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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익명글] 고래 유저와 라이트 유저의 균형, 핵심은 신뢰다

디스이즈게임(디스이즈게임) 2015-04-17 13:53:04

디스이즈게임은 4월 7일 확률형 아이템 이슈를 집중보도했습니다. 국내 게임 생태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상당수 유저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가챠 운영에 대해 집단적으로 꾸준히 쌓여온 불만의 짚더미에 저희 보도가 불똥을 붙였기 때문일 겁니다.

 

불만은 터져 나오는데 뾰족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을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법에 맡긴다고 해소되기도 어렵습니다. 가챠 이슈는 국내 게임 생태계가 처한 근본적인 환경 변화와 밀접히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셧다운제를 실시하면 청소년의 게임 소비가 줄어들(고 공부를 많이 할) 것'이라는 주장을 우리는 반대해 왔습니다. 청소년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홧김에 또는 취향에 따라 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확률형아이템을 없애자거나, 법률에 맡기자는 주장도 '셧다운제' 옹호론과 닮아있습니다. 간편한 해결책 같지만, 사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차선책 또는 차악책이라도 찾기 위해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좀더 진득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썰] 어쩌다가...를 통해 그 배경을 일부 설명했지만, 겉핧기 수준이었습니다. 후속 콘텐츠를 고민하고, 준비하던 차에 TIG 게이머발언대에 올라온 인상적인 게시물과 댓글을 봤습니다.

 

게시물은 4월 8일 미국 IT매체 '벤처비트'에 나온 '모바일게임, 0.23%의 유저로부터 60%이 매출이 나온다'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게시물 작성자 Gimmi 님은 "F2P(부분유료) 게임에 한해서 전체 유저의 1%도 안되는 극소수의 고래, VIP유저가 매출의 대부분을 견인하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경향인 것 같다. 가챠 확률조작도 결국 이런 경향성의 연장에 있다"는 생각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해 한 유저는 '헤비 소비자와 라이트 소비자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며, 그 핵심은 신뢰'라는 장문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일필휘지로 쓰여진 멋진 글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여기 올립니다. 가독성을 위해 일부 편집했습니다. 익명의 글쓴이에게 고맙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


 

 사회 환경의 변화와 게임 속 헤비 소비자의 등장

  

신자유주의의 부산물인 빈익빈부인부는 세계적인 공통 기류입니다. 이로 인해 게임의 주 소비층인 젊은 층이 전세계적 취업난→빚증가→결혼포기 등으로 고통받고 있죠. 경제곤란은 여가 분야의 극단적 축소로 이어졌습니다. 게임이나 인터넷 말고 여가시간을 보낼 만한 활동이 줄어든 게 전세계적인 현상 같습니다. 

 

사회 불안 탓에 이들은 각박한 현실보다 온라인활동에 더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인터넷을 통한 활동이 사회생활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개인단말기의 고성능화와 보급으로 게임인구가 폭증했습니다. 게임은 소수 오타쿠의 전유물에서 주류 소비자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라이트 소비층은 늘고, 그와 함께 극단적으로 소비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헤비 소비층도 생겨났죠. '0.23%의 유저로부터 60%이 매출이 나오는 현상'에는 이런 배경이 놓여 있을 겁니다. 

 

 

여가생활로 하룻밤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을 써도 까딱없는 극단적 부유층이, 육체활동 대신 정신활동의 만족감을 느끼려고 게임의 헤비 소비자가 되었다고 해석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다시 말해, 게임에 큰 돈을 쓸만한 사람은 얼마든지 쓸 준비가 되어있고, 적극적으로 소비할 용의가 있습니다. IT발전과 정신활동 가치의 상승, 개인단말기 보편화로 인해 게임은 헤비 소비자의 대량소비 분야가 됐다고 볼 수 있죠.

 

 

헤비 소비자와 라이트 소비자

 

문제는 이러한 헤비 소비자와 함께 플레이하는 라이트 소비자죠. 헤비 소비자는 결코 혼자 게임을 하지 않을 겁니다. 라이트 소비자라는 상대적 비교대상이 있어야 게임에 대한 대량소비의 만족감이 극대화되는 법이거든요.

