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그라비티 1층의 깔끔한 로비와 깜찍한 캐릭터샵! 안 그래도 들뜬 바카와 냥쓰의 마음을 더욱 방정맞게 했다. 그때 언뜻 ‘그 분’으로 추정되는 뒷모습 깔끔한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고, 그제서야 우리가 막중한 임무를 끼고 왔음을 깨닫고 다시 긴장 모드로~.
그러나 흡사 가수 겸 연기자인 비의 눈을 가진(-_-;;) 정준호 님의 첫인상은 20대의 젊고 멀쩡한(?) 두 여인네의 인터뷰를 흥겨웁게 하기 충분한 옵션사항이 아닐 수 없다.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헤헷 ^^
인사만 오가는 뻘쭘한 분위기. 우리 대장님 시몬의 도움으로 부자연스러운 농담을 주고받길 몇차례. 슬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하나씩 준비해온 질문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디스이즈게임
TIG> 게임 일러스트, 멋진 일 아닌가요?
제가 그림 데뷔한 이후 게임업계에 이름을 알리는데 딱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멋있어 보이지만 작업 자체는 굉장히 지루함의 연속이거든요. 작업해서 보여주고, 또 고치고, 또 다시 하고…. 이런 잡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요.
(냥) 저도 매번 학교 과제에서 퇴짜 먹고 다시 하고…. 그 맘 알 것 같아요. ㅜㅜ
TIG> 헉! 10년이나…. 그것 말고 힘들었던 것 없나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멋지게 일러스트만 그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거 말고도 컨셉 작업부터 디자인하기도 해요. 그럴 때는 3D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자신의 디자인이 어떻게 마지막 아웃소스로 연결될지 알아야 하니까요.
처음에 <리니지 2>를 작업할 때 5명이서 시작했어요. 그때 저는 디자인 파트였는데 디자인을 해서 3D 담당한테 보여주면 ‘이건 이래서 구현이 안된다’ 혹은 ‘이 디자인을 로우 폴리곤으로 만들면 안 예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저는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3D 쪽엔 아는 지식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때부터 3D도 같이 공부하게 됐죠. 회의 때 제 의견을 더 확실히 얘기할 수 있게 됐구요. 그러니까, 게임제작을 얼마나 이해하느냐, 이게 중요해요. 자기 그림이 3D로 제작되는 과정을 이해해야만 하죠.
TIG> 정준호 님이 생각하는 게임 일러스트는 어떤 건가요?
철저히 대중을 위한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을 ‘무슨 예술이다’ 혹은 ‘작가의 이러한 생각을 담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전 상업미술을 하는 거죠. 제가 만드는 캐릭터들도 상업적 코드들의 조합이구요. 대중의 정서를 미리 계산한 모든 코드화된 색이나 형태, 아이템들이 캐릭터에 반영된 거예요.
TIG> 그런 상업적 목적이 아닌 순수 작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저는 그래도 그림 그리는 사람인 걸요. 어떻게 그런 욕심이 없겠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하고 싶죠.
TIG> 직업으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나서 어떤 점이 크게 달라졌어요?
그런 거 있자나요. 그냥 연습장에 좋아하는 작가 그림 생각하면서 그리고, ‘느낌이 비슷하다!’, ‘마음에 들어!’ 막 이러면서 혼자 좋아하고 만족하고….
(냥) 하하; 저도 지금 계속 그러고 있어요. (웃음)
그런 때가 좋았던 거 같아요. 데뷔 이후로는 그게 안돼요. 그저 순수하게 자기만족 이게 좋은 거 같은데. 데뷔 후엔 매체에 내 그림이 어떻게 비쳐질까 하는 부담감이 생기죠.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하면서 혼자 부담도 느끼고.
아, 또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게 기가 쇠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TIG> 기가 쇠하다니요?
음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침을 놓을 때 혼이 빠진다고. 그래서 아래 후임한테 침 놓으라고 시키고. 그림도 같아요. 창조한다는 게 혼이 빠지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조금은 힘들어져요. ㅜㅜ
TIG> 엔씨에서 그라비티로 옮기셨는데, 지금 하시는 일은 뭐에요?
