스>는 초반에는 수영장, 목욕탕, 하수도 어딘가를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다가, 점차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인다. 곡면을 따라 걸으면서 중력의 방향을 바꿔, 같은 공간을 90도, 180도 꺾은 채 다시 활용하기도 한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술관이나 마을이 등장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플레이어의 이동에 맞춰 공간이 변하는 구간도 존재했다. 


<슈퍼리미널>, <뷰파인더> 등의 게임​을 좋아했던 유저라면, 이런 초현실적인 공간 연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마을 한 가운데를 횡보하는 구간은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곡면을 따라 걸어 중력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같은 공간을 여러 차례 활용한 구간도 있었다.

<트루먼 쇼>가 떠오르는 가짜 하늘과 가짜 마을
 

유저들은 "백룸 관련 게임 중 가장 퀄리티가 좋은 것 같다", "몽환적이면서 기괴함이 섞인 구조물에 감탄하면서 관광한 느낌이 드는 게임", "기존 백룸은 쫓기느라 정신 없는데, 이 게임은 그렇지 않아 좋았다", "끝까지 아무것도 나를 직접 해하지 않는데 이상하리만치 무섭다"는 평가를 남겼다.


초여름 날씨가 다가온 요즘, 시원한 수영장에서 탈출하는 게임으로 들어가 새로운 공포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갑자기 분위기 미술관

대리석 조각과 타일의 매끈한 질감이나, 게임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물 표현 등 
매우 사실적인 그래픽이 몰입감을 키워준 게임이다.
반전이 있다면 언리얼이 아닌 유니티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 게임의 계절이 슬슬 다가오고 있다. <풀스>로 준비 운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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