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세상이 흔들렸다. 시작은 3월 22일 프랑스 낭떼르 대학이었다. 학교가 엉망이었다. 시설과 강의 모두 허접했다. 학생들은 도서관을 가기 위해 본교인 소르본느 대학까지 버스를 탔다. 기숙사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총장실을 점거했다. 베트남전 반대와 교육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대학당국은 즉각 경찰의 지원을 요청했다. 경찰이 학교 내에 진입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를 열었다. 다시 경찰이 출동했다. 진압이 여의치 않았다. 대학당국은 28일과 29일 대학을 폐쇄했다.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당국의 강경 대응은 다른 학생조직들의 가세를 불러왔다. 저항의 정서는 파리 전역으로 파급됐다. 학생들은 소르본느 대학으로 거점을 옮겼다. 베트남전 반대와 교육제도 개선을 넘어 보수적, 권위적, 관료적 사회시스템을 비판했다. 정부당국은 대학폐쇄 조치와 함께 더욱 강경한 대응책으로 맞섰다.
학생시위대와 진압경찰대 사이에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미온적이던 노동자들이 가세했다. ‘전국고등교육교원노조’가 학생을 지지했다. 대중들도 호응했다. 시위는 전국민적 변혁운동으로 발전됐다.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모든 권위와 체제는 비판됐다. 정치적, 사회적, 성적 금기가 깨졌다.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된 세계가 외쳐졌다. 무한한 상상력과 자유, 유희를 기반으로 한 삶이 노래됐다. 록 음악이 불려졌다. 방랑이나 마약, 프리섹스 같은 도발적인 도전도 나타났다.
파리의 외침은 베를린과 로마, 영국과 미국으로 퍼졌다. 학생들의 시위는 서구를 넘어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에서도 발생했다. 일본에서 혁명의 물결이 넘쳤다. 도쿄, 오사카 등 주요대학에서 점거투쟁이 벌어졌다. 세계가 요동쳤다. 이는 훗날 68혁명 또는 5월 혁명이라고 불리게 됐다.
미국의 학자인 월러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68혁명은 실패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은 노조는 파업을 중단했다. 시위가 3달 가까이 지속되자 시민과 언론은 무질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6월 말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했다. 상대주의의 극단화는 정치적 보수주의를 불렀다.
실패한 68혁명은 세상을 바꿨다. 절제와 억압에 기초를 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가파르게 허물어졌다. 68혁명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는 새로운 삶을 지향했다. '녹색당'과 '그린피스' 같은 환경 운동,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인권운동 등은 68년의 토양 위에 성장했다.
한때 68혁명을 책으로 열심히 읽었다.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68혁명은 도서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호프집이다. 68혁명의 구호들이 천 위에 거칠게 적혀있었다. 틀에 박힌 세상을 향한 멋진 구호들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68혁명은 여전히 쿨하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내 마음 속의 경찰서를 없애자!
보도 블록을 들추어라! 해변이 나타날 것이다.
- 1968년 3월 22일 낭떼르대 학생들 총장실 점거