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는 일개 시민,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솔직히 말해서 <문명 온라인>의 첫인상은 막막했습니다. 원작은 플레이어가 지도자로서 게임에 참여해 자신의 문명에 한해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문명 온라인>의 플레이어는 일개 시민에 불과해 게임 방식이 예측되지 않았으니까요.
한낮: 누군가의 일꾼으로만 살다 끝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던 사람도 있던데…. 말 안 들으면 되잖아. 난 중국 유저였는데 어떤 길드가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일을 시키니까 사람들이 들은 척도 안 하더라.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한 길드는 도움을 받아 전쟁도 하고 도시도 짓고 그랬지만.다미롱: 저도 중국이었는데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길드가 나타나자 전부 다 “얘들 뭐지”라는 반응을 보이던데요. 어차피 도시는 1인 길드라도 건설할 수 있고, 일손이 필요하면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됐으니까요.아퀼: 오히려 “공격력 얼마 이하인 사람과는 함께 전투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게임보다는 <문명 온라인>이 더 나았어요. 자기 마음대로 돕고 싶은 도시로 가서 건설 지원하고 도시 공방전에 참여하면 되잖아요.한낮: 그리고 일개 시민이라도 국가의 흥망성쇠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 극단적인 예지만 1 세션은 이집트가 수레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있잖아. 그때 이집트는 ‘점령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영토를 확장해야만 했어.그러려면 적국 도시 시청을 부수고 자기 문명의 시청을 지어서 도시 소유권을 빼앗아야 했고. 하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지.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건축자재를 실은 수레 한 대가 길을 잃은 바람에 공사를 하지 못했다 하던데?아퀼: 일정 시간 동안 시청을 짓지 않으면 빼앗은 도시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았다면 그런 일화가 생기지 않았겠죠. 그래서 2차 세션부터는 점령한 도시에 시청 건설터만 박아놓고 다른 데를 공격하는 전략이 나왔어요.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어디가 일손을 필요로 하는지 잘 파악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일개 시민으로도 문명의 승리를 주도할 수 있는 듯해요.
온라인으로 구현된 ‘원 모어 턴’? <문명>의 느낌을 잘 살렸다
다미롱: <문명> 시리즈를 할 때 ‘원 모어 턴’을 외치며 계속 몰입해서 플레이하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명령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궁금하니 눈을 뗄 수 없어서 그랬죠.재미있는 점은 <문명 온라인>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구현돼 있다는 점이죠. 도시를 두고 싸우는 공방전 시간 도시를 발전시키는 휴전 시간이 돌아가며 주어지잖아요? 1차 CBT 때는 게임 템포가 빨라서 1시간에 한 번씩 공방전 시간과 휴전 시간이 금방 달라졌고요.덕분인지 휴전 시간 동안 연구한 전술과 직업이 효과를 발휘할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어서 공방전이 왔으면 좋겠다”며 접속을 유지했어요. MMORPG로 재해석된 ‘원 모어 턴’ 같아 반가운 기분이 들었고요.한낮: 난 원작보다 <문명 온라인>의 자유도가 더 높아 보였어. <문명>은 내 국가가 망할 위기에 처하면 살려낼 궁리를 할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문명 온라인>에서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해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잖아. 얄팍한 발상이긴 하지만.아퀼: 실제로 이집트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본진을 놔두고 신대륙을 개척한 유저도 많았죠. 결과적으로는 본진을 지킬 사람이 부족해지고 이집트가 망해버리는 상황을 초래했지만…그래도 누구 하나 다 빠짐없이 국경을 지켜야 하고 다른 행동은 일절 할 수 없는 편보다는 재미있다 봐요. 그리고 차후에는 신대륙 개척 같은 엉뚱한 행동이 국가에 이득을 가져올지 누가 알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할 일을 맡기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자유도도 존재합니다.
전투가 아닌 전쟁을 제대로 구현한 PvP
<문명>의 재미를 나름대로 해석했다는 점도 눈에 띄었지만, <문명 온라인> 자체가 가져다주는 재미도 상당했습니다. 사람들끼리 협력해서 작은 도시를 크게 키워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전투가 아닌 전쟁 규모의 싸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각별했습니다.
