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2005년과 2006년에 GC 취재를 다녀왔다. 그들의 성공비결을 짚어보는 기사도 작성했다. [원문보기]
올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흥행 비결에 대해 알고 싶었다. 출장에 앞서 2주 동안 취재일정을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왜 다시 가려고 하는 거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올해 행사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생각을 거듭하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GC의 성공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지스타가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지스타가 GC처럼 잘 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은 따라서 해보면 어떨까…. 그런데 GC 취재를 거듭할수록 눈에 보이지 않던 ‘차이’가 드러났다. 행사 규모나 수준의 차이를 넘어선, 문화와 인프라의 차이다. 다소 길고 읽기 불편한 글이 될지도 모르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디스이즈게임 이재진 기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던 토요일(23일, 일반관람 셋째날), 숙소를 나와서 라이프치히 중앙역으로 갔다. 이미 전시장으로 향하는 16번 전차(tram) 플랫폼엔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부터 게임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자유분방하다. 독일에 온지 7일째, 언제 어디서나 맥주병을 들고 마시는 자유분방한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인파 탓에 콩나물시루처럼 비좁은 전차 안이지만 분위기는 흥겹다. 왁자지껄. 흥겹게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다. 유쾌한 기분으로 게임쇼에 향한다는 느낌의 전차에 내리자 엄청난 군중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대도 각양각색이다. 아버지와 아들, 젊은 무리, 나이가 지긋한 신사 등.
■ 믿고 자녀를 보낼 수 있는 게임쇼
GC는 10대 입장객의 연령구분을 팔에 차는 띠로 한다.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은 띠를 착용해야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띠는 18세, 16세, 12세의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학생증이나 신분증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그에 맞는 띠를 채워준다. 물론 어른들은 띠를 차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는 입장권을 사는 것이 아니다. 전시장 입구에서도 연령구분 띠를 받을 수 있지만 전차 정류장에서 전시장까지 걸어가는 약 200m 정도의 구간 곳곳에 위치한 천막에서도 띠를 준다. 인파분산을 위한 정책이다.
사람들은 귀찮은 내색 없이 '당연하다는 듯' 줄을 서서 띠를 받는다. 아들이 띠를 차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가 보였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띠에 대해 묻자 그 아버지는“우리는 모두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부모다. 나만 내 아이가 즐기는 게임에 관심을 가져서는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2003년 설립된 PEGI(판 유럽 게임 인포메이션)의 게임등급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PEGI는 게임업계가 직접 운영하는 자율심의로 3세, 7세, 12세, 16세, 18세의 등급을 갖고 있으며, 폭력성과 선정성 등의 내용도 자세하게 표시된다. 하지만 독일은 자체적인 심의등급 시스템 USK를 사용하고 있다. USK는 전체, 6세, 12세, 16세, 청소년 이용불가의 등급으로 구성된다. 게임컨벤션에서 상영되는 모든 게임 영상과 시연대의 데모버전은 USK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독일에서는 몇년 전 게임 마니아가 총격사격이 저지르면서 연령등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신체훼손 표현이 심한 <닌자 가이덴 2>나 <기어스 오브 워> 같은 게임은 출시되지 못했다. <콜오브듀티4>와 <GTA4>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출시됐다.
중요한 것은 연령구분 띠의 의미가 전시장 안에서 잘 지켜지고 있느냐였다. GC는 이런 연령등급이 행사에서도 잘 지켜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GC 전시장에는 아예 16세 이상 이용가와 18세 이상 이용가 시연대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밖에서 볼 수 있는 모니터도 없고, 입구도 천막으로 가려놓거나 진입로를 휘어지게 만들어 놓아서 안이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격리되는 셈이다. 어려보이는 관람객이 연령구분 띠를 차지않은 채 들어가려고 하면 부스 관계자의 제지를 받는다. 13살 어린이가 16세 이상 이용가 게임을 하게 될 가능성은 0%에 가까워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녀가 즐기는 게임에 관심이 많고, 직접 골라주기까지 하는 독일(유럽)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믿음이다. 부모는 관심이 있고, 자녀도 그것을 알고, 게임업체와 GC 주최측도 이를 배려한다.
이쯤 되면 ‘지스타도 이렇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국제게임전시회’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해외 게임업체의 출전과 외신 기자들의 방문이 적은 지스타가 당장 배우고 반영하기에는 GC가 보여준 문화와 인프라의 ‘격차’가 너무나 컸다.
지금부터 GC의 장점을 지스타에서 해볼만한 것과 ‘당장’ 그렇게 하기 힘든 것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보겠다. ‘부러운 것’과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볼 때 진정한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누워보면 편하다. 하지만 콘솔과 온라인은 다르다
GC 전시장에 들어서면 일단 놀라게 만드는 광경이 바로 ‘시연대의 안락함’이다. 누워서 플레이 할 수 있는 시연대는 너무나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패드를 사용하는 콘솔 게임에 국한된 이야기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동시에 조작해야 하는 온라인게임은 누워서 하기 힘들다. 실제로 <워해머 온라인>이나 <아이온>의 부스는 앉거나 서서 하는 시연대로 출전했다.
문화적인 차이도 크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생활문화는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물론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매우 조심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도 눕는 느낌의 안락한 의자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그런 모습은 매우 낯설다. ‘예의에 어긋나게’ 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온라인게임이라는 조작의 특성과 문화의 차이. 쾌적한 시연대와 전시공간의 마련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전시공간의 ‘완성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누가 노력을 해야 할까?
