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게 입사 환영 파티를 마치고 난 다음날.
그동안 너무 바빠서 미뤄놓았던 병원에 정기 검진을 위해 찾았다.
사실 생긴 것과는 다르게(...훗) 몸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라 꾸준히 정기 검진을 받고 있었다. 안 좋다고 해도 심장이 나쁘다거나, 폐가 나쁘다거나 하는 병약 미소녀의 필수 조건과는 거리가 멀고.. 생리적인 부분에 조금의 선천적인 문제가 있었다.
..확실히 시오리과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 =_=...
정반대의 이미지.. 헛헛헛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늙어서 성인병에 쉽게 노출될 확률이 높고 임신도 힘들다는 것.
늦게 시작한데다 중학교 때부터 희발성 월경이 심했고... 사실 너무 뜸하니까 어린 마음에 편하기는 무척 편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병원에 찾아가 내 문제를 확인하게 되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던 것이다.
아무튼 근 6개월간을 회사다 뭐다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검진을 못 받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검사대에 누워 주치의 선생님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검사를 시작했던 순간.
의사 선생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셨다
"이게 뭐야;!"
너무나도 놀란 나는 선생님께 무슨 문제가 있냐고 되물었고 선생님은 좀더 모니터를 보시다가 빙글빙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애기가 뱃속에서 동동 떠다녀"
.
.
.
OH. MY GOD.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공포가 밀려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너 어떻게 그간 모를 수가 있냐. 애기가 많이 컸어. 22주쯤 된 것 같은데..5개월이네.."
이런. 지상 최악의. 둔녀 같으니라고.
그저 공포감만 잔뜩 밀려올 뿐이었다.
2월쯤에 또 심해져서 호르몬 주사를 맞았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되었나보다.
2006년은 내게 다사다난한 해였다. 힘들어도 이렇게 힘든 해가 없을 것이다.
순서대로 말하자면...
1. 2006년 2월 초. 졸업을 앞두고 이벤트 회사에 면접을 본 날. 2년간 피부암으로 투병하시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모님과도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였기에 정말 충격도 컸다.
2. 이벤트 회사에 약 2달간 다니다 무역회사로 옮기게 된다.
3. 무역회사에서 힘들어하다가, 정말 가고 싶었던 D사의 의류회사에 신입사원공채에 합격.
4.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시다 쓰러지신 할머니가 뒤이어 7월에 돌아가신다.
5. 할머니 장례가 끝난 다음날. 입사 환영파티를 마친 다음날. 병원에 가서 알게 된다.
6. 9월 2일 결혼
7. 12월 16일 출산 예정..
........뭐 이건 그야말로 엄청난 해가 아닐 수 없다.
소중한 두 분을 잃게 되고 회사 합격에 결혼에 출산까지.....
덕분에 부모님은 두번의 장례식에 한번의 결혼식. 그리고 출산까지... 큰 행사를 몇번이나 연거푸 치르게 되면서 손님들에게 죄송해 할 수밖에; (흑흑 죄송합니다. 부모님)
뭐... 이런 건 뒷얘기고...
아무튼 정말.. 그 때의 공포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정말 축하한다고 했지만. 나는 공포에 질려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몰랐다.
....그 때의 충격과 공포는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모든 게 절망스러웠고 해결 방도가 없어 보였다.
겨우겨우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고, 막 신입사원 환영행사가 진행되던 때였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부모님의 얼굴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엄마의 충격받은 모습과 아빠의 실망하는 모습이 내 머릿속을 교차하며 지나갔다.
칭찬 한번 안해주시던 무뚝뚝한 아빠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던 순간이었는데...
굉장히 두려웠다. 모든 걸 잃게 될 것 같았다. 간신히 이룩해 놓은 내 길도 막혀버린 것 같았다.
정말 철없게도 그 순간은. 이기적인 내게 아기는 둘째 문제였다.....
좀처럼 갖기 힘든 아기를 갖게 된 건데. 난 그저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기에게 너무너무너무 미안한 소리지만 지우고 싶었다.
겨우 트인 내 앞길을 막아서 버리는 기분이었다.
생각나는 건 Y군밖에 없었다. 절박했다. 엉엉 울면서 무작정 퇴근하고 보자구 했다.
내가 전하는 소식에 많이 놀란 듯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달래준 후 만나기로 했다.
지우자고 하는 철없는 나였지만 Y군은 일단 최대한 내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왕 결혼이야 결정된 사실이었고 아이도 원래 갖기 힘들었으니 다행인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인데 정말 들리질 않더라.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내내 혼자 있을 때 배를 감싸고 울기만 했다.
겨우겨우 친한 언니에게 털어놓고 난 후엔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긴 했지만... 또다시 혼자가 되면 미안해. 진짜 미안해라는 말만 되뇌이고... 아 정말 내 인생 최악의 암흑의 시절이었다.
겁많은 나는 똑바로 당당하게 나와 마주서질 못했던 것이다.
난 정말 그러한 상황에 아기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하는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Y군의 꾸준한 격려와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격려로 일주일동안 조금씩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부모님께 털어놓은 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친구들과의 여행 후.
정말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불같이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사실 그간 엄마는 내가 임신을 하지 못할까 봐 더 걱정을 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정말정말 축하한다고 말하는 엄마랑 붙잡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렇게 그 동안 내가 했을 마음 고생에 걱정하셨다.
...정말 세상 어디를 가도. 부모님과 같은 분은 없다...
새로 엄마라는 지위를 갖게 된 나는. 이제야 조금 엄마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엄마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나는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사진은 Angelbeat 님
지금 이 아이는 스스로 힘든 환경에서 일어섰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지켜냈다.
아기를 지키자고 결심한 순간. 기가막히게 타이밍이 모두 좋게 돌아간다.
내가 아이를 지웠다면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배에서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질 때마다 당시 겁에 질린 나약했던 나를 다시 돌아봐주게 한다.
그 때의 마음과 기분을 절대 나는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