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개발비화] 우리가 즐기는 게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숱한 사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상도 못 할 이유로 개발이 시작됐다거나, 개발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오게 되죠.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 준비한 새로운 연재물입니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여러 게임의 개발 ‘비화’, 말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첫 번째 주인공은 모바일 TCG의 홍수 속에서 ‘가챠(뽑기)는 없다’는 돌직구 승부수로 화제를 모은 <언리쉬드>의 개발사 유스티스의 정회민 대표입니다. 이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부터 소규모 개발사로서 개발 중에 부딪힌 난관, 원래 SRPG로 기획됐던 이미지와 영상, 출시 후의 뒷이야기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언리쉬드>의 개발비화를 들어 보시죠. /정리: 디스이즈게임 주재상 기자
■ 모든 것을 <언리쉬드>에 걸고 있다
개인 생활이 없다. <언리쉬드> 개발과 함께 나의 인생은 모든 것이 끝났다. 지금도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하고 싶다. 요즘은 랭크전을 할 때 픽·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소나의 몸매를 감상하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 뭐, 일러스트가 바뀌었으니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다.
나는 주로 프로그램과 게임 보안에 치중해서 신경 쓰고 있다. 내가 쉬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으니 쉬질 못한다. 물론 일은 즐겁다. 그러나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많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못하니까. (웃음) 즐기고 싶은 콘솔 게임이 나오면 일단 사고 보는데, 비닐조차 뜯지 못한 게임들이 쌓여가고 있다. 그저 ‘죽기 전엔 다 해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뿐.
당분간은 혼자서 <언리쉬드>를 개발해나갈 생각이다. 누군가를 고용해서 개발 업무를 인계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그래도 그나마 요즘엔 숨통이 조금씩 트이고 있다. 단지 내가 게임을 할 시간이 없을 뿐이다. 빨리 <아이돌 마스터 2>도 해야 하는데!
정회민 대표가 사랑하는 그녀들은 이제 더는 그의 곁에 없다.
개발 외의 업무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라면 여자친구다.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는 사무실에서 한다. 문제는 데이트 앞에 ‘업’이란 글자가 하나 더 붙었다는 것. 여자친구도 <마비노기>에 푹 빠졌었던 게임 마니아다. 덕분에 스킬 아이디어라거나 밸런스 조정 부분에 관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꼼꼼한 성격이어서 작은 수치에도 민감하고, 나보다 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서버 구축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서버 쪽은 아는 것도 많지 않을뿐더러, 솔직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게임 오픈 초기에는 3일에 한 대씩 서버를 추가했었다. 가뜩이나 개발 일정도 빡빡한데, 서버까지 신경 쓴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 작년 초쯤 우연히 한번 뵌 분이 있었다. <언리쉬드>를 개발하던 도중 도저히 답이 안 나올 정도로 핀치에 몰렸을 때 문득 그분이 생각나서 전화 한 통 드렸는데 바로 도움을 주셨다. 게임과 전혀 관련 없는 분이고 정말 내게 고마운 분이다. 지금은 투자자 겸 정신적 후원자로 함께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여자친구와 즐거운 (업)데이트.
■ 드롭률은 후회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마음에 든다
드롭률을 짜게 만든 것은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드롭률을 다시 상향하자니 기존에 카드를 획득한 유저들의 반발이 우려돼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몬스터 헌터>를 워낙 오래 즐겨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게임에 ‘물욕 센서’를 추가한 게 아닌가 하고 의심도 해봤을 정도다.
원래 기획은 약간 반복 플레이가 필요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카드를 획득하고, 다음에 업데이트되는 콘텐츠를 즐겨 나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드롭률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잘못했던 것 같다. 게임을 론칭하고 보니 유저들이 카드 획득에 어려움을 겪더라.
물론 유저들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렇게 드롭률을 낮게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카드가 더 잘 나올 줄 알았다. 근데 나오고 보니 아니더라. <몬스터 헌터>에 빗대어보면, 이정도 드롭률이면 종일 게임을 해서 아이템 한두 개 정도는 획득할 수 있었고, 그래서 <언리쉬드>에도 적용했던 건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다.
드롭률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게임의 모양새는 매우 마음에 든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게임이란 부분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예상했다. 즉, 기획이 제대로 구현됐다는 얘기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카드 레벨업 등 반복 플레이가 지나치다는 의견도 받고 있지만, 이는 앞으로 차차 풀어나갈 계획이다.
솔직히 이 카드 구하다가 뒷목 잡고 쓰러진 사람이 2열종대로 연병장 두 바퀴 반은 될 것.
■ 유료화는 계획적으로! 그리고 신중한 운영을 보여드리겠다
아직 콘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전략성의 한계가 보여서 나도 마음이 조급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빠르게 새로운 콘텐츠들을 업데이트하려 한다. ‘헤비 과금러(유료 결제를 굉장히 많이 하는 유저)’들이 결제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의견도 종종 받는데, 안타깝지만, 유료 콘텐츠를 많이 추가할 계획은 없다.
