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밍 기기의 폼팩터(form factor·크기와 형태)는 유저의 게임 소비 패턴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다. 예시는 흔하게 찾을 수 있다. VR 게임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기기들 전반의 물리적 불편이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사용성이 탁월한 밸브의 휴대용 게임기 스팀덱은 이에 어울리는 여러 게임의 판매량 증가에 기여했다.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캐주얼 장르가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는 현상 역시 스마트폰의 폼팩터적 특성으로 잘 설명된다. 작고 납작한 스마트폰 기기는 화면을 자세히 보거나 복잡한 조작을 하기 어렵다. 조작·관찰·판단의 필요성이 최소화된 캐주얼 장르가 유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캐주얼의 반대 특성을 보이는, 이른바 ‘코어 게임’은 득세하기 어려운 환경인데, 그럼에도 굵직한 성공사례는 종종 나온다. 이 방면의 국내 선두를 꼽는다면 역시 <뉴 스테이트>와 BGMI를 출시한 크래프톤이 있다. 이들이 논란의 <다크앤다커> IP를 모바일로 만들겠다 발표했을 때도, 최소한 그 성공 가능성 측면에서는 수긍하는 반응이 많았던 이유다.
하드코어한 ‘익스트랙션’ 장르를 모바일 환경에 조화시키는 것은 분명 ‘모바일 코어 게임’이라는 니치 영역에서 입지를 다져 온 크래프톤에 기대해 볼 만한 역량이다. 24일 <다크앤다커 모바일> 오픈 베타에 앞서 진행된 ‘미디어 사전 체험’ 빌드를 통해, 이를 실제로 확인해 볼 기회를 얻었다.
<다크앤다커 모바일>은 원작과 유사하게 던전을 탐사하며 유용한 아이템을 찾아 탈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더 높은 티어의 던전에 도전하는 콘텐츠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탐사 중 사망하면 장비/소지한 아이템 대부분을 잃는데, 이러한 리스크에서 오는 위기감, 이를 극복하고 탈출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이 장르의 매력이다.
익스트랙션 장르는 슈터(슈팅)와 융합된 형태가 많지만 이번 작품의 원작인 <다크앤다커>의 경우 중세 판타지 던전을 테마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그런데 게임 디자인에 있어 ‘던전’의 전통적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오히려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바라볼 만하다. 장르의 핵심 아이디어인 ‘위기 극복과 보상’은 모두 던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던전은 익스트랙션 장르에 어울리는 구성요소를 이미 많이 내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크앤다커>는 이들 요소를 중점 활용하면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강력한 적, 기만적 함정, 좁고 어두운 지하공간 등은 모두 유저를 던전이라는 무대에 온전히 몰입시킨다.
익숙한 느낌의 화면이 유저를 맞이한다. 비슷한 것은 비주얼만은 아니다.
또 다른 특징적 메카닉으로는 어려운 전투 난도가 있다. 캐릭터 움직임에 현실적 제약(느린 속도, 현실적 리치)을 두는 반면 적의 체력과 공격력은 높게 설정해 매번의 전투에 집중하게끔 유도한다.
그 때문에 전투 자체는 물론 전후의 행동(개전 결정과 퇴로 확보 등)까지 전략적 고민이 필요해진다. 정확한 리스크 계산을 요하는 장르 문법, 그리고 던전 탐사의 전통적 로망 양쪽을 모두 노린 시스템이다.
물리학을 적용한 전투 메커니즘도 호평받았던 부분이다. 무기의 타격 판정이 엄격하고 지형지물, 함정, 아군 캐릭터 간의 물리적 상호작용이 현실적으로 구현되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전투에서 지형지물에 신경 쓰게 되었고, 이것은 실제 지하공간을 누비는 듯한 느낌을 강화했다.
