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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소프트웨어 RPG는 왜 재밌을까?

밍글플레이 시스템이 주는 무한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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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4랑해요) 2022-04-01 17:46:32
<엘든 링>이 출시 3주 만에 1,400만 장이라는 판매량을 넘어섰다. <다크 소울 3>이 두 달 동안 300만 장을 판매했고, 1,000만 장을 넘기기까지 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단 점을 고려하면 상상 이상의 대흥행이다. 이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 항상 따라붙었던 '대중성이 없다'는 꼬리표는 이제 떼어 줄 때가 되었지 않았나 싶다.

이토록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원년부터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을 즐겨 온 골수팬은 아니지만, 문득 <엘든 링>을 플레이하며 뇌리를 스친 한 가지 생각이 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RPG에서 항상 등장하는 '밍글 플레이'다. 정확히 정의된 용어는 아니지만,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가 혼재된 게임에 따라붙는 용어다.

사실 <데몬즈 소울>부터 내려온 이 밍글 플레이는 꽤 단순하다. 바닥에 메시지를 적을 수 있다. 메시지를 보면 남들이 이를 열람하고 추천하거나 비추천할 수 있다. 게임 플레이를 하다 보면 종종 실시간으로 같은 지역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타인이 신기루처럼 보였다가 사라진다. 외에도 바닥에 사인을 긋거나 아이템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의 게임에 들어가 진행을 돕거나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간단한 시스템이 주는 재미와 경험은 타 게임에서 참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고 신비롭다. 오로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생판 모르는 타인과의, 찰나의 인연

 

프롬 소프트웨어의 RPG에 등장하는 밍글 플레이 시스템은 어떻게 계획된 걸까? 이는 2016년 해외 매체 유로게이머가 진행한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는 자신이 겪었던 일에서 느낀 인간의 본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폭설이 내린 겨울,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가던 히데타카의 차는 언덕길 중간에서 멈췄고, 이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차도 미끄러운 빙판길을 올라가다 멈춰버린 상황. 언덕길을 넘기 위해선 모두가 힘을 모아 차를 언덕길 위로 밀어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앞선 차를 밀어 올리기 시작했고, 히데타카 디렉터의 차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 언덕길을 넘을 수 있었다. 허나,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차를 밀어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수 없었다. 인사를 하기 위해 차를 멈췄다면 다시 차가 미끄러질 수 있었다. 히데타카 디렉터는 언덕길을 넘어 돌아오는 길에서 줄 맨 뒤에 있던 마지막 사람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아마 다시 만나기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서로 친구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야자키 히데타카 (출처 : 프롬 소프트웨어)

프롬 소프트웨어의 RPG에 늘 등장하는 밍글플레이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기서 시작했다. 일시적으로 만나는 사람 간의 상호 협력이다. 히데타카 디렉터는 "이상하게도, 그 사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치 흩날리는 벚꽃처럼 덧없기에"라고 언급했다. 지속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기에 덧없지만, 봄에 잠시 피고 지는 벚꽃처럼 아름답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분에서 영감을 받아서인지, <소울> 시리즈에 등장하는 코옵은 상당히 짧게 이어진다. 보스전 앞에서 영체를 소환하고, 같이 보스전을 마무리하면 영체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메시지와 함께 사라진다. 덤덤히 사라지는 영체도 있고, 이따금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영체도 있다.

메시지와 혈흔 시스템은 더욱 흥미롭다. 바닥에 익명으로 메시지를 적고 공유하는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상당히 많은 기능을 한다.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해 주며, 커뮤니티 기능은 없는 게임이지만 사실상 다른 플레이어와 감상을 공유하는 기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함정 앞에는 항상 앞을 조심하라는 익명의 메시지가 있고, 게임을 진행하다 혈흔이 가득한 장소에 도착하면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주위를 살피게 된다. 어려운 구간에는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보스를 처치한 후의 화톳불 주위에는 "잘했다!"며 플레이어를 칭찬하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있다.



물론,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맵 구석에 마치 아이템이 있는 것처럼 메시지를 적어 놓는 사람도 있고, 올라가기 어려운 구간에 메시지를 적어 놔 무언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벽이나 절벽마다 앞에 숨겨진 길이 있다고 작성하는 등 일종의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화가 날 수도 있지만, 가끔은 남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노력하는 '불굴의 패치'같은 사람들을 보면 피식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걸 하나로 설명하는, <엘든 링> 최고 명짤 (출처 : 엘든 링 레딧)

세계관이나 설정을 보면 전혀 그렇 것 같지 않지만, 생각보다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게임이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작성된 메시지도 있는데, 아래 스크린샷은 그 중 하나다. 참 이런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일종의 썰렁한 개그라고 할 수 있지만 피식했던 기억이 난다.

 


 

# 스토리, 설정과 연계되어 남기는 여운

 

밍글 플레이에 대한 스토리 설정은 <다크 소울>에 등장하는 NPC '솔라'가 협력을 위한 아이템 '흰 납석'을 넘겨주며 하는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엘든 링>에서는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찾을 수 없었지만, 아마 비슷한 개념으로 기자는 파악하고 있다.

 

"여긴 정말 이상한 장소야. 시간의 흐름이 멈춰 있기 때문에 100년도 된 전설이 존재하는가 하면, 매우 불안정해 금새 사라져 버리지. 그대와 나도 언제까지 같은 시간에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이것(흰 납석)을 사용하면... 세계의 틈새를 넘어 협력할 수 있지. 상대의 영혼을 소환해 틈새를 넘을 수 있어." - 태양의 전사 솔라

 

정리하면, <다크 소울> 세계관에서는 시공간이 뒤틀려 있기에 일종의 평행 세계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여럿 존재하고, 멀티플레이 시스템은 이 세계를 오가며 서로 적대하거나 돕는 것이다.

