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종교를 믿으시나요? 기자는 초코파이 주면 절에 가고 데리버거 주면 교회 가던 속물 중의 속물인지라 믿음을 논하기 부끄러운데요. 한국갤럽이 올해 한국의 종교 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교 없음이 60%, 개신교 17%, 불교 16%, 천주교 6% 순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로 한국의 탈종교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강력한 것 같습니다. 당장 이번달만 봐도 초대형 교회를 설립한 목사의 장례식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고, 트럼프, 아베 두 전직 국가 정상이 모 종교의 행사에 깜짝 등장해 축사를 남겼죠. 2021년에도 40% 정도의 인구는 종교에 소속되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그 종교의 열쇠를 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한국에만 약 76,000여 개의 종교단체, 1,100여 개의 종교법인이 운영되고 있다네요.
종교의 욕구가 있다고 한들, 일요일에 눈뜨기도 버거운 우리가 종교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죠? 그럴 땐 시뮬레이터가 있습니다. "자기야, 나 사이비 종교에 빠졌어"로 번역할 수 있는 <허니, 아이 조인드 어 컬트>(Honey, I Joined A Cult)는 종교를 만들어 건물을 올린 뒤 신앙 공동체를 운영하는 콘셉트의 타이쿤입니다.
명작 생존 시뮬레이션으로 꼽히는 <림월드>와 감옥 운영 게임 <프리즌 아키텍트>를 즐기셨다면 가볍게 즐겨볼 만합니다. 소위 '병맛' 내지는, 사이비 종교라는 특이 취향에 이끌린다면 추천합니다.
교주는 다른 동네에서 사이비 종교를 운영하다가 곤경에 처했습니다. 당장 지역에서 나가라는 시위대와 몰려드는 경찰 병력을 마주했기 때문이죠. 그는 열성 추종자들과 함께 비자금 가방을 들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 새 살림을 꾸립니다. 이른바 '세탁'을 한 것이죠.
플레이어는 새로운 동산에서 여러 시설을 짓고 신도와 자금을 모아 교세를 확장하고, 경찰의 눈을 피해서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쳐들어가 종교를 홍보해야 합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풍자적인 유머 코드를 가지고 있는 타이쿤이지만, 관리해야 할 특성이 여러가지라서 플레이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신도들로부터 '돈'을 모아서 부지를 확장하고, 종교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향력'으로 테크트리를 연구하고, '믿음', '홍보', '갈등' 수치도 관리하는 와중에 아예 시설에 눌러 사는 추종자들의 바로미터도 챙겨야 합니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종교란 영적 체험과 더불어 생활과 복지까지 두루 챙겨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종교 시설은 일종의 테마 파크로 시설에서 먹고 자는 추종자들을 위한 생활 공간과 '명상 스튜디오', '구더기 치료', '지옥의 열기'와 같은 체험 공간으로 분류됩니다. 종교의 '홍보' 바로미터를 올릴 수 있는 미션을 준비하는 방이나 테크트리를 연구하는 연구실도 준비되어있습니다.
공동 생활을 하는 공간이 으레 그러하듯 각종 기물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고장이 나는데요. 관리실에서 기술자를 보내 깨진 변기를 고치는 것도 일입니다.
게임의 AI는 그렇게 똑똑한 편이 아닌데, 변기가 고장나면 모두가 일을 못 보고 식탁이 망가지면 추종자가 굶어 죽기까지 합니다. 기술자는 일과 시간에만 일을 하기 때문에 재깍재깍 유지, 보수를 해두지 않으면 대참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추종자들이 몇 명 죽는다고 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중차대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신도 중에서 새 추종자를 수급하면 그만이거든요.
게임은 시내로 추종자를 파견해 장식물을 빼오는 것과 같은 기상천외한 미션과 "신도들로부터 돈을 더 많이 갈취해야 한다"와 같은 상태 메시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플레이어의 종교가 비정상적인 사이비라고 인지시킵니다. 급하게 세탁한 종교에 신도들이 모여서 급조한 신적 대상을 느끼고 돈을 지불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깊이는 <림월드>에 비해서 떨어지지만, 분명 다른 타이쿤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입니다.
<허니, 아이 조인드 어 컬트>는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설정 상으로 급조한 신적 대상에 목숨을 메는 신도들이지만, 이들의 믿음 하나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돈을 모아서 오트밀죽이라도 쒀서 먹야야 추종자들이 죽지 않습니다. 게임 속 종교는 일종의 '믿음 비즈니스'로 '약발'이 먹히는 치료 등을 제공하면서 헌금을 모은 뒤 추종자들의 의식주를 신경써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었다는 감각에 심취해 예배당을 치장하는 데 빠졌다가는 게임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추종자들의 후생복리를 신경써야 종교를 잘 관리할 수 있죠. 사이비 종교의 창립자이자 게임의 중심이 되는 교주의 바로미터가 떨어지면 설교의 효능도 떨어지기 때문에 좋은 밥을 먹이고, 좋은 침대에서 재워주는 게 좋습니다.
게임은 아직 얼리 엑세스 단계입니다. 기자가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테크트리를 끝까지 올리면 실제 사례처럼 사회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거나,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거기까지는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타이쿤이 정상 궤도에 들어서면, 그러니까 돈이 쭉쭉 들어와서 여유로워지면, 바라던 다음 단계가 없어서 금방 질려버리는 것입니다.
몇몇 사이비 종교가 자행한, 차마 언급하기도 끔찍한 행동들을 게임을 통해 재현하게 하면서 또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주로 하여금 추종자와 신도의 삶을 통제하는 규율을 반포할 수 있게 하면 재미를 더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우유를 먹고 1~2시간 후에는 고기를 먹어도 되지만 고기를 먹고 나서는 6시간 후에 우유를 마셔야 한다' 말이죠. 뜬금없이 무슨 규율을 예로 들었냐고요? 기자가 만든 것은 아니고 고기와 우유 섭취에 관한 유대교의 코셔(Kosher)입니다.
프로그램을 돌린 뒤 검수를 하지 않은 듯한 한국어 번역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게임의 유머 코드를 오롯이 즐길 수 없었던 데다, 플레이에 거슬리기도 했습니다. 물건에 해당하는 오브젝트를 목표로 옮겼으니 안타까운 수준입니다.
<허니, 아이 조인드 어 컬트>의 종교를 찾는 NPC들은 예배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효과가 불분명한 치료를 받으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울타리 안의 활동밖에 없는데요. 울타리 밖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이토록 수상해 빠진 종교 시설에 매일 같이 출석하며 돈과 시간을 쓰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작년 봄 한국 사회를 달구었던 화두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에 빠졌나"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나왔죠.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신천지에 출석했다가 이제는 '탈출'했다는 어느 청년 이야기였습니다. 바깥에서는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 그곳에 나갈 때마다 '-님'이라고 불러주며 세상 소중하게 여겨주니 몸과 마음을 두지 않을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직접 세운 낙원에서 소중함을 되찾은 NPC들을 탑뷰로 바라보며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자꾸 장사가 잘되느냐'던 <극한직업> 대사도 스쳐갑니다. 무기력한 사람은 강력한 존재에 이끌리고, 소속감을 느끼고, 그를 위해 희생하면서 모종의 즐거움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강력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신도들의 무기력을 채워주며, 돈까지 잘 벌고 있으니 기자는 성공한 사이비 교주입니다.
그나저나 NPC가 맵 밖에서 겪을 무기력까지 헤아리고 있다니, 추석 연휴 내내 <허니, 아이 조인드 어 컬트>에 푹 빠진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