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산업협회가 이름을 바꾼다. 5월 중 협회 명칭에서 ‘게임’을 빼기로 했다. 나는 반대한다.
그들의 명분은 이렇다.
“게임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명칭이 제안됐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게임’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게임’이라는 말을 빼야 한다? 그 반대가 맞다.
상황이 급하다. 헐레벌떡 거친 글을 쓴다. 양해 바란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1. 위상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이름을 붙인다.
매년 GDC(게임 개발자 컨퍼런스)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코니 센터’에서 열린다. 매년 E3를 가기 위해 한국 게임 업계인들은 LA의 ‘톰 브레들리 공항’에 착륙한다.
두 곳은 각각 샌프란시스코와 LA 전직 시장의 이름을 붙였다. 어떤 사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을 짓는다. 게임의 위상을 높이려면, ‘게임’의 이름을 걸고 제대로 활동하는 게 맞다.
2.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회사는 이상하다.
협회의 논리를 따르면, 앞으로 게임회사는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회사’라고 칭해야 한다. 이상하다. 나는 ‘디스이즈게임’을 ‘디스이즈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로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길다.
게다가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는 참 애매하다. ‘창조경제’처럼 단어의 뜻이 광범위하다. 이게 게임회사들이 모인 곳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기자들도 모르겠다.
3. 이름을 바꾸면 위상이 올라가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에버레디 파워셀’이라는 건전지는 1980년 ‘에너자이저’로 개명한 뒤 쑥쑥 잘 나갔다. 상품의 브랜드는 이름을 바꿈으로써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게임’은 특정 상품의 브랜드가 아니다. 일반명사다. 낡았거나, 철 지난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문화적 위상’에 주목했다면, ‘산업’을 빼면 된다. ‘게임’을 지우고 어려운 말을 넣는다고 문화적 위상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4. 상처난 자존감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다.
잇단 게임산업 규제강화 법안 등으로 최근 게임인들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정치인을 받아들인 이유다.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여야 정치인이 게임 관련 협회 수장이 됐다.
게임이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그랬다. 게임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서 감추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전화위복을 바랐는데, 설상가상이 됐다. ‘호부호형’ 하지 못하는 신세는 자존감을 막장으로 몰아넣는다.
5. 정치적 논리를 의심한다.
업계는 정치적인 힘을 원했다고는 하지만, ‘정치인은 결국 정치적 논리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 지금 상황이 그런 느낌을 준다.
정치인이 협회장으로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괄시받는 ‘게임’ 대신 거창한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을 갖다붙인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또한 국내 여야 정당들이 지탄받는 시기마다 혁신을 명분으로 당명을 바꿔가며 유지됐던 정치적 습성이 협회 개칭에도 적용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6. 합의와 여론 수렴의 정치를 원한다.
정치는 원래 나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꼭 필요한 기능을 한다. 특정 지역구의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의 이익을 옹호한다. 특정 전문분야나 계층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는 그 분야나 계층의 의견을 반영한다.
게임산업협회가 게임업계를 대변하는 단체라면, 게임업계의 여론을 확인해야 한다. 개칭 발표 이후 SNS 등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이에 대한 푸념과 비판으로 떠들썩하다.
7. 해야 할 일을 할 동력과 지원을 버리는 조치다.
협회는 협회명 변경과 함께 업계가 자율적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국회의 규제입법, 정부의 행정규제에 우선해 기업 스스로 자율규제에 나서는 방안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한다. 환영한다.
협회명의 변경은 이 ‘과제’의 실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협회의 과제 실천을 위해서는 업계와 게이머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협회명 변경 소식 이후 협회에 대한 게임업계의 여론은 매우 안 좋다.
게임을 게임이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