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연재

[좌충우돌 오늘] 3월 2일 - NBA 체임벌린의 100득점 경기

임상훈(시몬) 2014-03-02 23:16:41

오늘은 농구 역사에서 영원히 새겨질 날이다. 62년 오늘, NBA 워싱턴 워리어스의 센터 윌트 체임벌린은 뉴욕 닉스와 경기에서 딱 100점을 넣었다. 세 자리 숫자가 가까웠던 4쿼터, 워싱턴 선수가 공을 잡으면 관객들은 외쳤다. “윌터, 윌터.” 선수들은 윌터에게 패스했다. 100점을 넣은 순간, 경기는 중단됐다. 관객들이 코트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216cm의 윌트는 NBA 14년 선수 생활 동안 한 번도 6반칙 퇴장으로 코트에서 물러난 적 없는 착한(?) 선수였다. 하지만, 상대편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당대 최고 선수 빌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체임벌린과 그의 덩크를 막는 방법은 라커룸에 그를 묶어두던가 아니면 총으로 쏴버리는 것이다.”

 

윌트는 한 경기 100득점 외에도 엄청난 기록들을 무더기로 남겼다. 한 경기에서 55개의 리바운드를 잡은 적도 있고, 필드골을 18번 연속 성공하기도 했다. 1961~62 시즌에는 평균 50.4점을 득점했다. 2위 선수 기록이 31.6점이다. 1위와 2위가 이렇게 많이 차이 난 적은 NBA 역사에 없었다. 한 경기 평균 48.5분 출장도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당시 한 경기는 48분이었다. 연장전이 많아서 가능한 기록이었다.

 


 

윌트는 은퇴하기 전 3 시즌 동안 리바운드 왕이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몇몇 NBA 팀이 복귀를 위해 접촉했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기도 했다. NBA 역사에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사나이는 1999년 10월 12일 63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갔다.


윌트 체임벌린을 생각하면, 한 친구가 떠오른다. 의정부 군생활 시절 후임병 C군이다. 그는 내 일병 시절 우리 부대에 왔다. 카투사로 근무했던 우리는 축구 대신 농구를 했다. 나는 이병 때부터 찰리 컴퍼니 포인트 가드였다. 그런데, 우리 팀은 센터가 약해 다른 팀에 매번 밀리곤 했다.


C군은 ‘빅맨’이었다. 다만 문제는 농구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나는 일단 <슬램덩크>를 빌려왔다. 드리블과 워킹 바이얼레이션을 먼저 가르쳤다. 레이업은 그 다음이었다. <슬램 덩크>의 명사를 열심히 외쳤다. “왼손은 거들 뿐!” 그는 찰리 중대의 강백호가 됐다.


내가 병장이 됐던 무렵, 그는 우리팀 에이스가 됐다. 골밑슛과 리바운드에 스크린과 블록슛까지. 나는 그저 그에게 공을 날랐고, 그는 덥석덥석 림에 집어 넣었다. 찰리 컴퍼니는 최강의 중대가 됐다.


서울 강남에 사는 나는 이제 농구공을 잡을 기회가 없다. 아쉽다. <우리 동네 예체능>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궁금하다. C군은 아직 농구를 하고 있을까? 그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참고로, 역대 NBA 두 번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81점이다. 우리나라 최고기록은 우지원이 2004년 3월 7일 세운 70점이다. 그는 이날 3점슛만 21개 넣었다. simon :)

 

- 1962년 3월 2일 윌트 체임벌린 한 경기 100득점 달성

  • [좌충우돌 오늘] 3월 1일 - 한게임과 첨밀밀

  • [좌충우돌 오늘] 3월 2일 - NBA 체임벌린의 100득점 경기

  • [좌충우돌 오늘] 3월 3일 - 부끄러운 현대 영화의 탄생

  • [좌충우돌 오늘] 3월 4일 - 픽사를 꿈꾸던 애니파크의 생일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