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에 열린 한국게임컨퍼런스(KGC)에서는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전시회인 ‘픽셀 온 캔버스(Pixel on Canvas)’가 열렸습니다.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전시회는 젊은 회화작가들이 모여 게임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30종을 선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매체간의 접목에 의의를 두고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재물로 제작해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픽셀 온 캔버스'의 행사 기획을 맡은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가 작품 설명을 맡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주
“Rescue", 장지 위에 분채, 27 x 22cm, 4ea, 2011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MMORPG를 즐기다 보면 거대한 공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넓은 지도는 마치 실제 세계처럼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실제로 하나의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의 거대한 공간은 무수히 조각난 지도(?)를 촘촘한 바느질로 이어 붙여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느질 기법 자체가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그 이음새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초창기 게임을 살펴보면 바느질 실력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이어붙일 지도 자체가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게임은 극히 제한된 공간만을 제공했다. <팩맨> 같은 게임이 대표적일 것이다. 간혹 <디펜더>처럼 화면 스크롤 기술이 도입되기도 했지만 공간이 좀 더 확장될 뿐,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장소가 다양해진 것은 아니었다.
화면 스크롤이 가능한 게임들도 결국 스테이지 단위로 끊어지기 마련이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은 스테이지 단위로 끊어진 동일한 공간이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를 지녔다. 이러한 단절된 공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붙이는 작업은 PC에서 시도되었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킹스 퀘스트>였다.
미사일을 쏘거나 점프를 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플레이어는 넓은 동화 속 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다. 현실 세계와 유사한 공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 그것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오지를 탐험하는 모험가의 기분을 느끼게 해줬을 것이다.
김성실 작가의 <Rescue>는 모두 4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들은 독립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그림과 이어져 있다. 네 개의 그림을 차례로 배열하면 하나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합쳐진다. 이러한 형식은 각각의 화면이 거대한 세계를 구성하는 <킹스 퀘스트>의 게임 공간과 기법적으로 동일하다.
개별 그림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각 공간은 극히 단순화 되어 있다. 형태는 사라지고 대상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색깔의 차이만 남는다. 비록 추상적인 형태이지만 이것이 실제 공간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단서는 각 그림마다 삽입된 주인공 캐릭터의 이미지다.
추상적 공간 위에 살아 있는 캐릭터가 위치함으로써 단순한 ‘공간’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장소’가 된다. 주목할 점은 점선 모양의 바느질 자국이다. 비록 붓으로 그린 것이지만 이 점선 때문에 공간 전체가 마치 천을 이어 붙여서 만든 느낌을 준다. 게임의 디지털 공간 역시 다양한 리소스를 조합해서 만든다는 점에서 일종의 콜라주다.
그리고 그림에서 표현된 바느질 자국처럼 게임에도 끝내 숨길 수 없는 재봉선이 존재한다. 게임 중 하드디스크가 엉키거나 CPU에 과부하가 걸릴 때 우리는 시공간이 잠시 일그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익숙했던 공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현실이든 가상이든 모든 공간은 완성된 채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실시간으로 다르게 재구성된다. 물리적인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심리적인 공간이며, 현실의 재봉실은 언제라도 뜯겨져나갈 수 있다.
이전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언어를 통해서 묘사된 세계를 1인칭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킹스 퀘스트>는 3인칭 시점에서 캐릭터를 조작할 수 있는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이다. 캐릭터를 플레이어로부터 분리해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되면서 게임의 스토리 구조는 보다 극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동화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게임은 왕의 요청으로 세 가지 보물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으며, 속편은 물론 <폴리스 퀘스트>나 <스페이스 퀘스트> 같은 다양한 ‘퀘스트’ 시리즈가 발매되었다.
[작가] 김성실 Kim, Seong-sil [email protected]
중앙대학교 한국화학과 대학원 재학 중 중앙대학교 한국화학과 졸업
단체전
2011 두더지스트 (흑석아트센터) 중원전(짬뽕) (부남갤러리)
2010 기획전 (서라벌갤러리)
게임평론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게임문화연구회에서 활동 중이며, 2011년 ‘Pixel on Canvas -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 전시회를 총괄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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