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접속자 85만 명. <피파온라인3>는 지난 20일 국내 온라인게임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종전기록은 <메이플스토리>가 2011년 세운 62만 명이다. 넥슨은 약 3년 만에 자신의 기록을 큰 폭으로 갈아치운 셈이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제치고 염원하던(?) PC방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결과만 보면 축하해줘야 할 일이 맞지만 속을 비집어 보면 ‘놀라움’보다는 ‘허무함’이 앞선다. 그리고 이내 의문이 든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7월 19일 PC방 이벤트 보상. 24시간 내내 접속만 하면 이벤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수 년째 이어지는 넥슨의 자화자찬식 홍보
<피파온라인3>의 85만이라는 동시접속자는 PC방 이벤트에서 기인한다. 이번 이벤트에서 넥슨은 <피파온라인3>에서 60분 이상 접속할 때마다 ‘WORLD 11 선수팩’과 ‘500만 EP’, ‘2002 한국 전설 선수팩’ 등의 아이템을 제공했다. <피파온라인3>를 플레이 중인 유저라면 그냥 넘기기 힘든 유혹이다.
이벤트의 영향은 강했다. 유저들은 자연히 PC방으로 몰렸고, 많은 동네 PC방은 만석이 됐다. 실제로 <피파온라인3>의 PC방 총사용시간은 18일 122만 시간에서 19일 802만 시간으로 7배가량 늘어났다.
넥슨의 화끈한(?) PC방 이벤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월드컵이 한창인 지난 6월 21일에서도 넥슨은 비슷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동시접속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개발사에서는 좋은 성적으로 사기가 오르고, 단 하루만이라도 뛰어난 성적으로 이슈가 되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좋다. 떠난 유저들 다시 불러들이는 효과도 크다.
그래서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부터 <마비노기 영웅전>, <던전앤파이터>까지 많은 게임에서 이런 ‘동시접속자 늘리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유저들이 몰린 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최고 동시접속자를 경신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제는 유저들까지 익히 알고 있는 넥슨의 ‘눈 가리고 아웅’식 홍보다.
게임트릭스에서 밝힌 <피파온라인3>의 PC방 사용시간. 19일에 평소의 5배에 가깝게 늘어난 사용시간을 볼 수 있다.
과열된 이벤트, 더 과열된 유저
이벤트는 단순히 ‘흥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일부 유저들은 아침부터 PC방을 찾아와 전세를 내거나, 오랜 시간 플레이를 하는 대신 로그인한 채 자리를 비워뒀다. 이벤트 날인 19일 PC는 켜있지만, 사람은 없는 PC방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문제도 벌어졌다. 한 PC방에서는 자리를 맡지 못한 유저가 화재경보기를 눌러 PC방 전원을 차단시키고 도망가는 사건이 벌어졌고, 화면에 단체로 협박성 문구(?)를 띄워두고 사라진 유저도 있었다. 그 사이에 해킹을 당하거나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다.
물론 이번 사태의 모든 것을 넥슨의 탓으로 몰아가는 건 무리가 있다. 이번 상황은 어디까지나 일부 유저들이 벌인 일이고 넥슨이 이 모든 행동을 책임질 이유는 없다. 이벤트를 통해 이득을 본 유저도 많고, 애당초 더 많은 유저들을 모으는 것이 이벤트의 목적이다. 그 관점으로 본다면 넥슨은 확실히 성공한 이벤트를 한 셈이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퍼진 이벤트 사진들. 협박성 멘트(?)부터 자리를 비운 PC, 전원을 꺼서 문제를 일으킨 소년 등 다양하다.(이미지 출처: 오늘의 유머)
이룬 것. 그리고 잃은 것
넥슨은 이번 이벤트로 많은 소원을 이뤘다. 한국 온라인게임 사상 최대 동시접속자를 기록했고, (아마도 눈엣가시였을) <리그오브레전드>도 큰 차이로 꺾었다. 유저들은 신이 났다. 좋은 아이템을 쉽게 얻는다는 즐거움은 확실히 무시하기 어려우니까. 일시적이지만 PC방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만만찮다. <피파온라인3>의 이번 이벤트 방식과 일부 유저들의 행태가 알려지면서 여러 커뮤니티에서 비웃음을 샀고, 이런 상황을 보고 들은 사람들에게 게임의 인식을 더 나쁘게 만들어주는데 한 몫을 거들었다.
실제로 게임과 관련되지 않은 커뮤니티에서는 ‘게임이 뭐길래 저러냐’는 한심함이 섞인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넥슨이 추구하던 ‘기발하고 건강한 놀이문화’는 아닐 것이다.
넥슨에서는 “근 몇 년 새 빠르게 진행된 게임 플랫폼의 다변화로 PC 온라인게임에서 이 같은 대기록을 기대하기 쉽지 않았던 만큼, 온라인게임 산업 측면에서도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전작부터 충분한 인지도를 가진 <피파온라인3>가 이 같은 성적을 보여준다고 해서 다른 온라인게임들의 가능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번 이벤트로 인한 모든 이득과 가능성은 넥슨이 봤다. 하지만 과열된 이벤트로 인한 논란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넥슨만으로 끝난 일은 아니다.
넥슨의 윤리경영 소개자료. 유저(고객)에게 기발하고 건강한 놀이문화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미 충분히 가진 넥슨. 꼭 이래야만 했을까?
논란을 걱정한 탓인지, 아니면 내심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넥슨은 이날 ‘한국 게임역사상 최고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덕분에 국내 최고의 동시접속자 기록은 이렇게 ‘비교적’ 조용히 넘어가게 됐다. 대신 최대 동시접속자에 대한 의의와 이벤트로 인한 게임서비스의 불편함을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메일을 보내왔다.
다시 한 번 의문이 든다. ‘꼭 이래야만 했을까?’
이미 비슷한 수 차례의 이벤트로 홍역을 앓은 넥슨이 이 같은 사태를 아예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충분히 게임성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넥슨이 여전히 막대한 퍼주기 이벤트로 동시접속자를 뻥튀기하고, ‘세력 과시’ 수준의 마케팅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아쉽다.
국내 게임업계에서 넥슨은 좋은 싫든 선두주자다. 하지만 이번 <피파온라인3>의 이벤트로 본 넥슨은 그저 ‘쉽고 편한 편법을 가르쳐주는 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장의 이득도, 세력 과시도, 힘자랑도 좋지만, 넥슨이 ‘아직도’ 그럴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벤트 하나가 넥슨을, 나아가서는 국내 온라인게임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조금만 더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시접속자 85만. 넥슨의 자랑이 더 씁쓸하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