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이 꺾인 것 같은 '블록체인'이 국내 게임업계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오디션> 등 인기 게임을 보유한 한빛소프트는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통화 보상을 도입한 '브릴라이트' 체계를 진행 중이고, 넥슨의 지주회사 NXC는 가상통화 거래소 '코빗'을 인수했다. e스포츠 사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액토즈소프트 외에도 넵튠, 엠게임, 와이디온라인, 카카오 등이 사업을 논의하거나 진행하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프렉탈 프로젝트'의 게임 유틸리티 '프렉탈 플레이'다. 유저에게는 게임 플레이와 데이터 제공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고 게임사에는 플랫폼과 홍보에 들어가는 수수료를 줄여주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프렉탈 플레이. 과연 어떤 서비스일지, 18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김천일 프렉탈 프로젝트 대표
# 게임 플레이 데이터 보내고 가상통화 받는 '프렉탈 플레이'
블록체인은 정보를 중앙에서 관리하지 않고 참여자가 나눠 가지는 분산 형태의 정보 처리 기술이다. 참여자가 계속 체인에 참여하도록 가상통화 등을 보상으로 주는 형태가 일반적이며 여러 업체가 독자적인 블록체인 체제를 개발하고 있다. '프렉탈 플레이'는 이 중에서 속도가 빠르고 상업 이용을 지원하는 'EOS'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게임 리워드 앱이다.
모바일 기기에 게임을 설치하고 플레이를 하면 해당 기기에서 어떤 게임을 얼마나 플레이하는지, 언제 게임을 삭제했는지 기록이 남는다. 이 데이터가 오랜 시간 누적되면 해당 유저가 어떤 종류의 게임을 주로 하고, 언제 새로운 게임을 찾거나 그만두게 되는지 정보가 쌓이고, 여러 유저의 정보가 모이면 귀중한 빅데이터가 된다. 하지만 아직 이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례가 드물고, 유저 딴에서 게임 플레이 시간이나 경험, 취향에 대한 보상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프렉탈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김천일 대표는 이 점에 주목했다. 프렉탈 플레이는 기기에 누적되는 데이터를 '게이머 이력서'로 만든다. 이력서를 갱신한 유저는 PLT라는 토큰을 보상으로 받으며, 정보가 누적될수록 보상도 커지고 자신의 플레이 패턴과 취향에 부합하는 게임을 추천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널리 퍼진 모바일게임 쿠폰이나 사전예약 보상 앱과 비슷하지만, 가상통화를 보상으로 받고, 특정 게임이 아니라 유저가 평소 하던 것처럼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받은 토큰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프렉탈이 그리는 생태계
프렉탈 플레이를 통해 체인으로 전송된 게이머 이력서는 게임사들의 마케팅 대상이 된다. 게임사는 프렉탈 플레이에서 제공하는 광고 콘솔을 이용해 '퍼즐 게임을 주로 하는 20대' 등 특정 성향을 가진 유저에게 게임을 홍보할 수 있다. 게임사가 홍보를 위해 낸 토큰은 유저가 프렉탈 플레이를 계속 이용하면서 받는 토큰이 된다.
즉 유저에게는 앱을 설치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가상통화를 받는 리워드 앱이며, 업체는 가상통화를 지불해 정밀한 타겟팅 광고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또한 프렉탈 플레이는 갤럭시의 '게임툴즈'처럼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찍어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크라우드 펀딩, CBT 등 커뮤니티를 제공해 유저와 게임사가 직접 교류하는 장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한 많은 유저들이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웹툰 서비스 제휴 등으로 토큰 사용처를 늘리고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자유롭게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 시작 시 10억 개의 PLT 토큰을 발행하고 이중 40%는 사업자에게 판매, 20%는 개발 비용, 10%는 초기 투자 비용으로, 30%는 데이터 공유 보상과 마켓 확장을 위한 예비금으로 사용한다. 사업 파트너로는 텐센트 미디어를 포함해 <재배소년>을 서비스하는 국내 게임사 아울로그 등 여러 회사가 있다.
프렉탈 플레이는 5월 초 파일럿 앱을 출시해 CBT를 진행하고 연말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고 광고 플랫폼 사업은 내년 2분기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김천일 대표는 "그동안 유저는 지금까지 플레이한 게임 데이터나 자산을 보상 받을 수 없었고, 게임사는 특정 성향의 게이머를 찾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불필요한 마케팅을 해야 했다. 프렉탈 플레이는 개인의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하고, 게임사가 직접 유저를 만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 "단순 리워드 앱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하는 김천일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디스이즈게임> 처음에는 '미스릴코인'으로 발표했는데 낯선 이름이 됐다.