적이든 아군이든 지형지물에 방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원작과 모바일 버전 공통의 묘미 중 하나
원작을 기억하는 유저가 <다크앤다커 모바일>을 플레이한다면 느낄 만한 직관적 차이 중 하나는 화면이 비교적 밝아졌다는 것이다. 야외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모바일게임의 특성을 생각할 때, 이렇듯 화면을 밝게 해 시인성을 높이는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차갑고 음산한 던전 공간이 줄 수 있는 현장감이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지점이다. 이러한 ‘타협’, 혹은 ‘재조정’은 <다크앤다커 모바일>의 몇몇 주요한 디자인 결정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꽤 중요한 키워드다.
비슷한 예시로 ‘대미지 카운터’ 시스템이 있다. MMO나 루트슈터에서 볼 수 있는 그것으로, 무기의 위력, 타격 성공 여부, 치명타(헤드샷) 적중 여부를 보기 좋게 알려준다. 이것은 화면이 작은 모바일게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UX 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성장 수준을 가장 명확히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감/몰입감을 해친다는 점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던전의 ‘어둠’을 덜어내 시인성을 확보한 것처럼, 접근성 신장을 위해 리얼리티 측면의 희생을 감수한 모양새다. 다행히(?) 대미지 카운터는 설정에서 비활성화시킬 수 있는 옵션이다. 다소의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배제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판정과 대미지 수치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전투의 경우, 원작의 물리 시스템, 그리고 느릿한 공방 호흡을 살리려는 시도가 먼저 눈에 띈다. 일례로 파이터의 막기 스킬은 누르는 것만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들어 올린 방패를 실제 적의 방향으로 잘 겨냥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의도치 않았던 동작 덕분에 공격을 절묘히 피하는 요행도 가끔 바랄 수 있다.
적 체력과 대미지 역시 무시할 수준이 아니며, 이것은 완만한 전투 호흡으로 이어진다. 원작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초반에도 일부 강력한 적들은 십수 초가 넘는 대치 이후에야 쓰러뜨릴 수 있다. 또한 일격에 체력을 절반 가까이 앗아가는 몬스터가 등장하는 등, 전투가 여유로운 편은 아니다. 모바일의 까다로운 조작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간발의 차로 무기를 피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진입장벽 완화를 위한 시도 역시 많다. 우선 몬스터들은 대부분 한정적인 한두 가지 공격 패턴으로 덤벼든다. 이때 공격 방향과 시점을 대강 알려주는 인디케이터까지 출력되기 때문에 집중한다면 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러한 밸런싱의 결과 <다크앤다커 모바일>의 전투는 적정 수위의 긴장감을 부여하지만, 그 자체에서 매번 큰 재미를 주지는 않는 선에 안착했다. 여러 마리의 적을 동시에 상대하거나 인간(혹은 봇) 플레이어와 중첩해 전투를 벌이는 등 추가 조건이 따라붙을 경우 짜릿함을 느낄 수 있지만 통상적 상황은 아니다.
이런 공격은 무방비로 맞으면 꽤 많은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럼에도 모바일 환경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손맛’을 선사하는 유형의 전투라는 점을 분명 유념할 만하다. 무기를 정확한 각도로 휘둘러 약점을 적중시키는 쾌감은 일반적으로 모바일 액션 게임에서 기대하는 종류는 아니다.
클래스별 액티브 스킬이 지니는 가치도 탁월하다. 그 성능이 여타 RPG 게임에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동작 하나하나의 전략적 밸류가 높은 시스템 특성상, 현명히 활용한다면 상황을 급격히 역전하거나 적을 압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요건이 된다.
스킬 하나하나의 가치가 높다.
<다크앤다커 모바일>의 ‘진입장벽 완화’가 명확히 드러나는 또 다른 지점은 보상과 육성이다. 매번의 던전 탐험이 ‘성공’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나름의 성장과 진척을 느낄 수 있도록 보조하는 시스템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도감’이 대표적 예시다. 국산 MMORPG에서 자주 등장하는 ‘컬렉션’ 메카닉과 거의 동일하다. 아이템을 모아 도감에 등록하면, 특정 항목의 수집이 완수될 때마다 해당하는 버프를 얻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던전에서 드롭되는 이른바 ‘잡템’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보상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원래라면 기본 재화를 버는 수단에 그쳤을 ‘잡템’들이 유저를 장기적으로 강화해 주는 재료가 될 수 있다.
