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슨은 2014년이 마지막입니다. 2015년은 넥슨이 되고 싶습니다”
넥슨 이정헌 사업본부장이 14일 지스타 프리뷰를 시작하며 던진 말이다. 넥슨은 2014년 ‘돈슨 탈출’을 내세웠다. 지난 5월에는 김정주 창업자가 나서서 ‘개발자 DNA’를 강조했고, 지스타를 앞두고 ‘돈슨의 역습’이라는 과감한 영상도 공개했다.
넥슨 스스로가 ‘돈슨’을 언급한 영상은 유튜브에서만 10만번이 넘게 재생됐고, SNS에서도 숱하게 회자됐다. ‘넥슨이 제 정신을 차리려 한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고, 이제는 돈슨이라는 이름까지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여기에 “개발자의 일정을 빼앗는 체험대를 과감하게 없앴다”는 정상원 부사장의 말은 넥슨이 말하는 개발자 DNA에 정점을 찍었다. 자, 누가 봐도 넥슨의 개발자 DNA는 성공했다. 그럼 이제 이정헌 사업본부장의 말처럼 더 이상 ‘돈슨’은 없어지는 걸까?
넥슨은 지스타 프리뷰에서 깜짝 신작을 공개했다. 그 중 하나인 <하이퍼 유니버스>
넥슨이 돈슨이 된 신작의 부재, 구조적 문제를 벗어나겠다는 넥슨의 각오
넥슨이 돈슨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건 사실 ‘성공한’ 신작의 부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넥슨은 최근 몇 년간 <마비노기 영웅전>이나 <사이퍼즈> <피파온라인3> 이외에는 마땅한 흥행작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라이브게임으로 이어졌다.
결국 매출을 끌어 올려야 하는 라이브게임들은 게임 내 밸런스를 파괴하는 과도한 캐시아이템과, 확률에 의존하는 랜덤박스의 대거 도입, 이제는 전설로 남은 키리의 약속과 믿음 등 재미보다는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페이투윈(Pay to Win) 방식의 캐시아이템을 속속 도입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겨난 별명이 ‘돈슨’이다. 아마도 ‘돈슨을 끝내겠다’는 넥슨의 이야기는 (이왕이면 성공하는) 신작을 통해 새로운 수익구조를 갖추고, 그럼으로써 라이브게임에서 과도한 매출을 끌어올리지 않겠다는 말 일거다.
지지한다. 게임개발사가 새로운 신작을 통해 매출을 끌어올리고 기존 게임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방향이니까.
키리의 약속과 믿음에 대해 실패라고 설명했던 네오플의 NDC 발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약속. 유저와 넥슨의 온도차이
다만 그 과정에서 유저들의 원망을 샀던 캐시아이템에 대한 어떤 변화도 밝히지 않았다. 오직 신작으로만 돈슨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건 삐딱한 시선으로 봤을 때 만약 성공작이 없으면 결국 언제든 ‘돈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전후사정을 익히 아는 기자나 업계 관계자가 아닌 유저들에게 진짜 ‘돈슨’이라는 이름을 듣지 않고 싶었다면 최소한 ‘돈슨’이라 불리는 핵심이유에 대한 대책 몇 가지라도 밝혀야 하지 않았을까? ‘더 이상 키리의 약속과 믿음 같은 아이템은 만들지 않겠다’거나 ‘랜덤박스의 비중을 대폭 줄이겠다’처럼 말이다.
넥슨이 생각하는 돈슨과 유저들이 체감하는 돈슨은 아무래도 조금 달랐던 듯하다.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이다.
넥슨의 정상원 부사장(왼쪽)과 이정헌 사업본부장(오른쪽)
남은 것은 진정성. 그리고 시간
15개 게임을 만들거나 퍼블리싱하고 개발자 DNA를 살리겠다는 진정성은 확실했다. 그 과정에서 ‘돈슨’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잘 이해했다.
하지만 진짜로 유저들의 입에서 ‘돈슨’이라는 말이 나오지를 않기 원한다면 신작을 내겠다는 의지보다는 신작을 이렇게 내서라도 지나친 캐시아이템을 없애고, 적절한 부분유료화 모델을 만들겠다는 한 가지 각오가 더 추가됐어야 한다. 혹은 몇 년에 걸쳐 진정성을 보여주거나.
그런 면에서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조차 없이 ‘내년부터 돈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이정헌 본부장의 말도 조금은 이르고, 성급했다.
돈슨은 당장 죽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넥슨이 새로운 시도를 겁내야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다. 일단은 넥슨의 과감한 방향성에 박수를 보낸다. 돈슨을 인정하는 그 자세에도 박수를 보낸다. 남은 건 넥슨이 자신의 믿음과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을 지 지켜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