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 전만 해도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던 네오위즈가 “EA와 전략적 제휴 논의를 하고 있다”고 실토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네오위즈의 신뢰성 성토 이야기도 나오고, 게이머들은 “진짜야?”라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단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많은 파급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임뉴스도 드물기에 향후 전개도 참 궁금하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손엔 정보가 그리 많이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공룡’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 게임사와 국내 대형 게임포털 간의 ‘빅딜’인 만큼 자세한 사정 파악이 어려운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간의 전개 과정과 옛날 일들을 뒤져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정황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략적 제휴 협상에 들어간 EA와 네오위즈, 그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디스이즈게임
[EA] ‘3수’ 끝에 성공한 <피파 온라인>
EA가 <피파>라는 IP(intellectual property)로 온라인 사업을 시도한 것은 <피파 06>을 기반으로 네오위즈와 공동 개발한 <EA SPORTS 피파 온라인>이 세 번째였습니다.
2001년 8월 EA 코리아는 ‘EA닷컴’의 국내 런칭을 선언하고 <울티마 온라인> <피파> <트리플 플레이> <심즈 온라인> 등의 주요 라인업의 한글버전으로 온라인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나선 바 있습니다. 당시 선봉장은 <피파>를 웹 환경에서 간편하게 실행시켜 온라인 대전을 즐길 수 있는 <피파 웹 사커>였습니다.
그러나 전국 대회까지 예정되어 있었던 <피파 웹 사커>의 온라인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EA닷컴’은 이듬 해인 2002년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쓴 맛’을 제대로 봤죠.
EA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 여름 <피파 2005 온라인>(왼쪽 아래 이미지)의 1차 알파테스트를 진행하며 다시 <피파>의 온라인화를 꿈꿨는데요, 이 역시 온라인게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져 결국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EA의 희망이 되어 준 파트너는 네오위즈였습니다. 2005년 하반기에 EA는 EA 코리아를 통해 <피파 06>으로 제대로 된 <피파 온라인>을 만들어줄 한국업체를 찾던 중 네오위즈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EA는 최근 1~2년간 자사의 히트작 IP를 온라인으로 옮겨줄 국내 개발사를 끊임 없이 물색해 왔습니다. <피파> 뿐만 아니라 <메달 오브 아너> <배틀필드> 등 ‘온라인으로 통할만한 것’들은 모두 꺼내놓고 적지 않은 국내 개발사를 만났습니다.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EA는 아무리 패키지 시장에서 잘나가는 원작이라도 ‘고민 없이 그대로 옮기면 실패한다’는 교훈을 뼈 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게임과 시장을 잘 아는 ‘실력’과 ‘환경’을 겸비한 파트너가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EA 캐나다와 한국 네오위즈 개발진이 태평양을 넘나드는 수고를 거듭하며 공동으로 만든 <피파 온라인>이 동시접속자수 18만명이라는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습니다. EA 본사에선 크게 고무됐습니다. 아마 깜짝 놀랐을 겁니다. 한국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다가 딱, 대박이 터졌으니까요.
EA가 자사의 막강한 IP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 시장이나 아시아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북미, 유럽 온라인게임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EA에게 절실한 것은 ‘언제든 때가 되면 투입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의 육성’입니다.
당장은 <피파 온라인>을 북미에 가져간다고 해도 매년 500백만 장씩 팔리는 <매든 NFL> 의 매출에 비교만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아! 이제 때가 되었으니 투입하자’란 생각이 들 때 준비하면 늦죠.
이 시점에서 EA가 온라인게임이 가장 발달한 한국의 유능한 파트너에게 원하는 것은 ‘자사 IP의 성공적인 온라인 이식’과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검증’ 두 가지 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손발을 맞춰본 네오위즈는 단순히 <피파 온라인>의 계약기간 동안만 같이하기엔 아까운, 검증된 파트너입니다.
[네오위즈] 검증된 IP, 그리고 눈앞의 세계시장
네오위즈 ‘피망’에게 ‘피망 맞고’와 ‘피망 포커’가 없었다면 <스페셜포스>로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실패했던 그 수많은 퍼블리싱 게임들을 다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피망’만큼 퍼블리싱에서 수업료를 많이 낸 게임포탈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네오위즈에겐 ‘짧은 시간에 몇 갑자의 공력이 쌓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서드 파티 퍼블리싱 타이틀 중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할 확률에 대해서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두 번째 ‘대박 타이틀’로 <피파 온라인>이 급부상했습니다.
공동개발사로서 엄청난 노력과 고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겠지만, 반대로 <피파>라는 브랜드와 <피파 06>이라는 기반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살짝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네오위즈는 ‘머리는 무척 똑똑했던’ 3수생 <피파 온라인>를 집중과외로 서울대학교에 입학시킨 셈입니다.
‘검증된, 알려진 IP’를 제대로 활용했을 때 성공 확률이 얼마나 높아지는지,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해외 수출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을 네오위즈는 ‘몸소’ 체험했습니다. ‘공룡’과 대적한다면 참 부담스럽지만, ‘공룡’과 친구가 된다면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간단한 상식을 네오위즈가 모를 리 없겠죠.
EA의 다음 온라인 주자는 <배틀필드>, 그리고 <NBA 스트리트>입니다.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피파 온라인>이 대박의 조심을 보이던 시기부터 EA는 내심 성공해 본 네오위즈와 계속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EA 본사 고위층이 ‘자주’ 한국을 찾아 네오위즈를 만났으며, <배틀필드>의 개발사 디지털 일루젼의 책임자들도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미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네오위즈에겐 ‘결단’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오위즈를 둘러싼 정황은 최근 기업분할과 조회공시를 통한 ‘전략적 제휴 논의 시인’까지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미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정황’들 말이죠.
[EA + 네오위즈] 온라인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다
게이머들은 우스갯말로 EA를 ‘Eat All’이라고 합니다. EA가 그동안 인수를 통해 몸집 불리기를 거듭해 왔기 때문입니다. 오리진, 웨스트우드, 불 프로그, 맥시스, 최근에 미씩, 디지털 일루젼까지 EA의 역사는 ‘인수의 역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수의 달인’ EA라고 해도 네오위즈를 인수하는 문제는 좀 다릅니다. 일단 네오위즈는 지금까지 EA가 인수했던 개발 중심의 회사들과 성격이 다릅니다.
비록 2월 1일 네오위즈가 기업분할을 통해 게임부문을 ‘네오위즈 게임즈’로 독립시켰지만, 게임포털 ‘피망’과 흡수한 띵소프트, 자회사 펜타비전에 내부개발 수많은 퍼블리싱 게임까지 덥석 집어들기엔 지금까지 ‘Eat’했던 게임사들과 내용물의 성분이 다르죠.
전략적 제휴를 통한 ‘지분 투자’(이 경우 지분 ↔ 지분이 되겠죠)가 되건, ‘합작법인 설립’이 되건 지금까지 EA가 경험하지 못했던 형태입니다. 네오위즈 입장에서도 ‘미래 10년’을 건 엄청난 승부수가 되겠죠.
잠시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콜 오브 듀티 온라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위닝 일레븐 온라인>의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가는 시대입니다. 패키지 기반의 유명 IP는 매년 한 번씩 신작을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게임 IP와 배급력을 가진 ‘공룡’ EA와 ‘원클릭’ ‘세이클럽’ ‘피망’으로 이어지는 변신의 귀재 네오위즈의 전략적인 만남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요? 이해관계가 확실한 두 회사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