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전체가 이동한 것은, 올해 2회째 맞는 ‘란 글로벌 컨퍼런스’ 때문이었습니다. <란 온라인> 관련 아시아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여 안면도 트고, 각 나라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자는 취지의 행사였죠. 큰 게임회사에서 분기별로 각국 퍼블리싱 책임자들이 한데 모이는 컨퍼런스를 가끔 본 적은 있지만, 이런 구경은 처음이었습니다. 하나의 게임을 위해 5개 나라 관계자들이 거의 다 모이다니요. 거기에 개발사는 통째로 이동하고. 민커뮤니케이션 스물 여섯 명을 비롯해, 중국, 대만,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5개국 <란 온라인> 스태프 80여 명이 세부 플랜테이션 리조트에서 뭉쳤습니다.
만남
취지도 좋습니다. 가는 곳 멋집니다. 마음은 한껏 부풀었겠죠. 그런데 그렇게 부푼 마음은 막상 다른 나라 스태프 앞에 서면 쪼그라듭니다. 다들 그렇잖아요. 문법에는 강해도 회화는 약해지는 게요. 민커뮤니케이션 스태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해외 업무를 맡거나 출장 경험 있는 직원들은 낯익은 해외 스태프와 정겹게 인사를 나눴지만, 대부분은 이메일이나 메신저 너머로 매일 티격태격, 아옹다옹하던 상대를 마침내 눈 앞에서 보건만, 무척 과묵해졌습니다.
도착한 첫날 밤, 새벽까지 기다린 필리핀 스태프가 소라 목걸이를 걸어주며 환영의 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수줍은 한국 스태프는 대부분 ‘땡큐’ 한 마디. 이튿날 아침 식당에서 만난 각국 스태프와는 ‘하이’와 ‘굿 모닝’. 저도 뭐 별수 없었죠. ‘하이, 아임 프롬 코리아.’ ^^;;
배움
밤 늦게 도착한 터에, 아침부터 영어로 진행되는 프리젠테이션. 시몬은 많은 이들이 꾸벅꾸벅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제 예상은 틀렸습니다. 80 여명이 가득 찬 컨퍼런스룸은, 근래 보기 드문 초롱초롱한 눈빛들로 가득했으니까요.
컨퍼런스 첫날, 각국 대표들은 자기 회사와 그 나라 게임시장에 대한 설명, 그리고 <란 온라인>의 현황에 대한 개괄적인 프리젠테이션(발표)을 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큼직하게 그려진 도형들이 이해를 도왔죠. 수익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들어오고, 그와 관련된 업무를 줄곧 해왔던 민커뮤니케이션 직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었을 겁니다. 다른 나라 직원들은 타국의 시장상황이나 마케팅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골드스카이(대만)의 James Huang 대표는 “게임계에 이런 컨퍼런스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개발사와 퍼블리셔 간의 관계는 직원들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에 달려있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것만큼 좋은 게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어울림
학구열은 뜨거웠지만, 얼음은 녹지 않았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겸한 파티 자리가 마련됐죠. CEO끼리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일반 스태프는 여전히 머쓱머쓱. 이럴 때 필요한 게 무얼까요? 그렇죠. 바로 알코올~. ^^;;
까만 바다가 보이는 갈라파고스 비치. 처음부터 CEO들은 한 테이블에 앉았지만, 다른 스태프는 나라별로 끼리끼리 모여 앉았죠. 하지만 밥과 함께 술이 좀 들어가고, 공연이 펼쳐지자 사람들이 섞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얼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알코올은 영어에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수줍음도 없애주고, 혀도 풀려주고.
누군가 시작한 기차가 점점 길어지면서, 파티장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이곳 저곳 어울려 맥주병을 부딪쳤습니다. 너무 친해진 탓에 맥주를 뿌리고 다니는 한국 스태프도 등장했죠. 파티는 한밤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조트의 풀로 많은 이들이 뛰어들었으니까요. 이번엔 술 대신 풀 속의 물을 서로 끼얹었습니다. 풀 속에서 지르는 고함 속에 스스럼은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쑈~
다음날
아쉽게 저는 이튿날 컨퍼런스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 시티(베트남)로 날아가야 했으니까요. 그 탓에 저는 각 팀별 세부 컨퍼런스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전날 프리젠테이션의 개괄적인 내용보다 좀더 실무적인 논의가 팀별로 이루어졌을 텐데 말이죠. <란 온라인>이 성공을 거둔 자세한 비결은 아마 그 실무 논의에서 더 많이 담겨 있을 겁니다.
6개국 대표들이 TIG의 로고인 손가락 포즈를 취하고 있군요. ^^ 덕분에 필리핀과 태국 등의 게임 잡지에 이 포즈의 사진이 그대로 나갔습니다.
36시간의 짧은 동행이었고, 실무 논의를 놓쳤지만, 그보다 더 굵직한 <란 온라인>의 성공 비결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서먹서먹하게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를 다 같이 듣고, 배우고, 함께 어울려 마시고, 놀면서 돈독해진 그들의 관계를 찐하게 목격했으니까요.
<란 온라인> 컨퍼런스는 일부 담당자들만 신경 쓰는 해외 업무를 ‘회사 전체의 공감’으로 이끌어내는 것과, 사무적인 수준의 해외 관계를 ‘정(情)적인 관계’로 두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지난 해 후반 <란 온라인>을 필리핀 최고의 게임으로 키워놓은 Egames의 COO Steve Tsao는 “모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는 어떤 게임이냐보다 어떻게 서비스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많이 싸우면서도 이렇게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계속 최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커뮤니케이션 김병민 대표는 “외국의 환경이나 니즈에 대해 수십 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번 얼굴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 모든 직원들이 해외 시장을 자발적으로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매년 이런 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맑파람님에 의해 연재에서 이동되었습니다. (2008/02/18 11:2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