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4일까지, 총 130여 종의 게임을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매일 부스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에 만나본 게임은 ▲멸망에 몰린 고블린 종족의 동화 같은 생존기 <고블린 스톤> ▲밴드맨 겸 AI 엔지니어가 만든 힐링형 리듬 게임 <로파이 룸> ▲ ‘기회의 땅 미국’의 잘못된 환상을 꼬집는 아케이드형 내러티브 게임 <A Tragic Accidental Still Life>입니다.
<고블린 스톤>은 위기에 빠진 고블린 종족을 부흥시키는 내용의 턴제 RPG 게임입니다. 게임 중에서는 인간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많지만, 개발사 오크찹 게임즈는 유니크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보통은 적 몬스터로 다뤄지는 고블린을 주역으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들은 세력을 불리면서 고블린, 놀 등 몬스터 종족들을 잔인하게 탄압합니다. 여기에 다른 야수들의 위협까지 겹치면서 고블린은 멸종 위기에 처합니다. 살아남은 고블린들은 어느 날 고대 유물 ‘고블린 스톤’을 발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계시를 따르기 위해 인간에 맞서는 고블린들의 분투가 <고블린 스톤>의 이야기입니다.
게임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뉩니다. 지상에서 턴제 전투를 벌이는 ‘모험’ 파트와, 지하 기지를 발전시키는 ‘경영’파트입니다. 모험에 한 번 나설 때마다 약 30분의 시간이 소요되며, 클리어하면 새로운 지역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새 지역을 언락하면서 스토리와 임무가 추가됩니다.
경영 파트에서는 여러 시설을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면서 부족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모험을 통해 재료와 귀중한 아이템 등을 모아와야 합니다. 나무를 해서 땔감을 모으거나, 고블린답게 사체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합니다.
<고블린 스톤>의 또 다른 특징은 ‘번식’ 시스템입니다. 종족의 개체수를 다시 늘려야 하는 게임 테마에 어울리게, 고블린들을 별도의 번식 시설에 짝을 맞춰 배치해두면 아이가 태어납니다.
특별히 성별 개념은 없지만, ‘자녀’는 ‘부모’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각 고블린의 유전인자는 4가지로, 하나하나가 일종의 ‘퍽’(perk)처럼 작동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뛰어난 고블린 세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면 이런 ‘유전인자’가 점점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다크판타지 같은 이야기와 설정이지만, 개발팀은 게임을 하면서 동화책을 읽는 느낌을 받도록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게임 전체를 일종의 ‘인터랙티브 도서’처럼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이에 어울리게 직접 그린 아트 스타일은 매우 정감 있고 완성도가 높습니다. 고블린들의 모습도 귀엽고, 인간들에게 당하는 모습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로파이 룸>은 1인 개발자 바렌드 해리스의 힐링 리듬게임입니다. 영국 출신으로 한국 생활 7년 차인 해리스는 유창한 한국어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는 낮엔 기업에서 AI 연구원/개발자로 일하고, 퇴근하면 개인 프로젝트로 <로파이 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로파이’(Lo-fi)는 Low-fidelity(저해상도)의 약자로, 빈티지한 음질의 차분한 음악 스타일을 이야기합니다. <로파이 룸>역시 그런 콘셉트의 음악을 느긋하게 만들고, 감상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게임플레이는 ‘숨은그림찾기’와 ‘리듬게임’을 적절히 섞은 것과 같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물건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방에서, 숨어있는 악기를 클릭하고, 출력되는 노트를 정확히 입력하면 해당 악기의 ‘트랙’이 완성됩니다. 모든 트랙을 쌓아 전체 곡을 완성하면 스테이지 클리어입니다.
이 과정은 실제 컴퓨터를 이용한 작곡 과정을 흉내 낸 것입니다. 해리스는 “다른 리듬 게임들은 주로 악기 연주나 춤 같은 음악 활동을 흉내 냅니다. 그래서 보통 높은 정확성과 빠른 동작을 요구하고요.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음악 창작 활동 쪽을 표현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기획 의도와 어울리게, <로파이 룸>에서는 실제로 ‘작곡’이 가능합니다. 악기별로 비트를 찍어 전체 곡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창작한 곡의 ‘악보’를 텍스트 파일로 출력해 공유하면, 다른 유저가 이것을 게임에 임포트해 플레이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보다 직접적으로 곡을 MP3 파일로 출력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발자에게 음악적인 경험이 많은 듯해 물어보니, 역시나 고등학생 때 베이스를 연주했고 지금은 드럼을 친다고 합니다. 작곡도 좋아하고요. 간혹 밴드 공연도 하는데, 장르적으로는 게임과 전혀 다른 메탈 밴드라고 하네요.
