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일단 다행입니다. 제 머리에서 나사가 빠진 건 아니라는 반응이 많네요. 이왕 저질러진 판이니 과대망상에 허무맹랑을 좀더 부어보죠. 지난 번에는 ‘미국 유통시장 돌파’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망상은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뉴미디어 전략’에 관한 겁니다. 지금부턴 주로 바다 건너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한강 다리 이름도 못 외는 촌놈이 태평양 건너를 이야기해봤자, 뭐, 코끼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겠죠. 이번 글에는 게임 관련된 내용은 별로 없고, 잡설만 늘어지네요. 양해 바랍니다. /시몬
▶ 넥슨, 엄청난 사고를 치다 2 :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뉴미디어 전략
넥슨, 엄청난 사고를 치다 3 : 2년 뒤, 혹은 5년 뒤의 풍경
1997년, <007 Tomorrow Never Dies>
혹시 이 아저씨 기억하십니까? 양자경이 나왔던 <007 네버다이>(97년)에 등장했던 ‘엘리엇 카버’라는 악당입니다. 냉전 상품인 <007> 시리즈는 소련 붕괴 후 ‘미디어 독재’라는 새로운 적을 등장시켰죠. 이 아저씨가 두목인 '카버 미디어'는 인공위성과 케이블통신망, 그리고 신문과 TV를 교묘히 이용하여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를 손아귀에 ‘카버’하려는 세력으로 나옵니다.
이런 설정은 <미녀삼총사>에서도 살짝 등장했는데,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막대한 영향력과, 그에 대한 경계심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두 영화 모두 ‘루퍼트 머독’(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을 겨냥했다고 하더군요. 신문사 하나 가지고 있어도 ‘밤의 대통령’ 소리를 했을 정도인데, 공중파 방송국, 영화사, 신문/잡지, 수십~수백 개의 위성/케이블 채널을 소유하고 있다면, 제법 경계의 대상이 될 법도 하죠. (이 바닥에서 ‘포식자’ 루퍼트 머독과 ‘전사’ 테드 터너(타임워너, 제인 폰다의 남편)의 앙숙 관계는 꽤 유명합니다. 정치적 입장도 대립적인 두 사람은 각각 메이저리그 구단인 LA 다저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소유하고 있죠.)
먹고, 먹고, 또 먹고. 글로벌 미디어그룹
글로벌 미디어그룹은 영화, TV, 신문잡지, 인터넷 등 엔터테인먼트와 매스미디어 전 영역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한 ‘미디어 패밀리’를 구축해왔습니다. 인공위성과 케이블 통신망과 같은 기술의 발달과 전세계적인 탈규제 물결 속 소유규제의 완화, 그리고 서로 간의 경쟁 속에서 몸집을 크게 불려왔죠. 넥슨과 제휴를 한 바이아컴을 비롯해서, 매출 규모 1위인 ‘AOL-타임워너’,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 ‘디즈니-ABC’ 등이 대표적인 미디어 패밀리들입니다.
특히 이 중 가장 왕성한 식욕을 드러냈던 루퍼트 머독은 가장 유명합니다. 네어버나 다음에 가서 한번 쳐보세요. 호주-영국-미국-남미-아시아를 돌며, 전세계적인 위성방송망들을 장악해간 그의 이력을 볼 수 있습니다. 스캔들과 섹스, 범죄 보도 등 엘로우저널리즘을 통해 미디어를 키워왔는데, 이제는 전세계적인 미디어망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게 됐죠. 몇 년 전 시작한 Fox TV는 ‘부시 정권의 나팔수’라는 소리를 들으며 미군의 이라크 침공의 1등 공신 역할을 했죠. (흔히 국내 언론에서 ‘해외 언론에 따르면~’ 이런 식의 인용보도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보도가 좀더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니혼게이자이 같은 일본 신문이나 Fox TV 같은 미국 방송은 우파 편향적인 논조로 유명하죠. 넥슨과 제휴한 MTV는 민주당, 특히 앨 고어 지지라고 하네요.)
뉴미디어, 올드미디어 되다
그런데, 글로벌 미디어그룹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평가는 다소 미지근합니다. 90년대 초반, ‘뉴미디어’라고 불리던 케이블과 위성을 장악하며 대중미디어의 공룡이 됐는데도 말이죠. 아마 2000년대 들어 등장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피라미들이 뉴미디어 자리를 빼앗아가 버린 탓이 아닐까 싶어요. 미디어의 속성상 정보나 엔터테인먼트로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에게 광고를 보여줌으로써 돈을 버는데, 요즘은 정보/엔터테인먼트/사람 모두 인터넷이 빼앗아가는 시대니까요. (바이아컴의 경우, 케이블네트워크 총수익 중 60%가 광고, 가맹국 프로그램 판매가 27% 정도 된다고 하네요.)
하긴 구글이 한해 8조원의 매출을 벌어들인다는데, 원래 이중 상당 부분이 미디어그룹의 몫이었겠죠. 방송국과 신문사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들리는, 요즘 광고가 계속 줄고 있다는 투정이나, 유튜브가 구글에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 네이버 메인에 광고하려면 몇 달 기다려야 한다는 소문 등등은 요즘 글로벌미디어 그룹이 겪고 있을 배앓이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다 건너에서는 방송이나 영화사의 인수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에 대해 다소 회의적으로 보더군요. 오히려 늘어난 덩치와 함께 컨텐츠 제작비용이나 인건비의 증가, 의사결정의 랙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 같습니다.)