요즘은 그림일 대신 게임 제작 진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을 주로 해요. 국내 게임업계는 아직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어요. 회사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한다 쳐요. 두 프로젝트 모두에 하늘, 바다 같은 이미지 소스는 공통적이잖아요. 이걸 매번 프로젝트마다 만들면 인력 손실인데 그렇게들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미야자키 하야오 아시죠? 지브리 스튜디오. 여기서는 하늘이라는 이미지 소스를 모두 공유해요. ‘뱅킹 시스템’ 이라고 하죠. 그럼 그만큼의 인력이나 예산손실을 줄일 수 있죠.
현재 그라비티에서 비쥬얼 리소스를 전담하고, 작업방식과 업무시스템에 대한 조율을 하죠. 효율적이고 병렬적인 개발, 즉 이쪽 파트와 저쪽 파트의 인력을 분배해서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어요.
TIG> 그렇다면 그림 그리는 일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진 않아요,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도 일러스트이고, 저는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릴 거예요. 뭐 그렇다고 제가 이 파트에서 ‘이 디자인 별로야’ 하면서 제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죠. 인력이 부족할 경우엔 제가 그릴 수도 있겠죠.
요즘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게 약간은 초조하기도 해요. 하지만 병렬적 개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후배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해요. 여기 게임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냥쓰 같은. ^^
TIG> 아, 스타이리아의 UI를 디자인하셨다고 들었어요.
현재 손노리의 스타이리아의 작업도 하고 있어요. 아트 컨셉, 스테이지 등을 디자인했어요. 아직 아니지만 향후 캐릭터 디자인도 지원할 예정이에요.
TIG> 일본 측과 작업 중이라는 얘기를 들리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화보집을 준비중이에요. 그리고 일본 콘솔게임업체와 새로운 작업도 할 예정이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 게요.
(바&냥) 화보집 사면 친필 싸인 꼭 부탁드려요!!
팔아만 주신다면요. ^^;
TIG> 그림 작업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작업은 무언가요?
아무래도 캐릭터죠. 사람 이미지는 코가 1mm 높고 낮고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져요. 아주 작은 차이가 캐릭터의 매력 여부를 결정짓죠. 이건 또 대중의 호감으로도 연결되잖아요.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캐릭터와 교감을 느껴요. 감성적인 부분이죠. 유저들은 캐릭터를 자기 스크린 세이버나 바탕화면에 놓고 동일시하잖아요. 게임 내의 또 다른 나인만큼 이 부분을 제일 신경써야 해요. 다른 소품이나 배경과는 차원이 달라요. 사람은 생명체에게 더 많은 매력을 느끼잖아요.
TIG> 그렇게 만든 캐릭터 중 가장 힘들었던 게 어떤 거였어요?
여자 드워프였어요. 원래 ‘드워프‘ 하면 수염 있는 이미지여서 전 드워프는 여자캐릭터를 빼자고 말했었죠. 그랬더니 모든 종족에 남/녀 캐릭터 세트가 기본이라고, 절대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본 미소녀 느낌으로 가자’고 했더니 삼류 느낌 난다구 반대를 많이 하더라구요. 그래도 제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켰구, 결과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게 나왔어요.
TIG> 작업하다가 슬럼프에 빠지실 때도 있을 텐데요?
이런 이야기 하면 좀 건방져 보이려나? 저는 슬럼프가 없어요. 그림이 잘 안된다면 그냥 클럽에 가서 술 마시면서 즐기고, 그러다 보면 다시 그냥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죠. 그러면 또 그림도 잘되고….
TIG> 클럽 다니셨다면 춤 좀 추셨겠는데요? ^^
아, 실은 제가 박미경 씨 뒤에서 춤을 췄었어요. <이브의경고> 아세요?
TIG> <이브의 경고>요? 오늘도 난 너를 피해~ (바카는 손동작까지 취하고 있다.)
네. 그 뒤에서 백댄서를 좀 했었어요. (약간 쑥스러워하며) 뭐 전문적으로 한 건 아니구요. 대학교 다닐 때 돈도 없고, 아는 선배가 3만원씩 준다고 해서 춤추고. 그런데 돈은 못 받고, 술 한잔에 고기 먹는 식이었죠.
TIG> 예쁜 캐릭터들만 그리다 보면 준호 님도 눈이 꽤 높을 것 같아요. 실재로는 어때요?