 

게임회사의 고민과 철학은 여기서 중요해집니다. 소수의 헤비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라이트 소비자와의 만족감을 어떻게 얼만큼 간극화할 것인가, 라는 고민이죠. 이것이 가챠방식 부분유료화 모델 기획의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라이트 소비자를 헤비 소비자의 만족감을 위한 제물로 바쳐 매출을 극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라이트 소비자와 상생을 저울질해 헤비 소비자의 소비규모와 만족감을 제한하는 대신 라이트 유저의 소비를 소폭 끌어 올릴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전자는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발현된 현상인 가챠유도와 확률조작, 고가치 아이템의 수량통제 등으로 이어진, 작금의 비판받는 현상이라 볼 수 있죠. 헤비 소비자는 얼마를 쓰던 원하는 아이템을 뽑아낼 만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최대한의 여가적 소비를 끌어내고 남은 서비스와 만족감을 라이트 유저에게 떡고물처럼 나눠주는 것이 현재 주류 게이머들이 게임시장을 비판하는 현실의 핵심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계층간 소비 스펙트럼의 극단화가 딱히 부정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게이머는 얼마든지 떠날 수 있고 새로운 게임은 널려있거든요. 라이트 소비자가 떠나면 헤비 소비자도 떠납니다. 부분유료화 시스템에서 무료나 저비용 플레이를 하는 라이트 소비자의 규모는 헤비 소비자가 상대적 만족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거든요. 

 

 

 저울질이 필요한 이유

 

자 이제, 저울질의 시간입니다. 게임회사가 가챠확률 공개를 회피해 왔습니다. 낮은 확률과 (일부 게임사의) 자의적 확률 조절이 헤비 소비자에게서 소비를 뽑아낼 수 있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눈 앞에 당근 막대기를 매달고 천리길을 달리게 해도 헤비 소비자의 경제력은 지치지 않습니다. 너끈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러한 매출극대화 방법이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헤비 소비자가 더 소비해 줄수록, 라이트 소비자의 무료플레이를 위한 콘텐츠 확대 가능성은 상승하거든요. 스위스은행에 매출이 가지 않고 게임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다는 가정 하에서 말입니다. 

 

저울질해 보죠. 극소수 일부 게임사가 확률조작 등으로 주류 라이트 소비자들로부터 보이콧을 받으면 당장은 매출에 별 영향이 없을 수 있습니다. 헤비 소비자는 백화점에 들어가 "이거 빼고 다 주세요"라고 할 만한 돈이 넘치거든요. 당장은 매출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라이트 소비자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소셜, 네트워크 게임은 헤비 소비자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울질해야 하죠. '헤비 소비자에 대한 매출로 라이트 소비자를 얼마만큼 끌어들이고, 붙들 것인가' 하는 저울질 말입니다.

 

이건 스펙트럼입니다. 헤비 소비자가 가챠 혹은 게임으로 느끼는 레어 득템의 만족감과, 대다수 라이트 소비자의 대량 득템으로 하락된 레어템의 가치는 서로 반비례하거든요. 라이트 소비자가 높은 확률로 쉽게 레어템을 뽑아낼수록, 헤비 소비자가 가챠로 소비하는 매출의 규모는 극단적으로 하락할 겁니다. 그래서 저울질이라는 겁니다. 

 

 

 저울이 크게 기울어질 때

 

저는 딱히 어느 쪽을 상도덕적 관점으로 비판할 의도는 없습니다. 경제력이 넘치는 극소수의 헤비 소비자의 관용적인 소비 덕분에 서버 유지비용을 벌어 무료 라이트 소비자가 온라인게임을 적은 소비로 즐겁게 할 수 있다면 나쁠 거 없죠. 

 

 

하지만 이게 주류 라이트 소비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배신감을 유발하는 상품소비형태로 극단화된다면, 이건 명백한 게임회사의 저울질이 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이트 소비자를 희생해 헤비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는 사업정책이 되는 거죠. 

