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틱 스튜디오. 해외 온라인게임 개발사 중 이 회사만큼 친숙한 이름은 흔치 않습니다. 2002년 엔씨소프트가 <시티 오브 히어로> 퍼블리싱 계약을 하면서부터였죠. 국내에서 기대만큼 날지 못했지만, 슈퍼히어로들의 바다 건너 활약상은 엔씨를 통해 많이 전해졌습니다. 그 후 잠잠하다 싶던 이 회사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 게임 개발자’ 빌 로퍼의 <챔피언스 온라인> 합류로 존재감을 드러냈죠. 그리고 요즘은 D&D RPG의 고전 <네버윈터 나이츠>를 MMO로 만드는 소식으로 주목받고 있고요.
익숙한 이름의 개발사 크립틱 스튜디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너무 일천했습니다. 스튜디오 이름(Cryptic)처럼 ‘수수께기’였죠. 수수께기는 풀어야죠. 실리콘밸리에 가는 김에 무작정 크립틱를 찾아갔습니다. 잭 에머트 대표와 크레이그 진키빅 최고운영자가 맞아줬습니다. /실리콘밸리(미국)=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크립틱 스튜디오는 2000년 7월 창립 이후 지금까지 MMORPG만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나온 게임은 모두 4가지. <시티 오브 히어로>(2004년)와 그 확장팩 <시티 오브 빌런>(2005년), 그리고 <챔피언스 온라인>(2009년)과 <스타트렉 온라인>(2010년)이다.
만화 가게에서 일했을 정도로 만화 애호가였던 공동창립자 잭 에머트의 성향을 닮은 듯, 대부분 슈퍼히어로 계열이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이나 장대한 서사(epic)가 없는) 미국인들은 유독 슈퍼히어로 만화를 좋아하니까. 이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타이틀은 어떤 게임일까? 우리가 영웅담을 익히 들어왔던 <시티 오브 히어로>일 것 같은데….
“동시접속자와 매출 측면에서 <스타트렉 온라인>이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올해 1월 F2P(부분유료화)로 전환한 이후 동시접속자 수가 3만5,000 명까지 올라갔으니까요. 요즘은 평균 1만 명 정도 됩니다. 매출은 한 달에 약 180만 달러(약 21억 원) 정도 나오고 있고요.”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2005년 이후 <바람의나라> <프리스톤테일> <카발 온라인> 등이 부분유료로 전환한 후 성공했던 사례가 있었다. 하긴 온라인게임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대부분 먼저 다 해보긴 했지.
왜 부분유료로 바꿨냐고 물어봤다. 답변이 너무 솔직했다. 너무 뻔한 질문을 하는 것 아니냐는 듯, 첫 문장은 짧고 강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죠. 부분유료화가 더 많은 유저를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요. 전환 이후 로그인하는 유저 수가 700% 이상 늘었습니다.”
맞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크립틱은 그것을 실감한 경험이 있다.
잭 에머트 대표.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편하게 있다가 자세를 고쳤지만, 원래 있던 것처럼 찍자고 했더니, 쿨하게 이런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매우 가정적인 CEO라는 평판이 있더군요.
2008년 12월 크립틱은 미국 퍼블리셔 아타리에 인수됐었다. 나쁘지 않은 모양새였다. 아타리가 보유하고 있던 유명 PC게임 <네버윈터 나이츠>나 <어둠 속에 나 홀로> <롤러코스터 타이쿤> 등의 온라인게임 버전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아타리는 2011년 6월 크립틱을 중국 완미세계에게 팔았다. 매각 전 2년 동안 270억 원의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2년 반 사이 회사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면, 무언가 하긴 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스타트렉 온라인>을 부분유료 모델로 출시하지 않았을까?
“출시할 시점에는 미국 유저들에게 부분유료화 모델이 별로 안 받아들여져 있있거든요. 게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몰랐었죠. 지난해 완미세계가 우리를 인수한 뒤, 북미법인 PWE가 부분유료화 모델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줬습니다. 무엇을, 언제, 얼마나 많이 팔아야 하는지, 어떻게 세일을 해야 하는지 등 많은 것을 배웠죠.” |
크레이그 진키빅 최고운영자. 만나는 내내 매우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아, 종합비타민과 주사위들.
우리나라에도 부분유료화를 반대하는 유저가 꽤 있다. 특히 하드코어 유저일수록 그런 경향이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하드코어 MMORPG 유저가 많은 북미에서, 전형적인 미국 게임의 부분유료 전환을 어떻게 봤을까? 유저들의 반발은 없었을까?