<로파이 룸>은 2018년 참가했던 ‘음악 게임잼’을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3주 정도의 게임잼이었는데, 평소 즐겨온 플래시 게임, 포인트 앤 클릭 게임, 그리고 작곡활동을 하나로 합쳐 <로파이 룸>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해리스는 유저들이 이 게임을 통해 자신만의 노래를 만드는 모습에서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로파이 룸>을 통해 ‘처음으로 음악을 만들어봤다’는 반응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네요. 한 번은 미국의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업 때 사용하고 싶다는 문의를 해와서 별도의 버전을 만들어준 적도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게임 아트 역시 혼자서 모두 그렸습니다. 종이 위에 연필이나 붓펜으로 그린 뒤에 스캔하고, 디지털로 색상을 입히는 조금 오래된 방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BIC에서는 게임 사전 정보가 없는 유저들에게서 생생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습니다. <로파이 룸>은 온라인을 통해서 배포 중입니다. 인디 플랫폼 itch.io 등에서 게임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A Tragic Accidental Still Life>, 우리말로 거칠게 옮기면 ‘비극적 사건 같은 정적인 삶’입니다. 어쩐지 한 편의 전위극 같은 제목인데, 실제 내용도 그런 느낌을 줍니다.
미국에서 온 3인조 개발팀 Common Opera가 만든 이 레트로 스타일의 아케이드 내러티브 게임은, 한 사람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눠 각기 다른 메카닉으로 플레이하는 독창적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도벽이 있는 응급차 운전기사입니다(벌써 심상치 않습니다). ‘파트 1’에서 그는 응급환자를 구조해 이송하는데, 유저 선택에 따라 쓰러진 환자들의 집에서 물건을 훔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게임 메카닉은 <크레이지 택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네요
결국 주인공은 적발돼 감옥에 가는데, 이때부터 파트 2가 시작됩니다. 파트2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훔쳤던 물건들에 관한 백일몽을 꾸게 됩니다. 각각의 꿈은 해당 물건에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꿈을 겪고 나면 실제로 (어떤 조화에서인지) 그 물건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고, 그 물건들을 감방 동료들의 숟가락과 교환해 땅굴로 탈옥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파트3는 탈옥 이후의 상황으로, 미국 국토 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핀볼게임처럼 진행됩니다. 주인공은 종횡무진 도망 다니다가 결국에는 공항으로 숨어들어 남극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SF에나 나올법한 어떤 기지를 발견합니다. 그 기지 안에서 주인공이 훔쳤던 물건들이 아름답게 장식된 신비한 방에 들어서면서, 게임은 끝을 맺습니다.
사실 이 모든 내용은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는 응급차 운전사의 몽상입니다. 게임의 몽환적인 전개는 이 때문입니다. 과연 왜 이런 이야기를 선택했을까요?
코로나19로 응급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여기에 계속 대응해야 하는 응급구조 인력의 고충을 생각해보다가 게임의 기본 스토리를 결정하게 됐다고 합니다. 구급대원이 지친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극적인 상상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가지고 첫 두 파트를 기획했는데, ‘이왕이면’ 세 파트가 좋다는 생각에 지금처럼 확장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기회의 땅 미국’에 대한 외부의 그릇된 환상을 꼬집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미국 바깥의 사람들은 모든 미국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산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미국 역시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원치 않은 직업을 가지고 그저 연명할 뿐인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A Tragic Accidental Still Life>는 그러한 처지에 놓인 한 인물을 조명하고 있는 거죠.
선형적 스토리를 다양한 메카닉으로 표현한 또 다른 이유는 유저가 계속해서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이번에 한식당을 처음으로 겪으면서 여러 반찬이 함께 나오는 모습을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네요. 전혀 다른 여러 가지 맛을 조금씩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가장 개발에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전통적인 아케이드 게임 구조를 통해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케이드는 스토리텔링에 어울리는 디자인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게임의 ‘재미’를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어서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콘셉추얼한 게임을 만들어놓고 재미에는 신경 쓰지 않는 태도는 ‘무책임하다’고 느낀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결국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만큼 아케이드 부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유의미했다고 이들은 이야기합니다.
게임은 2023년 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스팀에 이미 게임 페이지가 만들어져 있고, 무료 배포 예정입니다. 팀원 모두 별도의 직업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적어도 세 사람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고 있는 듯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