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가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2014 전시장 ‘엑스포’에서 스팀 컨트롤러의 두 번째 시제품을 공개했다. 최신 버전은 지난해 9월 공개되었던 첫 시제품과 달리, 터치스크린 대신 4개의 아날로그 버튼이 추가됐고 버튼의 구성도 좌우로 4개씩 마름모꼴이라는 기존 게임패드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새롭게 변화한 스팀 컨트롤러는 어떤 느낌일까? 직접 잡아보았다. /샌프란시스코(미국)=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마우스 유저여 오라! 적응하기 쉬운 트랙패드
스팀 컨트롤러를 잡으니 기기 양옆에 배치된 오목한 트랙패드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트랙패드는 다른 게임패드의 아날로그 스틱 역할을 대신하는 장치다. 기본적으로 패드 위에 손가락을 문지르는 터치 방식으로 구동되고, 트랙패드 자체가 미세하게 눌리는 식으로 유저에게 피드백을 전달한다.
트랙패드의 크기는 성인 남성 엄지손톱을 4개 정도 합친 정도였다. 터치 방식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기에 넓은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처럼 손가락이 패드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트랙패드는 스팀 컨트롤러의 다른 부위보다 움푹 들어간 형태다. 또한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패드 또한 조금씩 눌리기 때문에 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닌 한, 엄지 손가락이 패드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GDC 엑스포에서 공개된 스팀 컨트롤러의 두 번째 시제품.
다른 각도에서 찍은 스팀 컨트롤러의 모습. 기기의 앞부분에 2쌍, 바닥에 1쌍, 총 3쌍의 트리거가 있다.
직접 체험한 트랙패드는 아날로그 스틱과 터치패드를 결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아날로그 스틱은 스틱의 기울기를 통해 힘의 세기(예를 들면 조준점 속도 같은)를 결정한다. 아날로그 스틱의 감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는 이 때문에 게임패드로 정교한 조작을 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팀 컨트롤러는 힘의 세기를 입력하는 과정을 (트랙패드 위) 손가락의 이동거리로 대신했다. 유저의 손가락이 마우스, 혹은 트랙패드가 노트북의 터치패드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덕분에 처음 스팀 컨트롤러를 만지는 상황이었지만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다.
체험을 시작하고 스팀 컨트롤러 트랙패드에 익숙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분, 아직까지도 아날로그 스틱을 꺼려하는 입장에서 (적어도 본인은) 놀랄 만한 적응 속도였다. 아날로그 스틱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빨리 익숙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같이 스팀 컨트롤러를 체험하는 외국 기자 중에서는 트랙패드에 손가락을 얹자마자 신들린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민감한 반응성은 처음 기기를 접하는 사람에겐 적지 않은 당혹감을 선사했다. 마우스나 노트북 터치패드의 넓은(?) 이동 범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 스팀 컨트롤러의 민감한 반응성은 처음엔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두 개의 트랙패드(캐릭터 이동과 시야 이동)를 써야 했던 <포탈2>의 체험은 신경 써야 할 곳도 2배로 늘어서인지 체험 내내 조작실수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추후 기본 옵션을 조정함으로써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패드식 구성으로 접근성을 높였다
스팀 컨트롤러 가운데에는 11개의 버튼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가운데 위쪽에는 ‘스팀 홈 버튼’(가칭)을 포함한 3개의 시스템 버튼이 자리 잡고 있고, 가운데 아래쪽에는 양옆으로 각각 4개의 버튼이 마름모꼴로 배치되어 있다. 트랙패드에 얹은 엄지 손가락을 약간 내리면 닿을 위치였다. 8개의 버튼은 Xbox360의 D-패드처럼 왼쪽은 화살표, 오른쪽은 A·B·X·Y의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본래 스팀 컨트롤러의 첫 시제품은 8개의 버튼 대신 1개의 터치스크린과 4개의 버튼으로 구성돼 있었다. 버튼의 배치 또한 스팀 컨트롤러 가운데를 터치스크린이 차지하고, 그 주위를 A·B·X·Y 4개의 버튼이 감싸는 식이었다.
지난해 9월 공개된 스팀 컨트롤러의 첫 시제품. 두 번째 시제품과 달리 조작 버튼이 4개고 양옆으로 흩어져 있다.
밸브 관계자는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접근성’으로 요약했다. 기존의 스팀 컨트롤러는 다른 게임패드와 버튼 구성이 달라 테스터들의 불만이 많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조작 면에서도 버튼의 수가 적어 복수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였다.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최신 버전의 버튼 구성은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시험 삼아 스팀 컨트롤러 첫 시제품 버튼 구성처럼 손가락을 놀려보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불편했다. 움직임이 많은 게임(=트랙패드를 다 사용해야 하는)을 할 때는 더욱 심했다. 밸브의 방향 전환이 감사할 정도였다.
다만 스팀 컨트롤러 안쪽으로 몰린 버튼 구성은 어떤 게임을 주로 즐기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였다. 주로 기기 오른쪽 끝에 A·B·X·Y 버튼을 배치한 다른 게임패드와 달리, 스팀 컨트롤러는 주요 버튼이 모두 기기 안쪽에 몰려 있다. 이렇다 보니 게임을 조작할 때 의외의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포탈2>와 같이 트랙패드 2개를 모두 사용하는(혹은 트리거 버튼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는) 게임을 할 때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스트라이더 비룡> 같이 트랙패드를 하나만 이용하는 게임의 경우,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A·B·X·Y 버튼을 누르는 엄지 손가락에 피로가 쌓였다. 기기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려고 조금이나마 힘을 더 준 것이 문제로 생각되었다. 물론 이것은 옵션 기능을 통해 키 배열을 조정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기존 게임패드에 익숙한 이들이 이러한 불편함을 굳이 감수할지는 의문이다.
스팀 컨트롤러의 옵션 기능. 기기의 버튼은 물론, 트랙패드에도 키보드 버튼을 대응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