2005년 2월, 뉴스코퍼레이션 경영전략회의
뉴욕에서 루퍼트 머독 등 뉴스코퍼레이션 고위임원 50명과 맥킨지 관계자가 모여 향후 인터넷 사업을 주력업종으로 삼아야 한다는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루퍼트 머독은 인터넷에 대해 ‘안티’ 성향을 보여왔죠. 하지만 TV, 영화, 뉴스, 음악에 대한 소비자 취향이 점차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특히 머독의 경쟁업체 타임워너가 운영중인 AOL이 10억 달러 이상의 광고매출을 올렸다는 실적 보고를 접한 뒤 한발 늦게 인터넷에 눈을 뜬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즈는 분석했습니다.
시작은 늦었지만, 동작은 빨랐습니다. ‘기업은 키우는 게 아니라, 먹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루퍼트 머독은 이후 엄청난 식욕을 과시했으니까요. 그 해 7월과 9월, 후다닥 ‘마이스페이스’(5억 8,000만 달러)와 ‘IGN’(6억 8,000만 달러)을 인수해버린 거죠. ‘마이스페이스’는 우리나라의 ‘싸이월드’에 해당하는 미국 최대의 커뮤니티 사이트고, ‘IGN’은 게임스파이, 팀엑스박스, 파일플래닛 등까지 식구로 딸려 있는 세계 최대의 게임웹진이죠. 소위 UCC(User Creating Contents)와 게임의 최고 사이트들을 삼켜버린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뉴스코퍼레이션이 엔씨를 합병할 것이라는 ‘설’이 떠돌기도 했었죠. (참고로, 이 분야에서 선수를 친 미디어그룹은 머독의 앙숙인 ‘AOL-타임워너’입니다. ‘CNN-타임워너’와 ‘AOL’은 2005년 1월 합병을 통해 인터넷과 미디어/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세계최대의 미디어그륩으로 탄생했죠.)
바이아컴의 추격전
섬머 레드스톤 바이아컴 회장은 지난 9월 인터넷 전략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CEO 톰 프레스톤을 전 격 해고해버렸습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바이아컴(‘비아컴’으로 읽는 분들이 많으신데, 실제 발음은 ‘바이어컴’에 가깝습니다.)이 인터넷 경쟁에서 타임워너나 뉴스코퍼레이션에 비해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던 때문이라고 분석하더군요. 특히 먼저 침을 발라놓았던 ‘마이스페이스’를, 5,000만 달러를 깎으려다가 ‘포식자’ 머독에 빼앗겨버린 게 두고두고 걸렸던 모양입니다.
큰 것은 못 잡고, 한발 늦었지만, 바이아컴도 꾸준히 먹었습니다. ▲바이아컴-CBS 분리(05.6) ▲네오페츠 인수(05.6) ▲iFilm 인수(05.10) ▲Gametrailers.com 인수(05.11) ▲Xfire 인수(06.4) ▲Atom Entertainment 인수(06.8) ▲Harmonix Music System 인수(06.9) ▲Quizilla 인수(06.10) 등 ‘AOL’이나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급은 아니지만, 인터넷과 게임 관련 라인업들을 줄줄이 늘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재밌네요. 언급한 곳 중에 네 곳이 게임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바이아컴과 상관 없이 레드스톤 회장은 올드게이머들에게 익숙한 ‘미드웨이’ 지분을 약 90% 정도 매집했다고 하더군요.)
“디지털 영역에서 5억 달러를 벌겠다”
이런 류의 인수합병이 어떤 성과를 낼지는 두고 봐야겠죠. ‘마이스페이스’나 ‘유튜브’ 등은 미국 현지에서도 불법복제 컨텐츠 때문에 법률적인 트집에 잡힐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더군요. 그에 비해 바이아컴에 대해서는 MTV 네트워크 등 엔터테인먼트 컨텐츠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게임 등과 접목했을 때 향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듯합니다.
그런데 바이아컴과 관련해 이달 나온 증권사 보고서를 몇 개 읽다가 애널리스트들이 의문을 갖는,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바이아컴이 큰 인수합병 없이 내년에 디지털 영역에서 5억 달러를 벌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부분이었죠. 시몬도 그렇고, 미국 애널리스트들도 그렇고, 저 위에 인수한 기업들을 통해 그만큼의 수익을 거두기는 힘들다는 생각하니까요. 이때 문득 시몬의 과대망상 머리 속에 스폰지밥이 탄 카트가 쓱 지나갔습니다. (아참, 지난 칼럼의 댓글을 보니, 바이아컴이 남아도는 광고를 줬다고 보는 분도 있더군요. 저도 잠깐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판이었습니다. 올 8월 발표에 따르면 바이아컴의 광고수익은 27%를 성장했더군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solid’라는 표현을 쓰며 이 분야의 매출이 아직까지는 건재하다고 전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