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특정 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창사 이래 8년 만에 처음입니다. 법안 내용에 문제가 많고, 통과될 경우 게임 생태계와 대중문화, 국민경제 모두에 치명적인 결과가 예견되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셧다운제 확대의 효과는 ‘게임은 불량한 것’이라는 인식의 공고화뿐입니다.
왜 강제 셧다운제 시간을 확대하려고 할까요? 기존 셧다운제(2011년 11월부터 시행)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시간 더 늘려서 제대로 효과를 보려고 합니다.
기존 셧다운제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시간이 짧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사회환경을 무시했고, 청소년의 정서를 못 읽었으며, 제도 자체가 허술했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80%가 학교 수업 이후 학원에 가고, 밤 늦게 귀가하는 현실, 공부 외에 다른 놀이문화가 부족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에게 다른 선택이 별로 없습니다.
강제로 막을 경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부모(59%)나 타인의 명의(41%)를 도용하거나, 셧다운제가 적용되지 않는 해외 게임이나 패키지/콘솔 게임을 즐기거나.
결과적으로 강제적 셧다운제는 ‘명의도용이 필수적인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실제 그런 비행을 조장하며, 해외 게임업체에게만 일방적인 혜택을 주는 부작용이 큽니다.
이쯤 되면, 셧다운이 필요한 것은 게임이 아니라, 강제적 셧다운제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셧다운제를 확대하려는 것은, ‘모든 게임은 불량한 것’이라는 낙인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게임을 모르는 기성세대의 거부감은 더욱 커질 테고, 게임에 대한 공세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예상컨대, 셧다운제의 확대는 게임 생태계를 왜곡시킬 뿐, 청소년의 게임 플레이나 게임회사의 매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대신 게임업계 종사자의 자존감을 더욱 떨어뜨리고, 게임 업계로의 신규 인력 유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게임이라는 주류 대중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지난 10년 동안 한류를 이끌던 문화 콘텐츠의 몰락에 일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이유로 디스이즈게임은 셧다운제의 확대를 반대합니다.
2. 매출액 강제징수는 ‘게임산업의 붕괴’를 초래할 것입니다.
특정 산업군 내의 모든 회사에게 매출 1% 이하의 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한다는 발상은 위험합니다. 또한 여성가족부의 ‘중독유발지수’ 평가에 의해 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추징한다는 내용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 지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재미있는 게임은 매출의 5%를 내야 합니다.
먼저 우려하는 것은 게임에 대한 매우 차별적인 인식입니다. 카지노와 경마의 경우 매출의 0.35%를 부담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카지노와 경마 등은 정부가 독과점적으로 사업권을 주는 사행산업입니다. 국내의 한 게임업체에게 독점적인 권한을 주고, 해외 게임업체의 국내 진출을 모두 막는다면, 그 업체는 10%라도 내주겠죠.
문화콘텐츠인 게임을 사행산업의 잣대로 바라보며 일괄적으로 부담금을 징수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심지어 부담 규모가 훨씬 큰 것은 게임에 대한 편견을 드러냅니다.
제작과 배급 전에 ‘중독유발지수’를 국가가 평가한다는 ‘사전검열’의 성격과, 국가가 특정 민간산업군에 대해 매출액의 일정 수준을 징수한다는 전근대적인 접근도 위험합니다. 이런 규정은 선진국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어떤 국가에서도 유례가 없습니다.
판호 정책 등 다양한 지원책을 등에 입은 중국 게임산업의 성장과 급변하는 플랫폼 환경의 변화 등으로 국내 게임업계의 위기감은 지난 10년 이래 최고 수준입니다. 주요 게임회사들은 최근 구조조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출액 강제징수는 국내 게임회사의 경쟁력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합니다. 특히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벤처나 신규업체들, 상당수의 중소 개발사들은 더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수익성 악화에 따라 내부, 외부 투자의 규모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회사들이 수익성을 더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게이머와 대중문화 전반에 미칩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하는 해외 게임회사들만 이익을 보는 매국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디스이즈게임은 매출액 강제징수를 반대합니다.
3. 일방적으로 게임을 ‘사회문제의 희생양’으로 삼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최근 게임 규제에 대한 논란은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내 총기 사건 이후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여론이 일자, 바이든 부통령이 현지 게임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부통령은 “게임이 실제 사회에서 폭력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함께 업계와 학부모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연구조사를 더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16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의회에 1,000만 달러(약 106억 원)을 요청했습니다. 미국 대법원은 2011년 게임도 보호받아야 할 언론이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이 유사 이래 게임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법안 두 건을 발의했습니다. 국방위원회 의원이라 해서 게임과 관련된 입법활동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파급효과가 큰 법안을 발의하려면, 사전에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고, 협의와 숙의의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복된 우려처럼,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게임으로 모는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휩쓸고 있는 요즘, 한국 게임은 매우 중요한 수출산업 분야입니다. 또한 놀이문화가 부족한 청소년 등 국민의 삶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계돼 있습니다. 그 규모와 중요성에 합당한 접근을 요구합니다. 전문가가 참여한 포괄적인 협의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법안이 통과될 경우, 디스이즈게임은 지스타에 불참하겠습니다.
22일 한국게임산업협회는 두 게임규제 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지스타 참여를 재검토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환영합니다. 하지만, 저는 향후 이보다 더 강한 대응을 요청합니다. 개별 업체가 나서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게임산업협회는 수면 밑으로는 꾸준히 입법부, 행정부와 논의하겠지만, 게임업계의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 이번 법안에 반대하는 배너를 제작해 배포하겠습니다.
- 법안이 통과될 경우 지스타 취재를 보이콧하겠습니다.
- 올해 해외 게임쇼 출장 시, 검은 리본을 달고 다니겠습니다.
- 추가적인 방안도 강구하겠습니다.
게이머들은 주변인 한 사람씩이라도 설득해 주기 바랍니다. 극단적인 반응에 머무르며 이 사안을 아는 사람끼리 분개하고 한탄해 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자기 주변의 한 사람이라도 설득해 공감대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해주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