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논리와 작가주의가 맞물리는 게임, 영화, 음악 등 콘텐츠 시장에서, 자본으로부터 이탈한 ‘인디’의 향배는 업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종사자들의 중요한 관심거리 중 하나다. 주류만 좇다가는 간과하기 쉬운 다양한 가치가 인디씬에서만큼은 움틀 수 있다는 다소 낭만적 인식이 여기에 한몫한다.
2022년 부산인디커넥트에서 강연에 나선 액션핏 주승호 CPO 역시 강연과 저술로 끊임없이 인디게임에 대해 논해온 인물이다. 20년 동안 모바일게임업계에서 아트, 기획, 프로듀싱, 마케팅, 퍼블리싱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업계인으로서 인디게임씬의 정체성과 소임, 값어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밝혀왔다.
이번에도 그는 ‘인디게임의 인식전환’이라는 주제로 인디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 인식을 분석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러분이 인디 개발의 내적 동기를 발화시키고 외부 요인에 동요되지 않는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취지를 밝혔다.
인디게임은 녹록지 않은 길이다. 부와 명예 둘 중 어느 쪽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도전하는 인디 개발자들은 대체 어떤 이들일까?
주승호 CPO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급진적 현실주의자들이다. 스스로가 믿는 가치와 재미를 담은 게임은 일반 직장이나 대기업에서 만들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한 현상을 받아들이고, 본인이 느끼기에 재미있거나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인디 개발자들은 자기 욕망을 직시하고 타협을 거부한다. 대기업을 포함해 대부분 게임업체는 게임을 귀납적으로 디자인한다. 시장의 선호를 조사한 뒤, 객관적 기준에 맞춰 게임을 만든다는 얘기다. 만약 ‘내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이런 조직에서 일하면 내적 가치관 충돌로 굉장한 고통을 받고 혼돈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결국 이들은 원하지 않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하며 뛰쳐나오고 만다. 대중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부담을 안고, 그저 만드는 행위에서 재미를 얻으려 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현실적 방도를 찾은 셈이다.
또한 주승호 CPO는 인디 개발자들을 ‘검은 백조’에 비유한다. 비주류적 가치를 혼자 추구한 끝에 그 자체로서 무리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의미로써 사용하고 있다.
자신만의 형태로 비행하는 검은 백조는 다른 백조들에게 자연스러운 귀감이 된다. 검은 백조가 자신만의 검은색을 그대로 발현하면 백조들이 가지고 있던 ‘귀납의 오류’가 깨진다고 그는 설명한다. 비주류지만 결국 주류가 추종하는 백조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그들의 고정관념을 바꿔나가는 역사를 만들게 된다.
다음으로 주승호 CPO는 현재 업계가 생각하는 ‘인디 게임’의 흔한 정의 중 일부를 비판한다. 이러한 정의는 인디 게임을 불필요하게 한정 지어서 그 가능성을 제약해버린다.
먼저, 흔히들 인디게임이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자, 상업성, 스폰서, 퍼블리싱 등 자본의 여러 형태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모호하다. 투자를 받지 않고 퍼블리싱도 없어야만 인디게임일까? 이 논리를 확장하면 인디게임 회사에서 급여를 받아 가며 일하는 개발자들도 ‘자본’을 받았기 때문에 인디 개발자가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고 주승호 CPO는 말한다.
그가 생각할 때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진짜로 의미하는 것은 주류 시장이 가진 힘의 논리를 부정하는 일이다. 시장이 만든 상업적 가치만을 위한 룰을 깨는 몸부림이 인디개발이라는 것이다. 주류시장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로 그 값어치를 증명하는 것이 인디다.
