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캐릭터가 게임에 등장한다면 좋을 텐데….’ 특별히 좋아하는 시리즈가 있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소박한 소망이다. 이런 캐릭터 제휴는 국내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있어도 캐릭터에 입히는 코스튬 한두 가지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제휴 캐릭터만 17개를 보유한 게임이 있다. 국산 캐릭터 IP(지적재산권)는 물론이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캐릭터 IP까지 보유한 <로스트사가>다. 다른 게임에선 하나 계약하기도 힘든 제휴캐릭터를 17개나 성사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들어갔을까?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자유분방한 세계관이 불러온 ‘드림매치’
아이오엔터테인먼트 사업실 김규만 부장.
“사실 이야기가 처음 나온 쪽은 개발팀이었습니다. <로스트사가>의 자유분방한 세계관에 걸맞게 보다 다양한 캐릭터를 담고 싶다는 의견이었죠.”
<로스트사가>의 개발사 아이오엔터테인먼트 사업실 김규만 부장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흔히 생각하는 개발자들의 자부심을 생각하면 놀라운 내용이었다. 물론 내부의 반발이 없진 않았다. 다른 게임의 캐릭터를 자신의 게임에 추가한다는 거부감, 그리고 전혀 다른 시스템에서 활약하던 캐릭터를 <로스트사가>에 맞게 재창조하는 어려움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안건을 낸 개발팀에서 설득에 많은 도움을 줬죠. 다들 납득할 만한 IP를 가져오겠다고까지 호언장담해 보는 제가 불안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개발팀의 노력은 멋지게 결실을 맺었다. 당시 게임의 비즈니스를 책임지던 세시소프트가 <길티기어> 시리즈의 ‘아크 시스템 웍스’와 제휴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로스트사가>의 첫 프리미엄 용병인 ‘솔 배드가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로스트사가>의 첫 프리미엄 용병 솔 배드가이.
원작의 맛을 살리기 위해 캐릭터 교체 콤보로만 가능했던 점프대쉬와 같은 신기능이 추가됐다.
“난투형 게임인 <로스트사가>와 대전액션 게임인 <길티기어> 시리즈는 궁합이 잘 맞았어요. 덕분에 내부에서도 신나게 작업했죠. 난이도도 높고 부담도 큰 작업이었지만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습니다.”
어렵게 완성한 프리미엄 캐릭터는 유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가 ‘로스트사가스럽게’ 나온 덕분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위화감이 없다는 것도 호평의 요인 중 하나였다.
솔 배드가이의 출시는 매출은 물론, 제휴 대상이었던 <길티기어> 시리즈의 국내 인지도와 매출액도 끌어올려 이후 다른 IP 계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아이오엔터테인먼트가 직접 제휴를 주도한 첫 번째 사례인 <프리스트>는 솔 배드가이의 실적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몇몇 IP 홀더는 먼저 제휴를 제안해 오기도 했다. 특히 <프리스트>는 비슷한 시기에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개봉해 <로스트사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계약에만 6개월, 원화 작업에 3개월
제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쉽기만 한 일은 아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IP 계약이다. 일반적으로 <로스트사가> 신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1개월 정도지만, IP 홀더를 수소문하고 계약하는 것은 몇 개월은 우습게 걸리는 일이다. 일례로 아이오엔터테인먼트가 처음으로 주도한 일본 IP 홀더인 SNK는 계약에만 반년 이상 공을 들였다.
“6개월 동안 몇 번이나 일본을 찾아갔는지 모릅니다. 항공사 고객 등급이 바뀔 정도였죠. 특히 제휴조건 조율에 많은 시간이 들었어요. SNK는 타이틀 단위 계약은 익숙해도 캐릭터 하나하나를 제휴한 경험은 없어 더욱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무라이 쇼다운> 시리즈의 하오마루(왼쪽)와 <KOF> 시리즈의 야가미 이오리.
