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디어가 큰 자본에 승리할 것입니다!"
닌텐도의 이와타 사장이 한 이야기다. 사실 닌텐도 정도 되는 기업이 자본에 관해서 한수 접고 들어가는 발언을 한 배경에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라는 공룡기업들이 닌텐도의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굳이 세가나, NEC가 경쟁상대였던 과거에도 닌텐도의 철학은 한결 같았다.
닌텐도DS가 발표되었을 때도 많은 게임전문가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PSP를 견제해서 서둘러 만든 것이 아니냐?", "PSP의 스펙에 대항하여 NDS 스펙으로 경쟁이 되겠느냐?", "DS의 하드웨어 자체는 신선하나 활용도 높은 소프트가 얼마나 나오겠느냐?" 하는 문제였다. 물론 본인조차도 저 의견들(특히 소프트 활용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이 ‘블루오션 전략’은 비즈니스적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천천히 판매량을 쌓아올리던 DS는 2005년 연말 ‘센세이션’이라 불릴 만큼의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하며 1년 판매량 400만대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이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터치! 제네레이션 시리즈’라고 불리는 소프트웨어 상품들이다.
터치! 제네레이션 시리즈인 <어른을 위한 DS 트레이닝> <유연한 머리학원> <닌텐독스> 등의 타이틀은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DS의 지속적인 판매를 이끌었다. 단순히 100만개 이상 판매라는 누적수치적인 의미를 넘어서 이 소프트들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없었던 판매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른을 위한 DS 뇌 트레이닝>의 경우 5월에 발매되어 첫주 판매량이 불과 4만 2,000장 수준이어서 밀리언셀러는 기대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미 게임소프트웨어가 일반적으로 한달 이상 가기가 힘들다는 기존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첫주 판매량은 전체 판매량의 40~60%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5월 첫주 판매량 4만 2,000장을 기록한 이 타이틀은 2006년 12월까지 판매랭킹 10위권 내를 떠나지 않으며 현재(1월 19일)까지 132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엽기적인 판매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닌텐도 게임이 가지고 있는 저력은 게임판매량 그래프에서 나타나는 ‘스테디셀러’라는 부분에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의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기적이라 얘기하기엔 닌텐도에게는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NDS를 처음 발매할 때부터 닌텐도의 입장은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유저층을 만들어 보이겠다”라고 했고 그것은 NDS라는 하드웨어와 아이디어가 넘치는 소프트웨어로 현실이 돼버렸다.
Wi-Fi 서비스 대응 타이틀인 <동물의 숲>이나 <마리오카트>도 이미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터치! 제네레이션 시리즈를 이어 연말시장에 탄력을 준 것도 Wi-Fi 서비스 대응타이틀 덕분이다. 하나씩 닌텐도의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최고의 관심사인 X박스360과 PS3의 첨단기술산업 혈전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한 ‘레볼루션’을 가볍게 생각할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서 ‘큰 아이디어’가 ‘큰 자본’에 정말로 승리하는 광경을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큰 자본’이 대마왕이고 ‘큰 아이디어’가 용사는 아니다. <헤일로>나 <GTA> <파이날 판타지>에 아직도 열광하고 있는 내게는 더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큰 아이디어’로 ‘큰 자본’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고 있는 닌텐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게임 라이프는 계속 더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콘솔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