나는 그저 ‘DLC 정도나 소소하게 결제하면서 게임을 즐겨주시면 감사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저들은 또 그게 아니더라. 내가 저 카드를 못 먹으면 널 파괴해버리겠어! 이런 마인드? (웃음)
운영 쪽에서 내가 빗나갔던 것은 인정한다. 이를 소규모 개발로 인한 한계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다. 게임은 이미 궤도에 올랐고, 지금 <언리쉬드>를 즐기고 있는 분들의 기대치가 높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책임감 있게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저들의 의견이 워낙 분분하다 보니 사안을 결정하기가 어렵다. 내가 또 귀가 가벼운 성향이다 보니 머뭇거리다가 결정하는 시간이 늦는 것도 있다. 그래서 유저들에게 지켜봐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저 기다려달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사정을 유저들이 봐줄 필요는 없고, 따끔히 질책해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의 패치노트 공개에는 언제나 뜨거운 관심이 몰린다. (출처: 공식 카페)
■ 일러스트 업계의 수익 배분에 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현재 지역 단위로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분기별 혹은 대형 콘텐츠 업데이트 시기에 맞춰 총 수익의 20%를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돌려드릴 예정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도 마찬가지. 배분 방식은 앞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참여한 작품 수나 기여도가 반영된다.
솔직히 게임이 떴다고 해서 번 돈을 나만 혼자 먹긴 좀 그렇지 않은가? 의뢰비를 깎으려고 이런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고 오해하는 분도 있던데, 솔직히 말하면 다른 회사보다 많이 주진 못했을지언정, 적게 주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온 것보다는 물론 적지만, 국내 메이저 급 회사만큼은 챙겨 드렸다.
카드 게임도 결국 한철 장사고, 일러스트레이터는 고정적인 수익이 보장된 직업도 아니다. 작가가 운 좋게 만화로 진출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출판 계약에 성공하더라도 인세가 박하다. 당시엔 팝픽 사태가 벌어지던 시기이기도 해서 내가 이런 것들에 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최근 후원 모금 성공 보답 전시회를 개최한 팝픽 소송 작가들.
그림으로 먹고사는 이들의 처우에 관한 세간의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다.
일러스트의 1차 저작권은 모두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것이다. 2차 저작물에 관한 권리는 일러스트레이터와 회사가 동등하게 행사한다. 뿌잉뿌잉한 마우스 패드를 만들든, 브로마이드를 만들어 팔던 우리에게 얘기만 해주시면 된다. 만드실 돈이 없다면 우리가 지원할 계획도 있다. 우리는 일종의 일러스트 플랫폼인 셈이다.
내가 그림을 잘 팔아서 작가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주려고 한다. 같이 협력하는 관계니까 정당하게 배분하는 것이 맞다. 처음엔 일러스트레이터들도 반신반의한다. 수익 배분에 관해 다들 잘 믿지 않고, 반응도 별로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앞으로 몇 달 뒤에 통장에 꽂히는 액수를 보면 ‘아, 진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내가 마케팅에 약해서 그림을 더 잘 팔아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아리얄 팬도 많은데, 아리얄 마우스 패드는 못 만들겠지. (주르륵)
■ 기대 이상으로 사랑 받은 <언리쉬드>,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것
<언리쉬드>란 제목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다가 지었다는 소문은 맞는 얘기다. 아무무는 보통 블루 골렘부터 시작하다 보니, 보통 적이 블루 골렘에 인베이드 오지 않나. 그래서 우리 편 아무무가 적 인베이드를 피해 레드 리자드에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하필 그 판에 적이 레드 리자드로 쳐들어왔다.
덕분에 그 아무무는 블리츠크랭크의 그랩에 끌려가 허무하게 죽었다. 그러곤 부활해서 블루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적 인베이드에 멘탈이 조각난 미드 아리가 리쉬를 해주지 않아 아무무가 또 죽었다. 그래서 <Un-Leashed>다. <확산성 밀리언아서>를 하다가 화가 나서 게임을 기획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다가 제목을 지었다. 참고로 나는 그 판에서도 소나를 플레이했다. 소나는 가슴이 시키니까.
반도의 흔한 게임 제목 짓기.
애초에 동접자나 DAU(일별 활동 이용자) 목표를 세우는 등의 비즈니스적인 관점으로 게임을 만들지 않았다. 다만,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면서 내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전등록 1만 명 돌파했을 땐 얼떨떨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흔한 배너 광고 하나 없이 시작했다. 다뤄준 매체가 거의 없었는데 디스이즈게임에서 기사를 써 줬다. 입소문 내준 유저들을 포함해 이 작은 회사에 관심 가져주신 것에 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게임을 만들려 한다.
“그리고 유저 여러분, 결제는 적당히 하세요. 게임에 그렇게 돈 쓰면 안 됩니다. 유료 결제는 계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WoW> 월 정액 정도만 지르세요. 한 달에 19,800원! (웃음)”
최근 추가된 카드들. 이전과는 다른 획득 방식을 도입한다는데, 획득 방식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색) ※ 출처: 일러스트레이터 쿠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