김천일 프렉탈 프로젝트 대표: 우리도 미스릴이라는 이름을 정말 좋아했다.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고급 아이템 재료 아닌가. 그런데 사업을 준비하는 중에 이 이름의 프로젝트가 나와 빗썸에 상장을 해버렸다. 그 날 난리가 났다. 대체할 이름으로 '오리할콘'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미스릴만 못하더라. 지금도 아쉽다.
채굴을 목적으로 게임을 마냥 켜두는 등 어뷰징이나 해킹 대응은 어떻게 할 예정인가?
솔직하게 말해서 완벽한 방어는 불가능하다. 보안과 해킹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게임에 SDK를 심어 데이터를 받으면 어뷰징인지 아닌지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게임사에게 의존을 하고 확장 속도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어뷰저의 패턴을 학습하고 정상적인 데이터가 아니면 조치하는 식의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단계에서는 보상이 막연해 보이는데, 어느 정도를 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겠다 추정이 되는 평균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프렉탈 플레이가 주는 것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수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수익이다. 물론 열심히 게임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받을 것이고 또 변동이 있겠지만, 최소한 한 달에 커피 몇 잔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캐시 슬라이드'가 진화한 것 같은, 일종의 리워드 앱이라고 보면 될까?
그렇다. 하지만 단순한 리워드 앱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게이머 입장에서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재미가 없고 성취감도 없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 가치에 의한 보상이다.
왜 프렉탈 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해야 하는지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유저가 보다 나은 조건으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를 원할 텐데, 프렉탈 플레이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 이력서를 만들면, 어떤 조건에 맞는 유저를 찾는 게임사도 토큰이나 아이템 제공 등을 통해 경험에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가상통화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프렉탈 플레이는 자체적으로 토큰을 유통하거나 발행량을 조절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하려고 하는가?
메인 토큰인 PLT가 있고, 게임 플랫폼 내에서 보상하는 중간 토큰인 '젬'(가칭)이 있다. 가치 변동 등 상황에 따라 메인 토큰과 치환하는 장치가 기본적으로 있다. '스팀잇'도 그렇지만 일단 목표는 예치금을 사용해 보상을 제공하고, 광고 사업으로 플랫폼 자체의 수익이 늘어나는 순환 구조를 만들려 한다. 스팀잇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통화를 만드는 것으로 보상을 만들지만, 프렉탈 플레이는 자체 플랫폼으로 보상을 늘리는 구조로 데이터 경제를 함께 만들려 한다.
결국 외부에서 투자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일종의 유틸리티 토큰인 셈인데 환금은 어떻게 되는가?
정확히 구분해서 설명하자면 젬은 유틸리티 토큰이 맞고 PLT 토큰은 거래가 가능한 가상통화다. 젬은 플랫폼 내에서 사용하지만 PLT 토큰은 거래와 전송이 가능하다. 스팀잇을 예로 들어 말하면 내부 토큰은 '스팀파워' 같은 것인데, 이것을 메인 토큰인 'STEEM'으로 환전하지 않으면 통화로 사용할 수 없다. 젬과 PLT도 그런 방식이다.
블록체인이 정보의 탈중앙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전송하는 데이터는 메인 블록체인인 EOS 내에 보관되는 것 아닌가. 만약 EOS에서 규제 등으로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프렉탈 플레이는 어떻게 되는가?
그 점에서 EOS는 독특한 시스템인데, 일종의 오픈소스로 누구나 개발에 참여해 사용할 수 있다. '이더리움'처럼 하나의 중심으로 가는 시스템도 장점이 있지만, EOS는 EOS 토큰을 갖고 있으면 누구라도, 어떤 플랫폼에도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다. 말씀하신 문제가 생긴다면 대안이 되는 플랫폼도 있고, 또 장기적으로는 자체 체인을 갖추는 것이 프렉탈 플레이의 목표이기에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형 게임사가 매스마케팅을 하는 이유는 타겟 게이머를 못 찾는 것이 아니라 매출 증대를 위해 더 많은 유저를 끌어오기 위함인데, 프렉탈 플레이의 사업 대상은 이런 게임사가 아닌 것 같다.
소규모로 실험 차원에서 참여할 수는 있겠으나, 대형 게임사는 궁극적으로 자체 체인 내에서 유저 데이터를 모으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셀프 퍼블리싱을 하고 싶은 중소형 게임사가 타겟이다. 우선 미리 협의된 파트너사들과 함께 프렉탈 플레이 사용 전후의 데이터를 만들어갈 것이고, 이걸 토대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인디 게임 등 크라우드 펀딩을 플랫폼 내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한다.
예를 들어 RPG라는 장르에서도 여러 세부 장르가 있고, 게임 패턴에 따라 미들코어나 코어 등이 나눠질 텐데, 정말로 검증된 게이머가 참여하게 만드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게이머는 그동안 모은 PLT 토큰을 맘에 드는 게임 개발에 투자하고, 게임사는 이 코인을 현금화해 개발 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CBT 모집을 돕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