또한 특정 컬렉션 항목을 완성하고 나면, 해당 항목의 구성 아이템을 추가로 투입해 버프를 ‘승급’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던전에서의 아이템 획득 난도까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고급 아이템을 얻지 못한 탐험에서도 나름의 만족을 느낄 가능성이 더 크게 열려 있는 셈이다.
도감 시스템이 성장을 돕는다.
탐험 실패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또 다른 요소로는 몇 가지 ‘보험’이 있다. 탐사 중 사망하더라도 완전히 파산하지 않도록 보조해 주는 일종의 완충 장치들이 몇몇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은 ‘후원 장비’다. 사망 시 ‘후원가’가 적정한 수준의 장비를 지원해 다음 도전에 쉽게 나서게 해준다. 후원을 자주 받으면 호감도가 올라 후원 장비 수준도 높아진다.
다른 하나는 ‘장비보험권’이다. 사망 시 착용 장비의 보존율을 증가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이번 테스트에 등장한 보험권의 경우 40%의 보존율을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 장비강화를 더하면 보존 확률은 더욱 올라간다. ‘대장간’ 탭을 열어 무기를 등록 후 재화를 들여 ‘단련’을 실행하면 무기의 기본 스펙이 상승함과 동시에 보존율까지 함께 상승한다.
단련이 항상 정답은 아닐 듯하다.
다만 ‘단련’은 4단계부터는 성공/유지/파괴 가능성이 나뉘기 때문에 무한정 시도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다. 오히려 피해를 볼 가능성도 존재한다. 4단계에서 5단계로 상승시 파괴 확률은 15%로 늘어나는 반면, 보존율(사망 시 아이템을 잃지 않을 확률)은 여전히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이득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결국 추가로 안전을 보장해 줄 ‘장비보험권’의 구매를 고려하게 되는데, 이때 염두에 둘 사실은 장비보험권을 특수 재화인 ‘백금 주화’로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던전에서 구할 수 없다’는 설명으로 볼 때, 백금 주화는 과금으로만 획득하는 재화로 추정된다.
백금 주화를 사용하면 더 나아가 개인 인벤토리와 보관함 확장도 가능하다. 아이템의 획득이 스펙 업그레이드로 직결되는 게임 시스템을 고려할 때, ‘과금할수록 경쟁에서 앞서는’ BM을 예상하게 만드는 형태다. 다만 이번 베타 테스트에는 실제 BM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백금 주화'의 획득 방식은 실제로는 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판단하기엔 이른 상태다.
장비보험권 없는 플레이는 불리함이 크다.
물론 크래프톤은 이 지점에서 쉽게 예상되는 과열 양상을 완충할 나름의 방안을 마련해 두기는 했다. 바로 던전 난이도 시스템이다. 유저들은 자기 캐릭터의 ‘장비 점수’에 따라 입장할 수 있는 던전 지역이 나뉜다. 성장이 더딘 유저라 하더라도 자신과 지나치게 격차가 큰 유저와 조우할 가능성은 작으며, 따라서 자신의 템포대로 성장을 지속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 익스트랙션 장르의 특수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장비 점수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타 장르와 달리, <다크앤다커 모바일>에서는 고급 장비를 문자 그대로 잃을 수 있는 만큼, 장비점수 하락을 겪는 유저도 충분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유저들은 이전의 장비 수준으로 복귀하고 싶은 욕구와 함께 강력한 과금 동기를 부여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출시 시점의 BM은 어떻게 최종 결정될 것인지, 실제 유저들의 행동 양상이 예상과 같을지 주목해 볼 일이다.
던전 난이도 구분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