 

태양의 기사 솔라

 

그리고 프롬 소프트웨어 RPG는 항상 쇠락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다른 게임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북적거리는 모습이 없다. 친절한 NPC가 잠시 등장하더라도, 대부분은 광기에 휩싸이는 결말을 맞이한다. 길을 가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대부분 무너진 유적 뿐이다. 친구와 계속해서 코옵을 하는 게 아니면 대부분은 홀로 세상을 헤쳐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 지독하리만큼 외로운 세상에도 독특한 밍글 플레이 덕분에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메시지를 통해 서로가 좌절감을 공유하기도 하고, 가끔씩 플레이어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환영이 보이기도 한다. 보스전을 진행할 때도,항상 옆에서 똑같이 고군분투하며 거대한 적과 맞서는 환영이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이 사람이 해당 트라이에서 보스를 격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플레이어는 드문드문 등장하는 환영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외로워야 하는 게임인데, 이상하게 외롭지 않다.

 

<엘든 링>에서 수많은 메시지와 낙사를 반복하는 환영을 보며, 가장 강한 유대감을 느낄수 있는 곳은 이 곳이 아닐까

화산관에는 30번 벽을 공격하면 등장하는 숨겨진 길이 있다
사진은 이를 시도하는 플레이어 옆에,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플레이어가 나타난 경우다. "야, 너도?" (출처 : 엘든 링 레딧)

메시지 시스템이 게임 진행에 은근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신이 적어 놓은 메시지가 호평을 받으면 체력이 회복된다. 보스전 와중 회복 아이템이 전부 떨어졌지만, 어딘가 적어놨던 메시지가 호평을 받아 체력이 회복되는 경우가 있다. 위기의 순간 어딘가 작성해 놨던 응원의 메시지에 주어진 호평으로 체력을 회복할 때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조금 궤가 다르지만 영체와 협력 시스템을 시스템을 훌륭하게 스토리로 연계해 낸 사례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다크 소울>의 NPC '솔라'다. 자신만의 태양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솔라는, 비극적이게도 종국에는 기나긴 여해우 속에서 자신의 태양을 찾지 못해 마음이 꺾이고 만다. 태양충이라는 몬스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미친 채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하지만, 복잡한 방법을 통해 솔라가 뒤집어쓰는 태양충을 미리 처치하면 비극을 예방할 수 있다. 미야자키 디렉터도 팟캐스트에서 공략이 없다면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플레이어 스스로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보상과 감동은 확실하다. 

솔라를 살리면 한동안 그를 찾아볼 수 없다. 솔라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는 최종 보스 직전이다. 꺾인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난관을 헤쳐나가기 시작한 솔라는 주인공보다 먼저 마지막 보스 앞에 도착했고, 소환 사인을 남겨 주인공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야자키 디렉터가 팟캐스트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주인공을 돕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 솔라는 주인공과 똑같이, 자신을 희생해 태초의 불을 타오르게 함으로써 세계를 다시 부흥시키게 된다.

 

(출처 : PISTOLPETE 유튜브)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보스전 앞에 있는 소환 사인 하나로 완성된다. 물론 미야자키 디렉터가 팟캐스트를 통해 언급하기도 했지만, <다크 소울>을 플레이하며 보스전 앞까지 다다른 플레이어라면 별도의 설명 없이 솔라의 소환 사인을 보고 단박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독특한 게임 시스템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던 스토리였다. 덕분에 지금까지 솔라는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NPC로 남아 있다.

즉, 프롬 소프트웨어 RPG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공통된 목표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오로지 플레이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란 점이다. 꼬여버린 시간대 속에서 앞서 나간 '빛바랜 자'도 있고, 플레이어 뒤에 위치한 빛바랜 자도 있다. 모든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이 밍글플레이 시스템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서로 웃고 울면서 은은하고 기묘한 유대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리며 엔딩까지 나아간다. 보스전 앞에서 소환 사인을 그어 남을 돕는다면, 그 순간 당신이 또 다른 솔라다.

그 어떤 게임보다 외롭고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플레이어 간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임이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살고자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이 얻은 감상을 남에게 공유하거나, 서로 같은 감정을 느끼며 공감하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다. 유튜브에 산재해 있는 리액션 비디오나, 영화나 예능의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영상에서 직접 해당 구간에 대한 베스트 댓글을 보여주는 동영상 등이 좋은 예다.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도 반응 동영상은 인기리에 조회수를 높이고 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 부분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데몬즈 소울>부터 기본 틀은 전혀 바뀌지 않은 멀티플레이 시스템이지만, 늘 게임을 하며 이 시스템 덕분에 플레이어는 서로 묘한 동질감으로 엮여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이러한 연출이 자발적으로 등장하도록 플레이어에게 도구를 넘겨줘 게임을 하는 사람마다 경험하는 내용도 항상 다르다. 지금도 커뮤니티에서 등장하는 온갖 유머스러운 사진이 좋은 예다.

 

앞으로 프롬 소프트웨어가 어떤 게임을 개발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소울 스타일의 게임을 다시 한 번 내놓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플레이할 것 같다. 이 특유의 시스템이 주는 재미는 다른 게임에선 느끼기 어렵다. 지금까지 기자가 경험한 바로는 오로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다.

 

그러니까 2회차좀 하게 <블러드본> PC 이식좀 빨리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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