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사에게 있어 인터뷰는 홍보의 일환이다. 개발자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유저의 기대 심리를 자극한다. 그래서 인터뷰 대상자는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일수록 유저의 기대치도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레드블러드>를 개발 중인 고릴라바나나의 개발자들은 달랐다. 과장 대신 솔직히 자신들의 사정을 밝혔고, 지금의 고릴라바나나로서는 구현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
60여 명이 개발 중인 <레드블러드>에서는 <블레이드 & 소울>처럼 화려한 그래픽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처럼 방대한 퀘스트도 만들 수 없다. 무작정 대작만 따라가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몰이사냥을 통한 액션’과 ‘여러 캐릭터를 육성해야만 하는 가문 시스템’이다. 주류에서 약간 비껴 난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경쟁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첫 공개 이후 5년 만의 첫 테스트, 이젠 속이 다 시원하다는 고릴라바나나의 이정욱 팀장과 김태형 아트디렉터를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레드블러드> 1차 CBT 버전 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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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블러드>는 ‘시원시원하고 호흡이 빠른’ 게임
공개 후 5년 만의 테스트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역시 퍼블리셔를 찾는 일이었다. 외부적으로 퍼블리셔를 찾는 사이에 내부에서는 전투와 스킬 개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해 <레드블러드>를 MORPG에서 MMORPG로 바꿀 때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공격의 타이밍과 판정, 동시타격 대상의 제한 등 액션에 관련된 시스템을 많이 버려야 했다. 미뤄진 개발기간 동안 그때 포기했던 액션들을 다시 갖고 왔다.
논타겟팅 액션을 내세운 MMORPG가 한둘이 아니다. 자신은 있나?
부담스럽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는 <블레이드 & 소울>이나 <테라> 급은 될 수 없다. 인원도 부족하고 그만큼의 자금도 없다. 그런데 무리해서 다른 대작들을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게임이 나올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레드블러드>라는 게임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보여주자는 것이었고, 몰이사냥이라 불리는 일대다의 전투를 통해 재미를 느끼게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 하필 ‘몰이사냥’인가?
시원시원한 전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약을 사용하는 만큼 전투의 호흡이 빠르고 호쾌한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일대다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물약으로 체력을 채우고 바로 다음 전투에 뛰어들 수 있다. 캐릭터의 성장도 빨라서 게임 하는 내내 시원하게 적을 처치하고 시원하게 레벨이 오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위해 시스템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 아이템이 떨어지는 소리다. <레드블러드>는 재질과 등급에 따라 아이템이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다. 눈 아프게 화면을 보지 않아도 전투만 신나게 즐기다 보면 ‘고급 아이템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재미를 느끼는, 원초적인 전투라고나 할까(웃음).
그만큼 캐릭터의 성장도 빠를 듯하다.
맞다. <레드블러드>의 시스템은 애당초 ‘빠른 성장’에 초점을 두고 개발됐다. <레드블러드>는 플레이어의 계정을 하나의 가문으로 묶고 그 속에 자신이 용병(캐릭터)을 키운다는 설정이다. 캐릭터의 레벨에 따라 가문 자체가 성장하고 가문이 크면서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여러 명의 캐릭터를 육성하게 될 것이다.
빠른 몰이사냥을 통해 캐릭터를 빠르게 육성하고, 일정 레벨 이후에는 조금 더 강력한 두 번째, 세 번째 캐릭터를 육성하는 ‘호흡이 빠른 게임’이다.
몰이사냥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실 부작용이 먼저 떠오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 몰이사냥을 도입했을 때 온라인게임은 대부분 심리스(seamless) 맵을 택하고 있었다. 던전이든 사냥터든 모든 유저가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일명 자리싸움이라는 문제도 자주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 인스턴스 던전이 나오면서 이런 고민이 많이 사라졌다. 독립된 공간에서 몬스터를 얼마나 모아서 처치하든 문제될 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드에서는 채널 구분 등의 안전장치도 마련할 예정이다.
■ 5년 만의 1차 CBT, 속이 다 시원하다
1차 CBT에서 공개되는 콘텐츠는 어느 정도 분량인가?
전투에 집중된 콘텐츠를 공개할 것이다. 일단 전체 콘텐츠의 20% 가량이 공개될 예정이다. 레벨로 따지면 최고레벨이 60이고 그중 1차 CBT에서는 레벨 20~25 정도를 달성할 수 있다. 인스턴스 던전도 조금 등장한다. 가문 시스템은 1차 CBT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5년 동안 준비한 콘텐츠다. 부담도 될 듯하다.
사실 부담도 되지만 속이 다 시원한 것도 있다. 테스트를 통해 누구와 경쟁한다기보다 <레드블러드> 자체의 재미를 줄 수 있는 포인트를 찾고 싶다. 그런 점에서 테스트를 해 본 유저들의 답변을 기대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중소 개발사다. 그만큼 절대적인 리소스로 승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스템적인 콘텐츠를 많이 선보일 예정이다. 일례로 <레드블러드>에서는 퀘스트가 중요 스토리 전달에만 집중됐다. 의미 없는 텍스트의 나열이나 심부름보다는 차라리 반복적인 콘텐츠를 재미있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한 번의 공격으로 4마리의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와 8마리의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 보상이 다르다거나, 처치하는 방식에 따라 보상이 달라져서 어떻게 ‘효율적인 전투’를 할지 연구하는 식이다.
1차 CBT에서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 전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몰이사냥과 아이템 획득이 재미있는지를 확인해야 이후의 콘텐츠를 마음껏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 입장에서는 5년이나 만들었다고 할지 몰라도 내부에서는 빨리 반응 좀 보고 갈 길을 정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다.
솔직히 말하자면 <레드블러드>는 지금 당장 공개할 정도의 퀄리티를 갖춘 게임은 아니다. 철저히 마이너 정신으로 만들고 있다. 그만큼 그래픽이나 스토리 등 전투 외의 부분에서 마음이 안 드는 점이 있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한다. 이번 테스트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오픈 베타테스트까지 계속 뜯어고치겠다.
■ <레드블러드>는 원작 만화의 사이드스토리
원작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왔다.
<레드블러드>는 만화책과 같은 세계관에서 파생된, 같은 세계의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다. 만화책에서 익숙한 캐릭터가 안 나올 뿐이지 기본적인 설정은 같다. ‘서울에서 만화책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부산에서는 이런 사건이 있었더라’ 정도로 생각해 달라. 사실 사이드스토리나 외전 등을 만드는 걸 워낙 좋아했는데 이런 식으로 풀 수 있어서 오히려 즐겁다.
그림체에 대한 말도 많은데 10년이 넘었는데 사실 바뀔 때도 됐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편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그리니까 오히려 더 좋다. 3D 작업도 할 수 있고(웃음).
<레드블러드>의 그래픽에서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룰이라도 있나?
만화를 그릴 때도 은근히 고증에 많은 신경을 썼다.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편이었는데 게임을 만들면서도 똑같다. 흔히 보는 판타지 갑옷보다는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갑옷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 중이다.
배경에서도 이질감이 드는 멋지기만 한 판타지보다는 지구상에서 진짜로 일어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웹게임도 개발 중이라도 들었다.
온라인게임과 별도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레드블러드>와 완전히 분리된 채 개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레드블러드>를 기다리는 유저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재미있게 잘 즐겨 주셨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고,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생도 해 가면서 <레드블러드>라는 게임과 애증 관계가 됐다. 지금으로서는 가능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을 뿐이다. 다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악담도 좋으니 가능한 많은 피드백을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