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직역하면 ‘총을 든 마법사.’ 이렇게 직설적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임은 이른바 총마술사(Gunmancer)라고 불리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장르는 탑다운 뷰의 크래프팅 액션 게임으로, 비주얼과 시스템에서 유명 작품인 <돈 스타브>와 <돈 스타브 투게더>를 참고한 흔적이 많습니다.
총으로 마법을 부린다는 콘셉트 외에도, <위자드 위드 어 건>는 콘텐츠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총기라는 익숙한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조금의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게임인지 함께 알아봅시다.
<위자드 위드 어 건> 출시 트레일러
모종의 사건으로 멸망해 버린 세상을 마법(총)의 힘으로 되돌리는 것이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할 일입니다.
‘탑’이라고 불리는 안전한 차원이 주인공의 피난처이자 생활 본거지가 됩니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여러 '마기'(마법 도구)들을 이용해 자원을 가공하고, 총마술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각종 가구를 설치해 거처를 꾸밀 수도 있습니다.
탑에 있는 ‘타륜’이라는 이름의 고대 장치를 이용하면, 멸망한 세계의 시간을 그 전으로 조금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 뒤 ‘문’을 통해 세상으로 넘어가 탐험하면 됩니다. 주어진 5분의 제한 시간 속에서 주인공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NPC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거래하고, 자원을 모으고, 보스를 찾아내야 합니다.
제한 시간 5분이 소진되면 세계가 예정대로 붕괴한다는 설정인데, 실제로 맵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대신 파열의 원인인 분홍빛 ‘혼돈’ 계열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강력한 운석까지 떨어지며 플레이어를 계속 위협합니다.
타륜
이들에게 사망할 경우 가지고 있던 모든 아이템을 잃은 채 탑으로 자동 귀환하기 때문에 그 전에 문으로 돌아가 무사히 이쪽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 관건입니다.
붕괴를 미루는 방법도 있습니다. 5분이 다 지나기 전에도 종종 혼돈 몬스터가 무작위로 소환되는데, 이들을 해치우면 붕괴를 30초가량 연장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맵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균열’에 상호작용해 조금 더 강한 혼돈 몬스터들을 소환해 처치하면 2~3분 정도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탑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타륜과 상호작용해 세계를 리셋해야 합니다. 이때 세계는 원래 형태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 절차적 생성법에 따라 조금 변형됩니다. 대신 이전의 모험들에서 발견해 놓은 주요 몬스터나 NPC 등의 위치는 맵에서 바로 확인 가능하기에 모든 진척 상황이 리셋되는 것은 아닙니다.
혼돈 계열 몬스터를 잡아 붕괴를 지연시킬 수 있다.
<돈 스타브>와 비슷한 비주얼 및 UI로 인해 오해하기 쉽지만, <위자드 위드 어 건>은 사실 ‘생존’ 장르 게임은 아닙니다. 허기나 추위 등 주인공을 위협하는 시스템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즉, 살아남기 위해 플레이어가 알아서 움직이기 마련인 생존 게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게임플레이 동기를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위자드 위드 어 건>은 퀘스트 시스템을 활용합니다. 적 처치나 특정 물품 제작 등을 계속해서 퀘스트로 줍니다.
그중 메인 퀘스트 라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기어’의 수집과 보스 처치입니다. 주인공이 세계 멸망을 완전히 막으려면 문 너머에서 지역별 보스를 찾아내 처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기어’를 모아야 합니다. 기어를 타륜에 삽입할 때마다 각 지역의 탐험 가능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이 반경이 최대로 늘어났을 때 보스 위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탐험 지역을 확장하다가 보면 점점 더 강력한 몬스터와 더 단단한 오브젝트들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몬스터와 오브젝트를 모두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수단(발전된 총마술)이 필요해집니다. 이를 위해 유저는 자원 수집, 기술 연구, 총탄 제작 등에 몰두하게 됩니다.
엘리트급 몬스터를 자주 상대해야 한다.
<위자드 위드 어 건>에서는 생존이 아닌 개척이 성장의 목표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테마는 의상·무기·음악 등에서 서부극 테마를 빈번히 빌려 쓰고 있는 게임의 전반적 분위기와도 잘 어울립니다.