다미롱: 시대는 고작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뿐인데 별 전략이 나오던데요? 한 번은 로마군이 중국 도시를 점령하려고 병력을 가득 실은 비행선단을 끌고 왔어요. 그리고 취약한 성문에 상륙해 단번에 함락시켰어요.한낮: 첩보전도 가능하긴 하더라. 일반 채팅은 다른 문명 유저도 볼 수 있잖아. 그래서 어떤 중국 유저가 로마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던 중 “난징을 공격하자”는 로마 문명의 전략을 엿들은 거야. 대다수의 유저들이 그 유저의 말을 안 믿어서 결국 난징이 점령당했지만.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보급'을 중시하는 전략과 보급을 포기하고 전격전에 나서는 전략을 두루 쓸 수 있다는 것이었어. 중국은 성을 공략할 때마다 근처에 병영을 지어서 리스폰 지점을 만들어두고 싸웠거든. 언제든 병력을 보급할 수 있게 말이야.근데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 탈것이 좋아지니, 전략을 "병영 지을 시간 동안 돌격해서 성을 빼앗자"는 방향으로 바꿨어. 그래서 3분에 하나씩 도시를 파괴하고, 마지막 성은 2분 만에 점령했지.중국 문명 유저들이 병영과 감시탑을 건설해 병력 보급 거점을 확보하는 모습.아퀼: 전 로마 문명의 후방 도시를 털다가 ‘수중도시’ 를 발견했어요. 시청을 바닷가 근처에 지은 탓인지, 동쪽 성문을 제외한 나머지 성문이 전부 바닷물 속에 잠겨 있었거든요. 적군이 쳐들어오면 동쪽 성문만 막을 수 있도록 건설한 것이죠.뭐… 성문 옆에 있는 큼지막한 바위를 밟고 넘어가서 함락시켰지만요. 그 바위 아니었으면 어떻게 공략했을지 제법 고민했을 듯해요. 개인적으로는 온라인 게임에서 본 축성 전략 중 가장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골치 아픈 전략이었다 생각합니다.한낮: 사실 하나 하나 떼서 보면 엄청 대단한 전투는 아니야. 아주 건조하게 보면 공성병기가 등장하는 MMORPG라고만 할 수 있어. 하지만 건설과 같은 변수들이 생기니까 아주 재미있어지더라. 공략하기 까다롭겠다 싶은 도시가 있으면 근처 도시나 병영부터 공격해서 적군의 지원부터 차단했다니까?다른 MMORPG는 성벽을 두고 싸우는 데에만 집중했는데, <문명 온라인>은 병영이란 보급 요소와 탈것 등의 변수를 넣어서 전쟁 느낌을 잘 살린 것 같아. 공성전 있는 온라인 게임들은 열심히 해봤는데, 이번 공성전 방식이 가장 신선했어.
세션제가 유저들의 협력을 이끌다?
한낮: 중국 유저들이 그런 일은 잘했지. 자기 돈으로 말을 엄청나게 산 뒤, 필드에 뿌려서 전쟁터로 가는 길을 표시한 거야. 우린 그걸 보고 ‘질주마 로드’라 불렀지. 그 질주마 로드 덕분에 놀고 있던 초보 유저들이 전쟁터에 합류해서 크게 활약했고. 그래서 3차 세션에서 꼴찌를 기록하던 중국이 막판에 이집트를 제쳤어.거래상을 통해 명품 무기를 1골드에 파는 유저도 나타나기도 했고. 난 그런 활동이 세션제 덕분에 나타난 것 같아. 돈과 레벨이 초기화되니 자연히 유저들이 물욕을 부리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잖아.다미롱: 전 세션이 끝나면 초기화된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저들이 한 세력에 애착을 가지고 플레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유저들이 세션마다 있었던 극적인 순간이나 안타까웠던 순간을 공유하며 소속감을 느끼던데요?중국 유저들은 그런 소속감이 강했어요. 1차 세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난징을 로마 문명에게 빼앗긴 다음, 서로 난징만큼은 어떻게 수비하자고 단결했어요. 그 목표를 위해 서로 협동해서 국경에 요새를 건설하는 활동도 나타났고요.아퀼: “어떻게든 난징을 먹자!”는 생각으로 단합한 로마 유저 때문에 난징이 거듭 함락당하긴 했지만. 세션제가 유저들의 단합을 방해하지 않고 물욕만 없앴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여.한낮: 각 직업 레벨을 10으로 고정해서 세션제가 더 긍정적으로 보인 것 같아. 1~2시간만 사냥하면 직업 레벨 10은 달성할 수 있잖아? 공방전에 참여해도 직업 레벨은 오르고. 덕분에 캐릭터 육성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한 세션 동안 하고 싶은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었지.
불친절한 시스템이 아쉬워, 플레이의 정형화도 우려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1차 CBT니 감수해야 할 점이 많지만, 게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퀘스트는 불만스러웠습니다. 이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짓는 과정 정도는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했는데, 건물 짓는 법만 살짝 알려주는 퀘스트밖에 없거든요.
