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쯤 아는 모바일 게임회사 이사님과 함께 일본 게임 개발사들 방문을 위해 도쿄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도쿄 내의 대략적인 게임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신주쿠 등을 돌아다니며 게임 판매점과 아케이드 센터(오락실)을 둘러봤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도쿄의 게임 산업의 흐름을 둘러보며 느꼈던 감흥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간단한 글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본 게임 산업의 침체
일본의 게임 산업 자체가 침체되고 있고,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큰 회사들의 합병이 이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분명 일본의 게임 산업은 성장기를 지나 이제 침체기로 보여지는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내가 아끼던 수많은 일본의 유명 게임 개발사들도 이제는 그 이름이 사라져간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게임 산업의 침체는 일본의 불황 및 소비 산업의 침체 그리고 게임 자체로서의 돌파구 마련 부족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 콘솔 게임기를 중심으로 한 게임 시장 위축, 그리고 더 나아가 아케이드 시장의 전반적인 위축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일본 시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아케이드 시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 과거에 비해 지금의 국내 오락실에는 신규 제품이나 주목할만한 제품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오락실 업계가 쇠퇴하고, PC 방, 그리고 경마 게임장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는 일본의 시장은 분명 한번 주목해볼 만할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장이 살아나고 있다?
사실 도쿄의 몇몇 번화가만을 돌아보고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일본 도쿄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아케이드 게임장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아는 지인의 말을 빌면 작년까지만 해도 아케이드 게임장들이 문을 닫고 아키하바라 근처에서 퇴출되는 분위기였으나 이번 방문에서는 새로운 아케이드 게임장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특히 이런 분위기는 세가에서 주도적으로 이끄는 듯 보였다.
실제로 아키하바라에서 2개의 아케이드 게임장 전용 빌딩을 볼 수 있었는데, 전체 5층 건물에서 약 4층을 새로운 게임들로 채워놓고 있었다.
각 층마다 새로운 게임들을 세팅해 놓고 유저들을 모아두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규 아케이드 온라인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PC 방처럼 혹은 랜파티 처럼 같은 게임을 함께 즐기는 재미가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비록 서로에게 간섭을 주지 않는 일본 유저들이지만 함께 같은 층에서 플레이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간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론은 얼마 전까지 인형 뽑기 식의 경품 게임에 치중하던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그리 넓지는 않아도 한 층에 최소 15-20대 정도의 같은 아케이드 온라인 게임기를 설치해 놓은 것은 분명 아케이드 게임 센터의 새로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변화의 중심은 아케이드 온라인
앞서도 이야기했듯 변화의 중심은 아케이드 온라인이다.
이미 꽤 많은 아케이드 온라인 타이틀이 개발되어 있었으며, 많은 매니아들이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장르도 스포츠, 육성, 전략시뮬레이션, 액션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단순히 실험적인 시장 개척이 아닌 어느 정도의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검증하고 확산되는 시점으로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오락실에서 즐긴다
왜 아케이드 온라인인가?
PC 온라인도 있고, PS2 를 중심으로 한 콘솔 온라인도 있다.
헌데 왜 아케이드 온라인으로 세가, 남코의 일본 개발사들은 방향을 잡은 것일까?
이것은 일본인 특유의 게임에 대한 사고관과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 대해 모든 일본의 게임 개발사들 또한 크게 놀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PC 와 초고속 통신망이 보급된 양과 비교해 볼 때 여전히 PC 온라인 게임은 게임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일본 게이머들은 여전히 PC로 게임을 하는 것에 낯설어 하고 있다.
‘한게임 재팬’ 또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런 시장의 독점적 유지는 일본 게임 개발사들이 실력이 없어서 도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전히 PC 온라인 시장의 가치를 콘솔 게임 시장보다 낮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대략적인 결론은 나 혼자만의 결론이 아니라 일본 유수의 개발사의 개발자 및 중역진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판단된 것이다.
도쿄 아케부쿠로 한 게임센터에서 아케이드게임에 심취한 여성 유저
그렇다면 왜 콘솔 온라인은 부각되지 못하는가?
필자는 일본 게임 개발자들로부터 일본 게임 시장에서의 PC 온라인은 아직 도전하기엔 너무 시장의 크기가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여전히 메이져 시장은 PC 온라인이 아닌 콘솔 시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왜 콘솔 온라인 시장의 개발은 지지부진한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질문에 의외로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귀찮아 한다’, ‘일본인들은 복잡한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대답이었다.
