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독일에선 게임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연사 300여명이 모여 데브컴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데브컴은 지식 공유를 약속하는 개발자 컨퍼런스로, 씬 전체에 대한 고민이 깊게 다뤄지고 있다.
이번 데브컴에서는 저명한 연사 1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됐는데, 주제가 꽤나 흥미롭다. AI가 게임 개발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지, 선호되는 게임 BM(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지, 정리 해고 문제의 미래는 어떨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게임 업계가 직면한 주요 과제라는 항목이었다. 시장은 포화됐고, 개발 비용은 너무 늘었다는 것이다. 새삼 느끼지만,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 게임 업계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설문 결과와 함께 게임 업계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게임 개발 업계가 직면한 주요 과제에 대해 "시장 포화"와 "개발 비용 증가"가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100여명을 대상으로 중복 투표를 진행했고, 시장 포화는 55%, 개발 비용 증가는 46%의 득표율을 보였다.
한 참가자는 "무한 성장의 신화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며 "스튜디오가 숙련된 인재와 함께 양질의 게임을 지속적으로 제작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개발자 인건비를 비롯한 여러 비용이 늘었고, 트리플 A 게임의 스케일과 제작 비용도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커져온 게 사실이다. 이미 포화된 시장은 기존 장르 유저를 빼앗아오는 전략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연결됐고, 국내에서도 이런 마케팅 비용 부담은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선호하는 게임 비즈니스 모델(BM)에 대한 설문도 진행됐다. 디지털 또는 실물 프리미엄 게임(패키지 게임)은 응답자의 65%가 압도적으로 지지한 BM이다. 단순한 선호도라고는 하지만, 확실히 이 지점에서는 서구권과 국내 시장의 풍토가 다르다는 인상이 강하다. 국내에선 F2P(프리 투 플레이) 베이스에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인앱 구매가 포함된 게임들이 매우 일반적인 사례니까 말이다.
인앱 구매가 포함된 F2P 게임, 커뮤니티 펀딩, 구독 요금제 등은 10%도 안 되는 선택을 받았다. 특히 광고가 포함된 무료 게임은 단 한 명의 응답자만 선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인앱 광고로 먹고 사는 걸 기대하는 개발자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인앱 광고 수익이 전보다 줄어들면서, 하이퍼캐주얼을 비롯한 광고 BM 중심의 장르가 직격타를 맞았던 사실은 모두가 아시리라 생각한다. 과도한 광고 삽입에 대한 유저들의 거부감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니, 수익을 유지하자고 광고 수를 늘리는 것도 어렵다.
여기에 모바일게임 시장의 과열된 마케팅 경쟁까지 겹치면서, 인디 씬에서부터 모바일게임을 떠나 PC-콘솔 개발로 전향하는, 일명 '모바일 엑소더스' 현상이 계속해서 관찰되고 있다. 이렇듯 시장 환경의 전반적인 변화 때문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동안은 '패키지 게임' 시장이 전보다 더 활성화될 전망이다.
개발 및 마케팅 비용이 월등히 높은 게임을 지칭하는 트리플 A 게임이 패키지 판매 비용만으로 재정적 성공을 거둘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89%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들은 다소 전통적인 판매 방식으로도, 현재의 트리플 A 게임 시장이 유지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설문에는 자세히 반영되지 않았지만, 여기엔 강력한 전제 조건이 붙는다. 게임 개발 비용이 비싸진 만큼, 게임 판매 가격도 올라가야 한다는 것. 스퀘어 에닉스 대표 보좌 및 사업 이사 출신의 제이콥 나보크가 지난 5월에 했던 말을 살펴보자.
