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나이는 7살 차이가 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7살. 둘의 생일이 같기에 어떻게 피할 수 없이 딱 7년.
(생일이 같은 날짜입니다~)
우리의 나이차를 알게 되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아휴 도둑~"
"늑대에게 잡아먹혔네~"
훗. 천만의 말씀.
내가 잡아먹었다!!!!!!!!!!!!!!!!
끼얏호~
...는 다소 강한 표현이고. 먼저 좋아한 건 내 쪽이었다.
결국 먼저 고백하고 사귀자고 말하게 된 건 오빠지만.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지도;)
이렇게 되기까지 6개월의 기다림과 연애시뮬 게임으로 다져진 탄탄한 공략이 있었다구...
도저히 가망성이 없어보여 중간에 포기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만나게 된 건 2000년도 말 겨울.
수능을 마치고 오랫만에 나선 코스프레 행사장.
나는 코스프레어. 그는 코스프레 사진사이자 게임 개발자였다.
고3 생활동안 나는 엄마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수능을 보기 전까지는 만화책도, 게임도, 코스프레도 모두 접기로 한 것.
게임과 만화와 코스프레에 푹 빠져있던 고교시절. 나와 엄마는 정말 줄기차게 싸워댔다.
당시에는 나를 이해하려하지 않는 엄마가 무척 원망스러웠을 뿐이었는데...
어느날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나 역시 부모님을 이해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어 옳은 말에 귀를 막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건 내 쪽이 아닐까.. 하고.
세상에 자식 못되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빼고 없다.
도리어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깊이 사랑하고 있는 분들이 아닌가...
우리보다 세상에서 오래 사셨고 그만큼 경험도 많으신 분들... 자식의 미래가 보여 더 좋은 미래로 이끌고 싶으실텐데, 자기가 직접 해 주고 싶을 정도일텐데..
바라만 보는 입장이니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겠는가.
나는 지금 이렇게 속 편하게 투정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타다못해 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택한 건 이해와 양보, 그리고 대화라는 세가지 열쇠였다.
지금도 부모님과 갈등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당장 이 세가지 열쇠가 어렵더라도 꾸준히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꼭 열리리라고 나는 믿는다.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이 세가지 열쇠를 실천해야 한다.
부모님과 오랜 기간 대화하고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걸린 일이 아니다.
말하고 듣고 받아들이고 서로의 욕심을 조금씩 양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단 대학은 좋은 곳에 가야 나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내 미래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나는 동의했고, 부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어렵지만 이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셨다. 고 3에 들어서서 4월부터 시작했으니..대화에 오래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결국 의상과를 추천해주신 건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정말 생각보다 많은 것을 희생하신다.
이렇게 충분히 서로에 대해 대화를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다보면,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래서 고 3이 되고 난 후 3월부터는 부모님과의 약속대로 한동안 행사와 멀리 떨어져 지냈다.
그 약속의 기간이 끝나고! 해방감에 도취된 나는 오랫만의 코스프레에 무척 설레였다.
우악 진짜 옛날 사진; (부끄럽군..) Y군이 찍어줬던 사진.
당시의 코스프레는 모뎀으로 통신을 하고 각 통신사별로 코스프레어들이 각자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초기의 모습을 유지한 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받아들이던 때다.
우리 나라의 코스프레의 발달은 통신의 발달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이텔은 하코동, 나우누리는 나코동, 유니텔은 유코동, 천리안은 초코동이라고 불리며 각 동호회마다 활동이 활발했지만 어느 정도 각 동호회마다 벽이 있었다. 그 당시는 점차 퍼져나가던 인터넷을 통해 서서히 각 동호회의 벽이 무너지고 온라인 상의 교류가 늘어나던 때였다.
온라인을 통해 코스프레 인구도 막 늘어나려고 하던 때.
그 때. 그곳의 중심에 있는 웹사이트의 운영자가 바로 Y군이었다.
지금에야 게임 개발에 바빠 한동안 코스프레 사진을 찍지 못했고, 점차 코스프레와는 멀어진 Y군이지만, 그 때 당시는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Y군의 홈페이지 방명록에는 각 동호회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코스프레어들이나 사진사들이 모였고 개인의 홈페이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게임 개발자면서 케이블티비에도 출연하고 있었고, 당시에 귀했던 D30 유저로 보정을 팍팍! 가미한 알흠다운 사진들로 채워진 Y군의 홈페이지에는 찾는 이들이 정말 많았다.
또 방명록의 글마다 전콘 사진을 도입한 것도 Y군이 최초. 그냥 일반 사진 아이콘에 그친 게 아니라 길이나 흉을 써 놓은 사진 아이콘도 넣어서 글을 쓸 때마다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기분이 들어서 방문객들에게 재미를 준 것도 Y군이었다.
사진은 또 얼마나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보정하는지...
그 당시 Y군은 <감은 눈도 뜨게 하는 Y군>이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눈을 감고 찍은 코스프레어의 사진을 감쪽같이 눈을 뜬 사진으로 바꾸는 보정실력은 당시에 보정 사진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코스프레어들에게 대 환영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날렸던 Y군이었다.
집에서 통신을 못하게 해서, 만화부를 통해 활동하고 있어 당시 다른 코스프레어들은 잘 몰랐던 나지만, Y군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던 나였고. 이것 저것 잘 하는 재능 있는 그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어디까지나 '존경'이었을 뿐...
지금에까지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르세느님 사진
<이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