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미 철이 한참 지나 1년을 넘어 버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제가 작년 크리스마스를 조금 특이하게 보냈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주마다 한 번씩 헌혈을 하던 저는 (지금은 헌혈하는 곳이 집에서 멀어서 잘 안 합니다;;) 문득 옆에 있던 조혈모세포 기증 스티커를 보게 되었습니다.
석모도: 조혈모 세포가 뭔가요?
간호사: 뼈를 만드는 세포입니다. 다른 말로는 골수라고도 하죠.
석모도: 그렇구나. 저거 기증하는 거 무척 아프다면서요. 척추에 직접 주사기를 꽂는다고 하던대요.
간호사: 그건 옛날 방식이에요. 지금은 헌혈하듯 하면 됩니다.
석모도: 그러면 신청하는 건 어렵나요?
간호사: 아니요. 혈액형 검사하듯 피 한 방울이면 충분해요.
석모도: 요즘 백혈병 환자가 많다던대, 신청하면 기증할 확률은 높은가요?
간호사: 환자가 있어도 유전자가 맞아야 하는데요, 대략 200만 분의 1의 확률이에요. 기증을 신청해도 평생 안 할 수도 있어요.
쉽고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다는 말에 저는 무심한듯 시크하게 조혈모 세포 기증을 신청했습니다.
그후 까맣게 있고 지냈던 기증 신청이 2년 만에, 200만 분의 1의 확률을 깨고, 축 당첨!이 된 겁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는 병원에서 간호사 누님들과 보내는 축복을 받게 됐습니다.
기증은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했습니다.(사진을 못찍어서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병원이 언덕에 자리 잡은 덕분에 날도 추운데 오르락내리락 운동은 열심히 했네요.
여러분, 저게 다 제 핍니다~.
조혈모 세포 기증은 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바로 기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상대와 저의 유전자가 맞는지 확인하고 나서 기증자의 신체검사를 실시합니다.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심전도 검사하고, 의사선생님과 면담도 하고, 일주일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었는데 그보다 더 철저하게 검사하시더군요.
어느 날, 택배로 온 상자.
안에는 약이 든 주사가 한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조혈모 세포가 뼈 밖으로 나와 혈관에 흐르게 만드는 약입니다. 조혈모 세포 채취 3일 전부터 하루에 2대씩 맞야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몸의 밸런스를 흐트러트리는 약이기 때문에 맞은 지 2~3일이 지나니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몸이 약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조혈모 세포 채취일이 되서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긴장했는데, 사진도 약간 떨렸네요.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 트리를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긴 메리하지 않더군요.
생전 처음 써 보는 독방 병실의 위엄. 하지만 인터넷이 안 돼요. 3일 동안 TV만 봐야 해요. 망했어요. 들고간 노트북은 무겁기만한 플라스틱 덩어리였다는… OTL. 심심하지 말라고 과자와 빵을 사다주신 코디네이터님 감사합니다(사실은 약과 감기 때문에 3일 동안 거의 잠만 잤습니다).
이제 조혈모 세포 채취를 위해 무균실로 향합니다.
도착하니 아름다운 간호사 누님과 거대한 기계가 절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아름다운 간호사 누님의 얼굴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저만 알도록 하겠습니다.)
조혈모 세포 채취를 시작하면 한쪽을 피를 빼고 한쪽은 조혈모 세포를 걸러낸 피를 다시 몸에 주입하기 위해 팔목 양쪽에 큰 주사 바늘을 꽂습니다. 손등에도 영양제 바늘을 꽂았고요.
조혈모 세포 채취 방식은 기본적으로 성분헌혈과 비슷합니다. 다만 그 양이 워낙 소량이라 시간이 4시간 이상 걸린다는 게 다릅니다.
2시간쯤 지나니까 슬슬 허리가 배기면서 아파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소변이었습니다. 게다가 전 방광이 민감한지 화장실을 자주 가는 타입이라 더 큰 문제였죠.
허리가 아픈 건 둘째 치고 방광이 차오르는 고통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조혈모 세포 채취 기계를 잠시 중단하고 간호사 누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석모도: 저… 저기요.
간호사: 네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석모도: 그… 그건 아닌데요,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
간호사:…….
석모도: 어떻게 방법이 없나요?
간호사: (소변통을 들고오며) 그러시면 여기에라도 안 될까요?
석모도:…….
간호사:…….
석모도: 그러시면 잠시 나가 주시겠어요….
간호사: 네….
네, 이런 식으로 볼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보니 모든 걸 놓게 되더군요. 피가 빠져나가든 들어오든 별생각이 안 듭니다.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침대에서의 사투 끝에 조혈모 세포 채취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이후 제 세포는 전라도의 아름다운(이라고 추정되는) 20대 여성분에게 무사히 전달됐다고 들었습니다.
참고로 조혈모 세포는 밖에 나오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채취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식받을 환자에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제 경우는 다행히 채취된 세포의 수가 많았고, 별다른 거부반응이 없어 이식은 무사히 끝났다고 합니다. 앞으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기증 받으신 분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5시간 동안의 침대위 전투를 마친 후 처참해진 오른팔.
덤으로 이런 상장도 주시더군요. 민망하면서도 기분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