물론 이런 대답들이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콘솔 온라인의 설치와 접속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생각하는 일본 유저들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듯했다.
게임센터에 설치돼 있는 '삼국지 대전 온라인'
진화의 시작은 아케이드 온라인으로부터
이런 상황에서 결론은 명확하다.
일본의 이름있는 개발사가 게임을 만들고, 게임은 익숙하고 이름있는 기존 소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게임은 게이머가 접근하기 쉬운 곳에 설치되어야 하며, 설치는 필요 없고 곧바로 실행이 되고, 간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게임인 만큼 여러 대를 동시에 설치 해놓고 유저들이 동시에 게임을 즐기고,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함께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일본 유저들이 바라는 온라인 게임의 모델인 것이며, 이는 바로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모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배경이 된 것이다.
지난해 출시돼 아케이드 온라인게임의 효시가 된 세가의 '챔피온 풋볼'
쉽다. 명확하다
일단 아케이드 온라인 게임기는 외관부터 화려하다.
디스플레이 판넬이 모니터 외관을 둘러싸고 있어서 모니터 화면 외에도 게임기의 외관의 그래픽이 변하는 화려함을 보여준다.
주변에는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즐비해 분위기가 고조된다. 게임은 아주 쉽다.
조작 방법 등은 마우스나 키보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조이스틱이나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메뉴 조작, 카드 배치를 이용한 조작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굉장히 직관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세가나 남코 등의 이름있는 개발사들이 작품을 만들고 있고, 당연하지만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다른 유저들과 경쟁으로 긴박감이 생겨난다.
자신의 플레이는 카드에 기록되거나 인터넷에 전적으로 남아 승부욕을 이끌어낸다. 그것뿐일까? PC 온라인 게임에 비해 아케이드 온라인은 유료화도 명확하다. 게임 플레이를 하려면 동전을 집어넣어야 한다.
5-7분 플레이에 2백엔(약 2천원)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개발사나 아케이드 센터로 봐서도 원 코인 플레이보다 훨씬 중독성이 있고 수익성이 높아지는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가의 아케이드 온라인게임 '삼국지 대전'의 실제 플레이 모습
일종의 세이브 역할을 하는 남코의 '아이돌 마스터' 카드
유저들의 반응도 일단은 호의적
일단 동경의 일부 번화가만 보고 전체 아케이드 온라인의 성공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첫째, 신규 아케이드 게임 센터가 지속적으로 들어서고 있고 둘째, 그 중 대부분의 층을 아케이드 온라인 게임기가 채우고 있다는 점.
셋째, 세가, 남코 등 거대 개발사가 수준 높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시장에 대한 가능성이 조금씩 인정 받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아이돌 마스터' 유저들이 직접 그린 팬아티
국내 시장 적용은 무리수
분명 지금 일본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게임들은 게이머 입장으로의 필자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보여졌다.
또 다양한 장르들이 준비되어 하나의 게임 센터를 구성하기에도 무리는 없는 듯 보여진다.
하지만 일본의 아케이드 온라인 게임 모델이 국내에 그대로 들어오기엔 여러 가지 법적 제한이나 국내에 침체된 아케이드 상황을 고려할 때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온라인으로 개발된 만큼 당연히 더 많은 로컬라이제이션 작업 등이 요구될 것이다.
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들
분명 이런 변화된 온라인 게임의 모델은 일본 시장으로 보았을 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진화로 보여진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들은 게임을 즐겨온 문화 자체가 틀리고, 성향이 틀리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것도 문화와 성향이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일본 시장의 변화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일본 시장의 유저들이 변화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일본 유저들에 맞게 우리 스스로가 서비스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작년에 동경 게임쇼에 너도나도 출사표를 던졌지만 이후의 서비스에 대한 실효성과 또 올해의 동경 게임쇼에 진출하는 곳이 그라비티 밖에 없는 것을 볼 때 분명 해외 시장 특히 중국, 대만과 다르게 일본 시장의 PC 온라인 진출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반대로 필자가 만나본 대부분의 일본 개발자들이 일본에서의 PC 온라인 개발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작지만 비어있는 시장으로 우리의 공략의 폭을 넓히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체 게임 시장의 크기에 비해, 일본 유저들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 및 접속 스타일은 고정되어 있다. 때문에 그를 이해한 일본 시장 공략이 필요하며, 이런 일본 시장의 변화를 파악해 게임 종주국이라 불리는 일본 시장에도 우리 나라의 게임들이 조금씩 진출의 길을 넓혀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쓴이: 정무식(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