 

이것도 딱히 비판하진 않습니다. 라이트 유저는 게임이 불만족하다면 떠나면 되거든요. 매출극대화를 위한 소비상품 기획과 가챠확률 극단화, 헤비ㅡ라이트 유저 간의 중요성을 저울질하는 게임사에 대한 소비자의 대응 해답은 이미 존재합니다. 소비혁명이자, 소비 보이콧이죠. 

 

그러나 현실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일부 언론과 대형 커뮤니티에 대서특필되는 일대사건이 아닌 한, 라이트게이머는 즐기던 게임을 그대로 즐길 것이고, 투털대지만 받아들일 겁니다. 지금껏 그래왔거든요. 만약 소비자연대라는 문화정치적 소셜파워가 특정 게임의 극단적 유저 형편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게임의 라이트 유저는 작은 소비로도 상당한 만족을 얻을 가능성이 생기게 되겠지만요.

 

 

 성공적인 저울질을 기대하며

 

공은 울렸습니다. 링 위에는 매출극대화를 꾀하는 게임 자본과, 주류 라이트 유저가 글러브를 맞대고 서 있습니다. 정부인 심판은 어떻게든 두 선수에게서 정치적 이득을 뜯어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양쪽을 노려보고 있고, VIP 관중석에서는 헤비 소비자가 관람하고 있습니다. 

 

누가 승리하고, 누가 만족감을 얻고 이 경기가 어떻게 평가되던 그건 두 번째 문제입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과연 이 시합이 그대로 유지될까?' 라는 불안상황이죠. 가챠확률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일부 극소수 게임사가 확률조작을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문제는 저울질이죠. 어떤 저울질로 헤비 소비자와 대다수 라이트 소비자에게서 원만하게 모두 사랑받을 것인가를 저울질해야 할 때입니다.

 

 

그 저울질에 실패하면 심판이 법으로 퇴장을 명할 것이고, 라이트 소비자는 글러브를 벗어 링에 던지며 다시는 링에 서지 않겠다고 내려가 단체를 조직해 정치적 소비혁명을 꾀할 겁니다. VIP 헤비 소비자는 보다가 재미없다고 다른 즐길 거리를 찾아 떠나가겠지요. 링 위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시합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게 모두에게 즐겁거든요. 이번 공은 현재 게임자본과 게임회사, 개발자에게 주어졌습니다. 다음 번은 심판이 무섭게 정치적으로 공을 치며 달려들겠죠. 라이트 소비자는 심판을 열렬히 응원할 거구요.

 

그렇습니다. 저울질입니다. 부디 게임자본의 원만하고 성공적인 저울질이 이뤄지길 기대하겠습니다. 헤비 소비자의 소비가 결과적으로 무료 라이트 소비자에게도 중요하고, 무료 라이트 소비자들과의 원활한 플레이가 헤비 소비자에게도 큰 만족감을 주거든요. 즐거운 게임은 모두가 즐거운 게임이죠. :)

 

 

 핵심은 신뢰다

 

쓸데없는 수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가챠로 촉발된 위기의 게임문화와 감정적 대립과 문화적 산업적 불안상태가 안정화되길 기대합니다. 이번 공을 가진 게임자본의 현명한 저울질을 기대하겠습니다. 

 

그 한 방법이 유료가챠의 확률 공개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지혜를 모으면 아마 다른 방법도 있을지 모르죠. 링이 무너지지 않기를, 시합이 계속되기를, 즐거운 환호성이 앞으로도 가득차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참고로 전 블리자드의 노예입니다. <하스스톤> 가챠를 40만~50만 원쯤 했는데 딱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않는군요. 제가 헤비 소비자인지, 아니면 그냥 중소 소비자군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블리자드가 제가 질릴 때까지 <하스스톤> 서버를 유지해주고 정기적으로 새 콘텐츠를 공급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신뢰죠. 신뢰받는 게임회사가 되면 저 같은 중소 과금유저가 더 늘어날 겁니다. 신뢰란 중요한거든요. 신뢰받는 회사가 되시길. 가챠 확률 공개가 그 방법이 된다면 주저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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