어렵사리 IP 계약을 맺어도 캐릭터 검수 문제가 남아 있다. <로스트사가>의 고유 캐릭터와 달리 제휴 캐릭터는 제작기간이 2개월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인 캐릭터 콘셉트는 물론 원화에 그려진 하나하나가 전부 원작자의 검수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쪽 IP홀더는 세세한 부분에 많이 신경쓰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SNK의 격투게임 <사무라이 쇼다운>의 ‘하오마루’를 만들었을 때는 콘셉트를 조율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원작 일러스트를 몇 번이나 참조했는데도 옷깃이나 신발끈 위치 등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지적이 들어왔다. 디테일 외에도 나라별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류도 있었다.
“처음 하오마루를 디자인했을 때는 오른쪽 옷깃이 위로 올라와 있었어요. 알고 보니 일본 전통복장은 오른쪽 깃이 위에 있으면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일본 문화에 어지간히 조예가 깊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오류였죠.”
수 개월의 조율 끝에 완성된 하오마루의 원화.
이렇게 완성된 캐릭터도 모든 국가에서 서비스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 유저 성향, 혹은 IP 계약을 맺을 때 합의한 서비스 지역 문제를 고려해야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 출시된 <길티기어>의 ‘메이·죠니’ 캐릭터는 일본에서 메이만 한정적으로 판매됐다. 이는 게임의 설정을 중시하는 일본 유저의 성향 때문이었다. 원작에선 별개의 캐릭터였던 2명이 <로스트사가>에서 모양만 다른 같은 성능의 캐릭터로 나오는 것은 일본 유저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었다.
일본 <로스트사가>에서만 출시된 ‘슈퍼소니코’나 국내의 ‘조로’ 캐릭터는 서비스 지역 문제로 묶인 케이스다. 슈퍼소니코는 일본 퍼블리셔 CJ 인터넷 재팬이 계약할 때 서비스 지역을 일본으로 한정해 현지에서만 출시됐고, 조로의 경우는 북미에 해당 IP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가 있기 때문에 북미 버전에선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록스타를 대신하는 일본의 슈퍼소니코.
성인 게임사의 마스코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계약 지역 문제로 일본에서만 출시됐다.
■ DC·마블과도 계약할 수 있는 게임을 꿈꾼다
김규만 부장이 가장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캐릭터는 ‘야뇌 백동수’다. 당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 중이어서 이슈도 됐지만, 무엇보다 <로스트사가>에 드물었던 한국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의 꿈 중 하나는 아크 시스템 웍스나 SNK에 버금가는 한국적인 IP와 계약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 IP 캐릭터가 많이 업데이트돼서 그런지 한국 IP를 원하는 유저가 부쩍 늘었습니다. 저희도 한국 IP를 적극적으로 수소문하고 있지만,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한 IP 홀더를 찾는 일이 쉽진 않더군요.”
2011년 8월 추가된 52번째 용병 ‘야뇌 백동수’.
그의 아쉬움 중 하나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한국의 고유 IP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화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IP 홀더를 수소문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서브컬처’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아서인지 번번히 벽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이 게임 선진국일지는 몰라도 문화 선진국이라고 하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IP가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서브컬처에 대한 인식이 박하죠.”
<로스트사가>의 다음 목표는 어떤 IP와도 수월하게 계약할 수 있도록 게임이 성장하는 것이다. 제휴캐릭터를 출시한 후 유저들의 많은 건의가 있었지만, 이를 회사 사정으로 들어주지 못했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허황된 건의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데 자금 등의 문제로 버려지는 건의는 정말 아쉽죠. 요즘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인기인데, 배트맨을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입니다(웃음).”
IP에 대한 유저들의 건의가 들어올 때마다 개발진은 일본의 집영사나 미국의 DC·마블과 계약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을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세계 각국의 문화와 캐릭터가 모여서 벌이는 드림매치’, <로스트사가> 개발진의 원대한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