혹자는 이것이 실익도 못 거두고 돈도 못버는, 힘없는 약자들의 외침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비슷하게 ‘예술할거면 투자받지 말라’는 말도 간혹 듣는다. 자신을 표현하는 게임 말고 대중을 위한 작품을 만들라는 강요도 많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자본이 원하는 본질을 따라가라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주승호 CPO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인용한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아테네라는 말에 붙은 등에로 비유했다. 등에는 말이 활기를 띠고 뛰어다니게 만든다. 게으르고 살찔 수 없게 한다. 이렇게 안정을 뒤흔드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라면, 인디게임의 역할은 대중의 선호를 따라 순행궤도를 도는 주류시장에서 역행궤도를 돌며 저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디게임은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흔히 마주치는 논리다. 차별화의 사전적 정의는 ‘차등을 두어 구별된 상태가 되게 하는 것 또는, 그런 상태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다른 게임보다 내 게임이 더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이다. 종적인 줄 세우기로 다른 게임과 내 게임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은 마케팅적 차원이 크다. 차별화의 강조는 시장의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겠다는 인디의 이념에 반한다.
주승호 CPO가 보기에 인디게임이 발전하고 더 좋은 게임을 내놓는 비결은 개별 게임의 차별화 노력이 아니라 제작자의 숫자다. 다양한 연령과 가치관의 사람들이 게임을 만들게 되면 그만큼 인디게임은 더 많은 재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것이 게임 제작의 미래다. 순수하게 재미를 목적으로 서로가 가진 개발 DNA를 나눠주고 복제하고 다양하게 변주해보는 것이 진짜로 중요한 일이다.
‘참신함’ 또한 인디게임을 대표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경향이 생겼을까? 모바일 오픈마켓으로 게임시장의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게임 트렌드가 F2P로 전환됐다. 그 결과 유저들은 무료로 수많은 게임을 만나게 되면서 개개인의 게임 경험이 많아졌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 트위치 등 간접적 체험수단까지 더해졌다. 플레이하지 않아도 게임의 주된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유저들은 객관화된 다른 게이머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상호 동기화됐고, 주관적인 참신함을 느낄 기회가 많이 상실됐다.
그 결과 유저들은 자신이 익숙한 게임에 돈을 지불하면서도 참신함의 순도를 더욱더 바라게 됐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인디개발자들이 참신함을 인디게임의 숙명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주승호 CPO는 분석한다.
하지만 참신함의 순도를 올리는 것 자체는 인디게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는 시장의 강요이자 연대 의식적 사고다. 참신함을 인디게임의 미덕으로 강요한다면 개발자들은 게임을 만들면서 즐거움보다는 고통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승호 CPO는 인디게임의 ‘내적 가치’와 ‘외적 가치’를 구분해 설명하면서 강연을 끝마쳤다.
인디게임은 우선 개발자에게 ‘행복 추구’라는 내적 가치를 지닌다. 혹독한 인디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내 게임’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인디게임 지원 정책도 여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배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 말고 바다를 꿈꾸게 하라’는 말처럼, 정책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기술자를 양성하기보다, 게임 제작에 관심이 있는 어린 인재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고 단기적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중에 스스로 업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인디게임은 다양성 확보를 통해 업계의 환경변화 적응 능력을 길러준다.
한때 인디게임이 일종의 마케팅 용어화 되어 천편일률적으로 되어버린 사태를 꼬집어 ‘인디 아포칼립스(멸망)’라고 일컬었던 적이 있다. 현실에서도 생명체의 70%가 멸종하는 ‘대량 절멸’은 몇 번 있었고 그중 마지막이 소행성 충돌에 의한 공룡 멸종이다.
공룡은 원래 지구를 주름잡은 주류였지만, 거대한 몸집 탓에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틈에 소량의 먹이로도 연명할 수 있는 포유류가 살아남았고 결국 다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게임 시장 또한 대세 플랫폼의 변화 등 강력한 트렌드 전환이 찾아오면 오히려 ‘자가복제’를 거듭하는 덩치 큰 대기업들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지금도 대기업들은 고액 과금에 특화된 비슷한 게임을 계속 내놓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인디게임들은 현재 주류가 만든 시장에서 매출을 못 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룰에 상관하지 않고 자유롭게 게임을 만드는 ‘노 룰즈’(no rules) 정신이 인디 게임의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른다고 주승호 CPO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