아까도 말했듯이,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니까 모두 예쁘고 섹시한 캐릭터들을 그리는 거죠. 실재로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죠. 그래도 뭐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게 눈은 높아요. 한마디로 밝히죠. (웃음)
(바카는 종이에 '밝힘'이라고 적고 있다.)
(냥) 이대로 나갈 겁니다!!!
괜찮아요. 그대로 적어도^^;
(냥) 오!! 충격고백! 정준호 여자 밝힘으로 기사 내보낼까? ^^;
TIG> 게임은 즐겨 하시나요??
음 게임할 시간은 많이 없지만, 대전게임 좋아해요. <철권>이나 <버츄얼 파이터> 같은….
(바) 오, 저랑 언제 한번 붙어..
(냥) 난 바로 죽는데 쿨럭-_-; 저주받은 컨트롤. ; 아 또 다른 게임은 안하세요?
드럼게임도 좋아해요. 오락실 드럼게임. 그리고 <여신전생>이나 <젤다> 시리즈도 아주 좋아하죠.
TIG> 어, 그러면 온라인게임 일러스트레이터면서 온라인게임은 안 하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온라인게임은 확 빠지게 될까봐 안하게 되더라구요. <스타크래프트> 같은 경우를 보면, 친구랑 밥내기, 술내기 하면서 3판 정도 정해놓고 할 수가 있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뭐 <카트> 같은 경우도 그렇구요.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까지 요구하는 한국형 MMORPG를 좋아하진 않아요.
그리고 개발자 입장에서도, 제작기간 2년, 제작비 몇 억 하면서 나오는 블럭버스터형 MMORPG들, 이것들이 앞으로는 어떻게 되겠어요? 시스템 사양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지금보다 더 높은 퀄리티의 게임도 돌아갈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제작기간 1년, 2년 이런 걸론 택도 없다는 거예요. 5년 걸려서 진짜 대작을 만드려고 하겠죠. 그러면 온라인게임 두 개만 만들면 10년이라는 세월이 훗훗.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할 순 없잖아요. 게임 2개 만들고서….
TIG> 게임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인 냥쓰같은 학생들에게 조언 좀 부탁드려요.
‘게임 일을 한다!’ 이러면 멋있어 보이지만, 작업 자체는 굉장히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에요. 또 혼자 하는 건 없어요. 팀웍이 정말 중요해요. 이걸 먼저 알고 와야 할 거예요.
그리고 자기미학을 가질 수 있도록 꾸준하게 자기 투자를 해야겠죠. 내면적인 투자를요.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다, 이래서 남들이 보기에 달라지는 건 없겠죠. 하지만 본인에게는 하나하나 쌓는 것이라고 봐요.
또 그림을 그릴 때, 한장 그리고 다음 한장 그리면서, ‘아, 왜 실력이 안 늘지’ 하면서, 더 나아지는 결과물을 바로 보기 원하죠. 무슨 스노우보드 타는 것처럼 생각 하나봐요. 딱 가서 한번 타고 좀 구르면 다음엔 바로 나아지고, 그리고 바로 중급자 코스 타고 쭉 내려올 수 있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거 같아요. 그림은 절대 그렇지 않죠.
(바) 저는 하루 종일 굴러도 안 되던데요.-_-;;; (지금은 안 굴러요 ㅋㅋㅋ)
저도 그렇긴 해요. ^^;
TIG> 대학 공부 포기하고 바로 회사에 취직하려는 냥쓰같은 학생들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에 제가 공부를 못하고, 집안 환경이 안돼 대학을 못 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일부터 시작하려는 건 권하고 싶지 않아요. 대학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정말 많죠. 전공이나 교양 과목 같은 것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이건 자기투자죠. 뭐 학교를 안 다니고 이런 것들을 다 할 수 있다면 상관 없지만요. 참고로 저는 영어 회화를 못하는 걸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답니다. T^T 그것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 적도 많고요.
TIG> 그렇다면 게임 일러스트를 하는데 어떤 학과가 좋을까요?
역시 그림을 잘 그려야죠. 시각디자인, 회화 이런 게 도움이 되겠죠. 두 분 모두 시각디자인 전공이랬죠? 디자인도 게임일러스트처럼 상업적인 코드들의 조합이죠. 그래서 디자인 공부가 참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TIG> 벌써
디스이즈게임 잘 보고 있어요. 격려 많이 해주세요. 저에게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리구요. ^^ 좋은 그림으로 찾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