시간제한 시스템은 성장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해 줍니다. 5분이라는 빠듯한 시한 내에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저위력의 마법으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 하나를 채취하는 데만도 십여 발의 총탄이 소모되는 상태로는, 월드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복귀하게 되기 일쑤입니다.
전투 콘텐츠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위자드 위드 어 건>의 몬스터들은 주인공의 탐험을 방해하는 위협 요소이자, 그들 자체로 중요한 자원 수급처가 됩니다. 따라서 이들을 효율적으로 처치하는 역량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의미합니다.
이런 역량을 갖추려면 기술 발전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다시 제작법 획득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스캔’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활용해야 합니다.
처음 지급되는 마도서를 장착한 채 처음 보는 오브젝트나 생물을 꾹 눌러 스캔하면, 관련된 제작법 및 지식을 얻게 됩니다. 필수적인 제작법들을 이 방법으로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요한 활동입니다. 그런데 스캔 대상에는 몬스터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마냥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클릭을 유지한 채 적의 공격을 피하는 컨트롤이 필요하며(피격 시 스캔이 취소됩니다), 간혹은 마법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스캔도 쉽지 않다.
<위자드 위드 어 건>의 핵심 매력은 개척 과정을 즐겁게 해주는 총마술을 여러 가지 마련해 뒀다는 점입니다.
총마술은 크게 총, 탄약, 가루('화약'의 오역으로 보입니다)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먼저 총의 경우 피스톨, 샷건, 라이플, 기관단총 등, 총기류 게임들에 등장하는 일반적 분류를 따릅니다. 각각의 총기 유형은 장탄 수, 연사 속도, 평균 위력 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탄약 시스템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일단 서리·불·번개·물리와 같은 원소 유형과 물리(염동력), 생명(치료/현혹) 등 총 8개 계열과 존재합니다. 더 나아가 같은 계열 안에서도 적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탄종과 특수 기능을 수행하는 탄종들이 구분됩니다.
예를 들어 ‘서리’ 계열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냉기 속성의 탄종인데, 적에게 피해를 주면서 느려지게 하는 것, 완전히 얼려 못 움직이게 하는 것, 적을 젖은 상태로 만드는 것, 지면에 얼음벽을 생성하는 것 등, 기능과 위력을 달리하는 유형들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루’는 탄환의 작동 방식이나 위력을 바꾸는 일종의 보너스 기능입니다(소모되지는 않습니다). 탄환의 효과 범위를 넓히는 것, 탄환 속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 추적 능력을 더하는 것, 지속 시간을 늘리는 것 등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탄에는 종류가 많다.
캐릭터는 한 번에 최대 6개 총을 장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총기 하나당 두 가지 탄종을 장전할 수 있고, 탄종마다는 가루를 하나씩 적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휴대하고 다니는 총기와 탄종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애초에 왜 그렇게 많은 탄종이 존재하고, 또 한 번에 다양한 종류를 휴대할 수 있게 설계되었을까요? 탄종의 역할과 성능이 서로 철저하게 갈릴뿐더러, 이들 간의 연계까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빙결탄'과 '물리력탄'을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빙결탄은 적을 일시적으로 얼려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상태이상 탄약입니다. 한편 물리력탄은 단순하게 적을 뒤로 빠르게 밀어내는 탄약입니다.
두 가지 탄종은 그 자체로서도 특색이 강하며 확고한 쓰임이 있습니다. 먼저 빙결탄은 비록 직접 대미지를 입히진 못하지만, 보스급 적의 강력한 공격 패턴을 차단해 버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도망 다니는 유형의 적을 사냥하거나 스캔할 때도 유용합니다. 물리력탄의 경우 근접형 적의 접근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을 밀어내 오브젝트에 충돌시켜 큰 대미지를 주기도 합니다.
얼리고 부수는 콤보는 강력하다.
그런데 두 탄종을 연계하면 더 재미있어집니다. 빙결탄을 맞춰 적을 얼린 다음 물리력탄으로 얼음을 부수면 강력한 피해를 주는 동시에 ‘얼음덩어리’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음 파괴 시 대미지를 크게 높여주는 '가루'까지 적용하면 금상첨화입니다.
<위자드 위드 어 건>에는 이처럼 처음부터 연계를 고려해서 만들어졌거나, 사용하기에 따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탄종과 가루가 여럿 존재합니다.
