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대체 어떻게 5개월동안 모를 수가 있냐고.
...모를 수도 있다....
세상엔 나같은 사람도 있단 말이다!!!!!!!!!!!
신체적으로도 잘 알 수 없는 체질이었고. 더구나 그 쪽으로는 아예 생각이 닿질 않았다.
알게 된 후 한동안은 <어쩐지...였구나>가 입버릇이 되었다.
모든 증상들이 임신을 뚜렷이 가리키는데 나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상 최대 둔녀. 곰탱이라 불리워도 좋다; 본투비 둔녀인 것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후에 알게 되면서 5개월동안 있었던 일들은 정말 호러였다.
쉽게 말하면. 아기가 엄청 힘들 일들만 골라서 한 것 같다; 이렇게 건강하게 버티고 있는 아기를 보면 그저 놀라울 뿐.. (아기는 5개월동안 내내 철인 삼종경기를 한 것...)
정말 대단한 아기가 아닐 수 없다.
1. 무시해버린 징후들.
흔히들 드라마에서 보면 임신의 징후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입덧이다.
나에게도 입덧. 있었다.
생각해보면 입덧이 있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소화불량>인 줄 알았다.=_=
그래서 꾸역꾸역 안 들어가는 점심식사를 먹어야만 했다.
당시 무역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먹는 점심이었고 나만 먹지 않으면 분위기상 좋지 않아서..; (사회생활 하게 되면 알게 된다 ㅠㅠ)
후에 생각해본 것인데...입덧은 정신적인 부분과도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막상 임신 사실을 알면서 입덧을 하게 되면 그 후로도 계속 입덧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음식을 잘 못 먹게 되는 것 같다.
또 정말 미치도록 라면이 땡겼다. 정말 왠만하면 먹을 것 가지고 난리치지 않는데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라면이 먹고싶은데 혼자 먹기 싫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반면 매일매일 몇잔씩은 마셔댔던 밀크티가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속이 거북해지며 도무지 받아지질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봤으면 연결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정말 둔녀다.
2. 다이어트=_=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강렬한 의구심이 생겼다.
많이 앉아있는 직종이긴 하지만. 그다지 먹는 양이 많이 늘지도 않았는데 나날히 이상하게 살이 붙으면서 조금씩 배가 나오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살까지 찌게 되니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스트레스와 다이어트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가 택한 건 운동=_=
일주일에 두세번은 꾸준히 하고 있던 운동의 강도를 2배로 늘렸다.
땀방울이 튀겨라 열심히 가무를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야근이 잦아지고 운동을 할 수 없게 되면 집에서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비책을 마련해야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줄넘기.
이 부분이 정말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나는 똥배가 나온다며 줄넘기 천번을 했다.............
Y군은 아직도 이 사실을 가지고 두고두고 놀리고 있다=_=
미안하다 아가야. 무지한 엄마를 용서해다오.
남들은 유산될까봐 유산되기 쉬운 2-3개월때는 뛰지도 않는다는데 나는 줄넘기를 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엄마가 방에 갑자기 들어와 옷 정리를 하셨다.
옷 정리를 하시던 중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용히 문을 닫더니 갑자기 걸어 잠그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물으셨다.
"혹시 너 임신했니?"
역시 세상의 어머니들의 눈길은 예리하다.
우리 엄마가 워낙 예리하고 예민하기도 한데.. 나도 그 부분은 닮아서 신경쓰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예리한 편..
그렇지만 불행히도 신경쓰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 나는 엄청나게 둔했다.
나는 놀라거나 반문하거나 신경쓰는 대신에 다른 대답을 택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ㅠ0ㅠ0ㅠ0ㅠ0ㅠ0ㅠ0ㅠ0ㅠ0
엄마 내가 아무리 살이 쪘다고 해도 임신이 뭐야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놀려대며 웃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친척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며 엄마를 놀렸다.
OTL 내 무덤을 내가 팠다......
그 후에 소식을 알게 된 친구들과 친척들에게서 쏟아지는 놀림이란...
우리 엄마가 웃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바보였다 ㅠㅠ
3. 할머니.
이건. 아직도 생각하면 조금 뭉클해지는 부분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는 할아버지 장례가 치뤄지는 같은 병원에서 누워계신 중이셨다. 할아버지의 병간호로 지쳐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이 악화된 탓이었다.
그래서 의식이 들기 전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할머니께 말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사경을 헤매셨고. 자꾸 왔다갔다 하는 당수치와 혈압으로 의식마저 불완전하셨다.
자꾸 헛 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셨다. 사람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셨는데 당신이 가장 예뻐하셨던 나와 동생은 알아보셨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를 보러 대구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내려갔다.
병실에 들어선 순간. 할머니는 나를 보고 갑자기 말씀하셨다.
"미리. 아기 데리고 왔네."
순간 우리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내가 아기 낳을때까지 돌아가시면 안된다고 몇번이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했던 게 기억나서.. 그것 때문에 할머니가 그리 말씀하시는 줄 알았다.
엄마는 작년말에 할머니에게 내가 병원 치료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기 때문에 그 일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어 그런 소리를 하신다고 생각하셨다.
아빠는 아직도 아기로 보이는구나.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다 서로 다른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그 때 바른 소리를 하셨었던 것 같다.
그때가 아기가 생긴 지 3주.
할머니 눈에는 무언가가 보이셨나보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기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기도하셨던 두 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그립다.
올해만 더 버티셨더라면 그렇게 바라시던 내 결혼도 아이도 보실 수 있으셨을텐데.
아직도 나는 두 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