"앞으로는 가격 인상이 대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AAA게임은 멸종하고, 라이브 서비스 게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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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멀티플레이 게임을 위해 크로스 플랫폼 플레이가 필수적이냐-는 질문에 81%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크로스 플랫폼 지원 또한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대기업에게도 중소, 인디 사이즈의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국내 게임 중에선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PC 단일 플랫폼일 때는 훨씬 더 빠르게 적용할 수 있던 버그 픽스와 업데이트는, 콘솔, 모바일 버전에서도 문제 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조건을 고려하다 보니, 업데이트 적용 속도가 느려졌다. 한국과 대만의 PC 버전을 제외하고 모두 서비스를 종료한 최근의 결정은, (게임의 인기 문제도 있지만) 크로스 플랫폼 지원의 어려움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멀티플레이 게임만의 문제일까? 앞서 설명한 '모바일 엑소더스' 현상으로 인해 PC-콘솔로 개발되거나 포팅을 시도하는 국산 싱글플레이 게임도 많다. 해당 업체들은 포팅 과정 자체도 까다로울 뿐더러 플랫폼마다 정책이 다르고, 지역별로 패키지, 디지털 준비와 프로모션을 준비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많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곤 했다. 결국 이 과정도 또 다시 비용과 리소스 투입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구독 모델도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퍼스트 파티 플랫폼에 대한 의존성 및 연결 고리가 약해질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는 62%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결국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닌텐도로 대표되는 플랫폼 양상은 크게 변하기 어렵다는 예측이다. 이런 플랫폼 구조가 "폐쇄적"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시장의 격변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의 정리해고 분위기가 앞으로 1년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명확한 예측을 내놓긴 어려운 게 지금의 상황으로 보인다. 예, 아니오-로만 구분하면 57% vs 43%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세부적인 추이는 아래와 같았다.
▶ 24%: 정리해고 분위기는 지속되고,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 33%: 정리해고는 이어지겠지만, 지금과 비슷할 것으로 본다.
▶ 38%: 정리해고 양상이 지금보다는 다소 줄어들 것이다.
▶ 5%: 채용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작년부터 올해까지 국내외 게임사들의 해고 소식이 많이 전해졌다. 지난 3월 GDC에서도 최대 화두는 정리해고와 AI였을 정도니까 말이다. 엔데믹 이후 게임 업계에 한파가 찾아오면서, 모두가 몸집 줄이기와 비용 효율화에 목을 매고 있다. 그렇다면 줄어든 인력 만큼, AI가 그 역할을 채워줬을까? 응답자들은 AI에 대해선 어떤 의견을 줬을까?
게임 개발에서 AI가 활용되는 좋은 사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31%로 가장 많이 나온 단일 응답이 "AI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소한'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데브컴에 연사로 올 정도의 베테랑들은 AI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적잖게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31%를 제외한 69%는 AI 활용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코드 및 제작이 21%,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이 18%로 주요 활용 사례로 꼽혔다. GPT 등을 활용해 코드를 짜거나, 빅데이터 기반 퍼포먼스 마케팅을 할 때 AI를 활용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사들의 응답을 기준으로, 아트 및 애니메이션과 내러티브 디자인에 대한 AI 활용 사례는 그리 긍정적인 사례로 꼽히지 않았다는 점은 꽤 재밌는 지점이다. 이런 응답은 실제 업계에서의 AI 활용 빈도 자체를 반영한다기보다는, AI가 접목됐을 때 효과적인 분야인가-에 대한 고민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연사들이 제시한 인사이트 중에는 "향후 1~2년 안에 AI가 사람의 번역과 현지화 작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기자 또한 최근 국내 업체 취재를 통해, 텍스트 의존도가 높지 않은 장르의 게임들은 GPT를 포함한 AI 번역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많은 업체가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종종 듣곤 했다.
현지화 전문 업체들에게도 향후 작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AI가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영역도 상당하겠지만,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이나 서브컬처 게임처럼 단어 하나, 조사 하나가 캐릭터와 스토리, 게임의 전체 인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번역 작업의 경우 사람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비용 효율화와 게임 퀄리티를 맞바꾸는 어리석은 선택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