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오늘 독일 신학자 마틴 니묄러(1892~1984)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원래 보수적인 반공주의자였다. 당연히 히틀러의 등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즘을 알게 된 뒤 그를 반대하는 독일 성직자 그룹의 리더가 됐다. 대부분의 성직자는 나치의 회유와 위협에 굴복했다. 그는 나치에 물든 독일 개신교를 비판했다. 히틀러는 1937년 그를 체포해 강제수용소에 가뒀다. 1945년 나치가 붕괴되고 나서야 풀려났다.
2차 대전 이후 그는 독일 국민들을 참회와 화해로 이끄는 대변자로 활동했다. 국제적인 반전운동과 비핵화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여기 좌충우돌까지 닿은 것은 시 한 편 덕분이다.
<나는 침묵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니묄러는 이 시를 발표한 적이 없다. 글을 남기지도 않았다. 1946년 이 시에서 표현된 취지의 연설을 했고, 그것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1955년 밀턴 마이어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책에 이 시가 실렸고, 이후 1960년대 말 미국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졌다.
내가 이 시를 언제 처음 봤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반대가 뜨거웠던 시절 또는 신문사 퇴사 후 버클리대학의 Free Speech Movement 카페에 놀러 갔을 때가 아닐까 싶다.
요즘도 이 시는 나를 뜨끔하게 한다. 여기저기 터지는 명백한 부정부패와 권력의 횡포를 만성적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당장 내 생활이 바쁘고, 대응하는 방식이 고루하거나 비효과적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의미한 게 별로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 사이 또 다른 나는 잡혀가고, 또 다른 나는 지쳐간다.
시민사회에서 개인이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됐을 때,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것도 종국에는 지킬 수 없음을 이 시는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한국에도 그런 목소리들이 도처에서 나왔다. '안녕들하십니까?'
게임을 마약으로 취급하는 법안에 대한 저항에 문화계가 동참한 것은 너무나 고맙다. 게이머도 함께 목소리를 내자. simon :)
- 1984년 3월 6일 독일 신학자 마틴 니묄러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