“싫어하는 유저들이 많았습니다. 몇몇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포럼에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어떡하겠습니까. 비즈니스의 일부인데요. 그게 무슨 모델이든, 게임에 참여하고 좋은 경험을 얻게 되면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겠죠. 그렇다고, 우리 게임에서 하드파워(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위해 돈을 쓰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철학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플레이만 열심히 해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부분유료화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게 키(열쇠)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크립틱은 아타리와 <네버윈터> 개발을 발표했다. 아타리가 보유하고 있던 PC게임 <네버윈터 나이츠>(2002년)를 온라인게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아타리의 품에서 나왔지만, 모회사의 핵심 IP는 가지고 나왔다. 대신 이번엔 PWE의 품이다. 부분유료화만 해왔고, 거기에 강점을 가진 모회사다. 정액제를 기반으로 만들어 왔던 게임이 부분유료 모델로 바뀌었다.
“아타리 시절에 만들었던 것을 많이 바꿨습니다. 완미세계가 투자하면서 훨씬 더 많이 게임에 투자를 했고, <스타트렉> 부분유료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1년 반 동안, 더 좋은 방향으로,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됐습니다.” |
미니어처 보드게임 <워머신&호드>의 지형. 크립틱 개발자들은 이런 종류의 다양한 게임을 하며,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수익모델이 바뀌었지만, 원작 <네버윈터 나이츠>는 그대로다. 2002년 당시까지 나온 PC게임 중 던전앤드래곤(D&D) 룰을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것으로 유명한 RPG였다. D&D 룰은 테이블 RPG를 위해 고안된 중세 판타지 스타일의 규칙. 하지만 부분유료 모델로 대중적인 인기를 노리는 MMORPG에게 정통 D&D 룰은….
“원작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똑같지 않아요. ‘팬&페이퍼’ 룰셋이 있지만, 재미 없거나, 혼돈스럽거나, MMO와 안 맞는 것은 적용시키지 않았습니다. 쉽고 편하게 할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
게임이 나오기 전 물어보는 뻔한 질문이 있다. 이 게임이 기존 다른 게임과 다른 차별적인 요소가 무엇이냐는. E3 직전이어서 다른 질문에는 자세한 답변을 피했지만, 이 물음에 대해서는 크레이그 최고운영자가 매우 열정적으로 두 가지 특징을 답해줬다.
“두 개의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박진감 있는 전투’이고, 두 번째는 ‘유저가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시스템’입니다. <네버윈터>의 전투는 그 어떤 MMORPG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가장 흥미진진한 게임 플레이를 보여줄 것입니다. 매우 강렬한 싸움과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유저가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장치를 만들고, 인센티브를 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유저 콘텐츠의 95% 이상이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크립틱이 좋다고 추천하는 콘텐츠나 유저들이 높은 점수를 준 콘텐츠는 더 잘 노출되고 이용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보완할 생각입니다.”
미니어처 보드게임 <워머신&호드> 등의 캐릭터들이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비공개 차기작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게임은 E3에 나온 동영상과 이후 공개되는 정보를 통해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10년 넘게 4개 이상의 MMORPG를 만들고, 서비스한 회사의 개발 철학이 궁금했다. 잭 대표가 매우 신나게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모두 게이머입니다. 우리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듭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 열정적인 게이머거든요. 우리가 열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우리는 일단 가능한 빨리 플레이할 수 있는 버전의 게임이나 게임 요소를 만듭니다. 완벽한 게 아니라 플레이가 가능한 수준으로요. 우리 자체 엔진이 있어서 4~5주 정도면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해보고 우리가 즐길 만하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하는 거죠. 그 판단에 따라 계속 만들지 안 만들지를 결정합니다.”
회사 내의 파티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슈퍼히어로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것 같더군요. 현재 145명 정도 근무하고 있는 크립틱은 차기작 개발을 위해 개발자들을 충원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완미세계에 인수된 뒤 달라지 점도 궁금했다. 직원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지만 그 전에, 또는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마음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인수가 결정된 뒤 회사에 와서 직원들에게 알렸습니다. 모두 박수를 치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냐는 질문에) 정말 그랬습니다. 모두 기뻐했습니다. 완미세계와 우리가 조금 다른 점은, 우리는 미국 유저들만을 대상으로 한 게임을 만들지만, 완미세계는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일 겁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특정 시장에 맞추는 게임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최고의 게임을 만들고, 그게 통하도록 하겠습니다.” |
친절하게 회사 구경도 시켜주고 인터뷰에 답해준 잭 대표와 크레이그 최고운영자.
[보너스] 크립틱이 지금까지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면서 배웠던 교훈들
<시티 오브 히어로>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마라. 게이머는 재미 또는 좋은 외모를 원한다. 환상적인 기획이나, 퍼즐 같은 요구사항이 많은 기획은 생각하지 마라.
<챔피언스 온라인> 굳은 비전을 가져야 한다. 시장에 대한 지식을 가졌지만, 게임에 대한 비전을 가지지 못했다. 게임 기획을 하는 대신 비즈니스 하느라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퍼블리싱 계약 하느라고 힘들었다. 그런 짓은 다시는 안 한다.
<스타트렉 온라인> 비전은 대단했다.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네버윈터> 게임에 몰입하기 더 쉽게 만들어야 한다. 쉽게 시작해서 쉽게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