개인적으로는 '1인 길드 설립으로 시청 건설 권한 획득 → 시청 건설로 도시 설립 → 채굴장, 집, 대장간 등의 시설을 지어 도시 레벨 업 → 감시탑 등 방어시설 건설 후 강화석으로 성능 업'이라는 기초적인 도시 설립 과정을 익히는 데에 2세션을 허비했습니다.
적어도 이 과정을 영상 가이드로 보여줬다면 더 빨리 도시를 짓고 하고 싶은 일을 했을 텐데 아쉬웠어요. 그 외에도 아쉬운 점은 더러 있었습니다. 각 디스이즈게임 기자들이 생각하는 아쉬운 점을 들어보시죠.
기초적인 도시 건설 요령을 가르쳐주는 요소가 있었다면 덜 고생하며 게임을 했을 텐데...
타겟팅이 정밀하지 않은 탓에, 아군 사이에 섞인 적을 공격하기 까다롭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낮: 타겟팅 게임인데 타깃 잡기가 쉽지 않잖아. 탭으로 지정하면 엄한 아군이 타깃으로 설정되고 이상해. 적을 때리려고 탭을 눌렀더니 옆에 있는 말에게 타깃이 잡히더라?
다미롱: 역할에 따라 보상이 달리 주어질 수 있다는 점도 아쉬웠어요. 전투원은 자연스럽게 공방전에서 건물을 부수는 역할을 하니 공방전 참전 보상을 확실히 받잖아요? 하지만 아이템 제작자나 건설가는 애매한 듯 해요. 두 직업은 전선에 나가 싸우지 않고 지원 역할만 할 수도 있잖아요.
아퀼: 제작자는 그나마 사정이 나아. 명품 무기를 만들어서 다른 유저들에게 나눠준 뒤에 같이 후방 도시를 공격하자 요청하면 전공을 크게 올릴 수 있으니까. 문제는 건설 담당이야.
수비용 건물 보수한다고 아예 싸우지를 못할 수 있는데, 건설 담당이 다른 직업보다 돈을 많이 쓰거든? 건축물을 지을 때마다 돈이 수천 골드씩 없어지니까.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직업이 공방전 보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어.
건축과 수리를 맡는 건설 담당 인력.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다른 직업보다 돈 벌기 힘듭니다.
다미롱: 유저의 실력에 맞지 않는 퀘스트가 나오는 점도 아쉬웠고. 초반에 산적 두목을 잡으라는 퀘스트가 주어지길래 도전했는데 너무 세서 못 잡는 거야. 그거 후반부에 나와야 할 퀘스트 같은데.
한낮: 난 르네상스 다빈치 탱크 4대 들고 가서 산적 두목을 공략했는데 실패했다. 야만족 주제에 도끼로 탱크를 부순다니까? 문명이 발달하는 동안 걔는 근육 밀도를 높이나 봐.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이, 새로운 세션이 거듭되도 내가 선택하는 직업이나 행동이 정형화되기 시작하면 어쩌지? 3차 세션까지 하니까 뭘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러면 처음 플레이할 때보다 신선한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아.
아퀼: 하긴 저도 걱정되긴 했어요. 저는 금 캐기 → 금 팔아서 초반 자원 확보하기 → 파티원이 제작한 명품 무기를 받고 공방전 참여하기를 반복했거든요. 물론 공방전에서 돈을 충분히 번 뒤에는 건설을 하든 전쟁을 계속하든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해봤지만, 초반 플레이가 정형화될 가능성은 있어봐요.
한낮: 나는 중세시대 때 창기병, 르네상스 시대 때 척탄병을 주로 골랐고. 필수적으로 키워야 하는 직업도 생길 것 같아. 척탄병은 말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 폭탄을 던져놓고 단번에 죽여버리더라?
다미롱: 아직은 1차 CBT고, 시대도 2개밖에 없어서 그런 듯 해요. 새로운 시대와 직업들이 추가될 때 다시 한 번 지켜봐야 할 듯 해요.
이 게임, 다음 테스트도 할까? 말까?
한낮: 오픈베타 서비스 전까지는 이 게임을 계속 해볼 생각이야.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살펴보고 싶어. 30대 넘어서 CBT에 깊게 몰입한 것도 오랜만이기도 하고.다미롱: 저도 집 PC로 실행할 수 없어서 사무실에 출근하면서까지 게임을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아퀼: 저도 계속 플레이하려고요. 저는 이집트 유저였는데, 우리 문명이 3차 세션에서 크게 져서 남극 대륙까지 밀려났거든요. 우리야 “남극 대륙 개척했다”며 위안으로 삼지만… 그래도 본국에서 활약해야 제맛이죠. 그럼 추후 문제를 개선한 모습으로 <문명 온라인>이 돌아오길 바라며 토크 리뷰를 마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