■ 전시장에서 GC 브랜드를 갖고 있다?
게임컨벤션(GC)이라는 이름과 브랜드는 바로 전시장인 ‘라이프치히 메쎄’가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라이프치히 메쎄는 GC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매년 행사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올해 GC 2008은 이동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기 위해서 전시장 배치를 새롭게 바꿨다. 전시장이 곧 주최측이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변화다.
GC 현장에서 한국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많이 나눴던 이야기가 바로 “전시장 참 좋다”였다. 맞다. 라이프치히 메쎄는 규모나 시설 측면에서 지스타가 열리는 KINTEX보다 뛰어나다. 전시장 자체의 인프라도 좋지만 메쎄 측에서 GC에 참여하는 열의가 남달랐다.
더 나아가 라이프치히 메쎄가 속한 라이프치히 도시의 지원도 전폭적이다. GC 2008의 개최 시기가 되면 라이프치히 전차, 정류장, 중앙역 등 도시 전역에 포스터와 현수막이 나붙는다. GC 2008 입장권은 곧 라이프치히 전역을 오가는 전차의 티겟이 된다.
GC 열리는 도시, 그곳의 전시장이 행사를 갖고 있고 운영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전폭적인 지원이 우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한편, 지스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스타 조직위원회’가 해체되고 한국게임산업진흥원으로 통합됐다. 이후 진흥원에 지스타 관련 부서가 만들어졌는데, 바로 어제 게임산업진흥원이 다른 정부기관들과 통합된다고 발표됐다. (※ 8월26일 기획재정부는 한국게임산업진흥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을 ‘한국컨텐츠진흥원’으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최근에 만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올해 지스타가 정말 걱정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수 시장이 어려워져서 지스타에 출전할 비용으로 해외수출에 힘을 쏟으려는 업체들이 많다. 참가할 이유도, 여유도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와닿는 말이다. 내수 시장의 홍보만 노리고 지스타에 참가하라고 하기엔 요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역시 돌파구는 ‘국제’라는 문구에 있지 않을까.
■ 해외 기자들이 많이 온다는 ‘의미’
라이프치히 메쎄와 GC 조직위원회는 매년 상세한 통계를 공개하는데, 2007년 자료를 보면 해외 게임업체와 기자들의 GC 방문이 2006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입소문’이 제대로 난 것이다. 비즈니스 담당자와 기자들이 많이 오면 신나는 쪽은 당연히 출전 업체들이다.
GC에서 ‘취재’와 ‘관람’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행사장이나 시연대 촬영 등을 제외한 취재 활동(인터뷰, 개발자 시연 등)은 전시장이 아닌 비즈니스 센터에서 진행된다. 즉, 관람객을 위한 전시부스를 낸 개발사나 퍼블리셔는 대부분 비즈니스 센터에도 부스를 마련한다. ‘소비자를 위한 전시’와 ‘사업·취재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센터의 업체별 부스에는 게임기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신작의 비공개 데모’와 ‘인터뷰’ 등이 진행된다. 전시장에 출품되지 않은 미공개 신작들도 만나볼 수 있다. 업체들은 전시장에선 관람객을 위해 최적의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즈니스 센터에서는 매체와 사업 관계자들에게 집중한다.
2006년을 기점으로 GC를 찾는 해외 관계자와 기자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게임업체들이 GC에 출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작의 홍보와 해외 수출에 최적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점점 해외 수출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직결되는 요즘, 해외에 게임이 한번 더 알려질 수 있다면 지스타 참가 이유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다. 지스타 조직위와 참가 업체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GC도 단숨에 해외의 관심을 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쇼의 국제화를 위해서 해외 매체는 너무나 중요한 기반이 된다.
매년 9월 중순 싱가폴에서 개최되는 게임컨벤션 아시아(GCA)는 이미 한국 매체에게 적극적으로 접촉을 해오고 있다. 한국에 행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취재지원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GC의 ‘아시아 버전’격인 GCA는 GC의 성공전략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차이’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상대의 장점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와 나의 ‘차이’, 즉 ‘나’를 잘 알아야 발전할 수 있다. GC는 PC게임이 발달한 독일의 특성과 가족이 함께 하는 유럽의 문화가 반영되어 다양한 장점을 보여준다. 여러 나라가 밀집한 유럽을 장악한 게임쇼라는 입지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7월에 차이나조이, 10월에 도쿄게임쇼 뒤에 개최되는 지스타는 지리적, 시기적 장점을 누릴 수 있는 부분이 GC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저 소니, MS, 닌텐도가 불참했다고, 굵직한 국내 업체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기엔 상황의 ‘차이’가 너무 크다.
해외 기자들과 업체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당연히 ‘온라인게임’ 때문이다. 이런 관심을 지스타의 장점으로 철저히 활용하고, 해외 매체와 관계자들이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올해는 또 홀을 어떻게 채우나 눈앞의 걱정이 앞서지만, 이럴수록 더 멀리보고 단기, 중장기 전략을 나누어 세워야 한다.
GC는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가보고 싶은 게임쇼였다. 기자로서 만나보기 힘든 해외 대형 게임사를 취재할 수 있었고, 급변하는 유럽 온라인게임 시장의 동향도 접할 수 있었다. 조직위와 메쎄의 ‘마인드’도 탁월했다. 지스타도 격식과 명분에 휩쓸리지 말고 차근차근 ‘1점’씩 챙겨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안 된다고 누굴 탓하고, 늦었다고 탄식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GC 2008 현장에서 가장 부러웠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