그리고 탄종과 가루는 파밍이 아닌 연구를 통해 획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작진은 이런 연구 과정이 그대로 게임의 목표이자 보상으로 작동하게끔 설계해 놓았습니다. 테크트리가 세로로 길기보다는 가로로 넓기 때문에, 게임 초반부만 진행해도 앞으로 어떤 탄종과 화약을 얻을 수 있는지 비교적 빨리 가늠할 수 있습니다.
유저들은 테크트리를 탄종들을 둘러보며 각각의 활용 방안과 조합을 미리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상상을 실현하기 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다음 단계의 기술 자체는 빨리 언락되지만, 실제로 해당 기술의 연구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희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원들은 아예 나중에 등장하거나, 이미 등장했더라도 보유 수량이 부족한 경우가 흔합니다.
즉 유저가 다음으로 나아갈 발전 방향을 스스로 먼저 결정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어 둔 셈입니다. 이 덕분에 새로운 탄종을 획득하고, 그 위력과 효과를 확인하고, 다른 탄종과 연계해보는 일련의 실험 과정 전체가 꾸준한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때로 새로운 탄종이 유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것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한편 새로운 탄종 연구는 파밍에도 도움을 줍니다. 자원마다 최적의 효율을 내는 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요한 자원 중 하나인 ‘떡갈사과’는 사과나무를 아예 파괴하는 방식으로도 얻을 수 있지만, ‘물리력탄’을 나무에 발사해 열매만 얻는 것도 가능합니다.
테크트리는 세로로 길기보다는 가로로 넓다.
이렇듯 <위자드 위드 어 건>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이를 자유롭게 실험하는 재미가 탁월한, 풍성한 볼륨의 게임입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 연구 목표가 달성될 때의 쾌감은 크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 곳곳에 지루함이 곧잘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투의 단조로움입니다. 다양한 공격 수단을 마련해 둔 것에 비해 적들의 종류와 행동 패턴 가짓수가 빈약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엘리트/보스 급 적과의 전투마저도 기본 능력인 '구르기'와 끊임없는 카이팅으로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 아쉽습니다.
다행히 앞서 언급한 타임어택 요소 덕분에 지루함이 상당 부분 경감되기는 합니다. 대부분의 과제에 ‘빠르게’라는 단서가 갖다 붙으면서 도전의 수준이 급등하는 효과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토록 많은 탄종이 존재해야 할 당위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다소 단조로운 전투가 아쉽다. 다만 후반에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후반으로 가며 적절히 난도가 상승한다면 이런 문제는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기자가 이미 진행한 8시간 이상의 플레이타임 동안 같은 느낌이 지속됐다는 것은 분명 짚어볼 만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돈 스타브>와 같이 전투 외에 신경 써야 할 요소-농사·채집·건축 등-가 많은 생존 크래프팅 장르에 비해 <위자드 위드 어 건>은 전투 이외 요소가 많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단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또 아쉬운 것은 '총'이라는 소재의 시스템적 활용입니다. 게임계에서 총기 액션은 가장 오랜 발전을 겪어온 장르 중 하나인 만큼, 빌려올 만한 시스템도 무수히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총기 유형과 탄약을 조합할 수 있는 시스템 외에는 이렇다 할 차용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취향의 영역일 수 있겠으나 총기 레퍼런스의 유머적, 분위기적 활용 또한 미진한 점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트레일러에서 서부극 및 현대 총격전의 패러디가 두드러졌던 것과 달리 인게임에선 그러한 활용이 크게 절제되어 있어 조금 과장하면 속은 기분까지 듭니다. 결론적으로 <위자드 위드 어 건>의 총은 총으로서의 정체성은 미소하고, 그저 '마법 발사기'에 훨씬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물론 별도로 구축한 진중한 판타지 세계관에 유저를 충분히 몰입시키기 위해 밈적인 접근을 최대한 자제한 결과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레일러는 물론 제목에서까지 '총'과 '마법'의 조합이 주는 생경한 매력을 내세운 만큼, 인게임에서도 다소 결을 맞췄다면 어땠을까요?
'지팡이 대신 총을 든 마법사'는 워낙 유명한 밈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플레이어 몰입을 깰 가능성도 있다. (출처: 유튜브 @rommelsponge8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